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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꽃 Sep 19. 2024

콩국수, 뜨겁던 마음을 식혀주는(2)

4. 어떤 여자의 음식 이야기

"엄마, 채 썰어 올릴 오이 있어요?"

"오이는 있지만....엄마는 콩국수 위에 오이 올려서 먹는 거 싫구나."

"음, 알았어요. 아빠는요?"

나는 마트에서 사 온 진한 콩국물에 생수를 조금씩 부으면서 콩국수 위에 고명으로 오이채를 올릴 것인지 엄마에게 여쭤보았다. 아버지와 엄마, 두 분 모두 콩국수 위에 오이를 채 썰어 얹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삶은 계란도 고명으로 올리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콩국물에 국수, 통깨. 그 세 가지만을 원하셨다. 나는 콩국물에 소금 간을 하고 국수 사리 위에 부은 다음 통깨를 뿌려 식탁 위에 올려 두고 김치를 썰어 보시기에 담았다.

오랜 만에 부모님과 함께 먹는 점심식사였다. 맏딸이 주는 콩국수가 이렇게 맛있을 몰랐다며 연신 칭찬을 해주시는 부모님. 날이 더우니 콩국수가 드시고 싶다는 엄마 덕분에 근처 대형마트에서 콩물을 사왔는데, 난생 처음 만든 콩국수였음에도 먹어보니 어찌나 고소하고 시원한지 처음으로 콩국수가 맛있었다.

바깥은 8월답게 뜨겁고 뜨거웠으나 집 안은 에어컨으로 시원했다. 부모님과 함께 먹는 콩국수는 시원하고 고소했다. 아, 정말이지 맛있었다.

아직도 그 날의 그 고소한 콩국물의 맛이 떠오른다. 아무런 고명이 없었기에 오로지 콩국물 본연의 고소함만을 느낄 수 있었던, 부모님과 함께 먹었던 그날의 콩국수. 이후로 나는 수시로 콩국수가 먹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하나 더 보탠다면 무심하기 그지없는 딸은 나이 쉰을 넘고서야 비로소 부모님의 콩국수 취향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런 고명도 올라가지 않은 깔끔한 맛의 콩국수. 날이 더웠기에 콩국수 해 먹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졌지만, 눈도 보이지 않고 다리에 힘이 없어 자주 넘어지시는 엄마를 모시고 외부 음식점에 콩국수를 먹으러 나가는 것이 더 힘스러웠던 날이었다.

결국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콩국수를 만들어 드렸는데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도 기뻤다.

친정에 올 때면 이전에 엄마가 우리들에게 해 주셨듯이 앞으로는 내가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해 드려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요즘 너무 자주 콩국수가 당긴다. 자주 해 먹기도 하고 나가서 동네 맛집인 '국시집'에서 먹기도 했다. 그런데도 콩국수의 고소한 맛에 대한 갈증이 가시질 않는다.


부모님을 못 뵌지 벌써 석달이 넘어가고 있다.

지독했던 2024년의 여름도 조금씩 끝이 보이고 내주만 지나면 추석이다. 이번 추석에는 불편한 몸으로 딸들만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께 남편이 먼저 나물이며 전을 해 가자고 한다. 고마운 사람이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이 실은, 콩국수를 먹고 싶은 게 아니라 부모님이 보고 싶은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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