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내려오는 곳
자이언 국립공원

미국 국립공원

by 질경이

자이언 국립공원에는

강이 흐르는 초록빛 계곡,

눈부신 푸른 하늘,

성스럽고 신비한 붉은 바위가 있다.


우리가 시온이라 부르는 Zion은 히브리어로 "피난처"라는 뜻이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12,000 년 전 이곳에는 공룡이나 낙타처럼 커다란 동물이 살았다고 한다. 만년 전부터는 물과 먹을 것을 찾아온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고 기후의 변화 때문인지 8,000년 전에는 거대한 동물들은 사라지고 칠면조, 토끼, 노루 같은 중간 크기의 동물들이 살았다 2,600년 전부터는 그 수도 급히 감소되어 그 후 1500 년 간 자이언 캐년(Zion Canyon)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 형태가 사냥에서 농사 쪽으로 바뀌어 갔다. 아나사지(Anasazi )라고 불리는 원주민들이 800년 전 가뭄 때문인지 인구가 늘어 식량 부족하였는지 동 남쪽으로 떠나고 그 후에는 파이우테(Paiute)족이 이주해 살아왔다


1860년부터는 유럽에서 온 몰몬교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이주해 와서 아름답기는 하지만 살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이곳에서 홍수와 가뭄을 신앙으로 이겨내며 열심히 살아왔다. 자연 보호자 John Muir는 "이 산에 올라 네 영혼을 깨끗하게 하라"라고 말했단다

바위마다 성서적 이름을 지어 주고 이곳을 인간의 손을 빌지 않은 성전이라고 불렀다.



자이언 국립공원을 지나는 이 작은 물줄기가 속삭이듯 노래하며 내 눈앞에 펼쳐지는 이런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20년 전쯤 여행사를 따라 처음 자이언 국립공원에 왔을 때 그 장엄함에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2박 3일 여행인데 라스베이거스에서 일박, 자이언과 브라이스 국립공원을 하루에 보고 다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일박하고 LA로 돌아가는 상품이었다. 가격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했다. 두 곳을 모두 차로 지나가며 전망대에서 허락해 주는 시간만큼 내려다보는 일정이었다. 낮은 가격을 만드느라고 공원은 짧게 보고 숙박은 라스베이거스에서 하는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그 여행이 나에게 미국의 국립공원에 대한 호기심을 점화시켜 주었다.


지금은 국립공원의 인기가 높아져 공원에 진입하기도 힘들고 주차 사정도 좋지 않다. 공원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의 자동차는 공원 입구의 주차장에 주차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공원 안의 자이언 랏지에 예약을 하면 빨간 통행증(Red Permit)을 준다. 예약을 한 달 이상 전에 하면 집으로 부쳐주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입구에서 예약번호를 보여주고 통행증(Red Permit)을 받아 차 유리창 앞에 붙이고 랏지까지 들어가야 한다. 통행증 없이 들어가면 벌금이 300불이다. 한 가지 더 마음에 둘 것은 차를 세웠을 때는 환경 보호 차원에서 반드시 시동을 꺼야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조금 불편한 것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믿는다.


피의 제물을 바치는 제단(Altar of Sacrifice)


이른 아침 캠핑장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시나와바 사원(Temple of Sinawava)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자이언은 성스러움과 웅장함을 갖춘 성전이었다. 윗부분이 붉고, 붉은색 핏물이 흘러내리는 듯해서 희생의 제단(Altar of Sacrifice)이다.



Big Bend에 가면 거대한 바위가 나를 둘러싼다. 나는 그 원 안에서 아주 작아져 나를 잃어버릴 정도이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성전 앞에 설교도 강요도 없지만 내 마음은 어떤 웅장한 성소에 들어가 서 있을 때 보다도 더 경건해진다.


세월의 씨줄 날줄이 새겨진 부드러운 바위를 걸어 본다. 비가 깨끗하게 씻어 내려간 후에는 바위가 미끄럽지 않아 걷기에 좋다.



엔젤스 랜딩 (Angels Landing Trail)은 사람은 올라갈 수 없고 천사만이 내려오는 곳이라고 지어 준 이름이다. 지금은 웬만한 사람은 다 올라갈 수 있다.



셔틀버스 정거장이 까맣게 보인다. 절벽이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6명이 여길 오르다 사망했다는 푯말이 서 있다.

갑자기 겁이 났다.


여기는 양쪽이 다 절벽이다. 밧줄이 한 줄이라 올라오는 사람이 있으면 기다렸다 내려가야 한다.

여기 서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도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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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금엉금 기어 올라가며 내가 누군가의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기를 바랐다.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인데 그만 내려가기로 했다.

셔틀버스 운전사가

"당신의 안전은 당신의 책임입니다(Your safety is your responsibility.)"라고 반복해서 하던 말이 생각나기도 하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속도가 늦어지는 것도 미안했다.

여기까지 온 것도 나 자신에게 자랑스럽다.


정상이 저만치 보이는 데서 돌아섰다.


황금빛 바위산과 고운 단풍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갔다 온 사람들은 뿌듯해한다. 이렇게...


내려오는 길은 해가 중천에 떠있어 몹시 더웠다. 경사가 급해 올라갈 때 보다 내려올 때 발이 더 아팠다.

내려와 버진 강물에 들어가 발을 식혔다. 30분쯤 찬물에 담그니 열이 좀 가라앉았다.

내가 더 젊어지거나 건강해질 일은 없지만 만약에 한번 더 도전한다면 아침 일찍 올라가 해 뜨는 걸 보고 싶다. 사람이 많지 않으면 다시 도전해 볼 수도 있다. 엔젤스 랜딩 갔다 내려와서 꼭 해야 하는 일은 카페테리아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일이다. 좀 비싸지만 안 하면 후회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버스의 종점인 시나 와바 템플에 내려 리버사이드 산책로를 걷는다. 단체여행으로 왔을 때 갈 수 없었던 곳이라 내가 이 길을 걷는다는 사실이 더 좋았다.

강을 따라 1마일 산책로를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이 길이 끝나는 곳에서 더 내로우(The Narrow) 트레일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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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을 걸어 두 시간쯤 가면 하늘도 좁고 강도 좁은 더 내로우(The Narrow)가 나온다.


서쪽 사원(West Temple)은 언제 보아도 신비하다.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아 더욱 그렇다.

거대한 바위 아래를 다니다 보면 저 바위 중 하나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자이언 국립공원 100년 사를 읽어보니 실제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1946년에 880톤의 바위가 허물어져 내렸고 1958년에는 6만 톤의 바위가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니 개미처럼 작게 느껴졌던 내가 어느 순간 개미 목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공원을 가로지르는 길을 올라가면 1930년대 CCC대원들이 만든 터널이 나온다.

그 당시에는 RV 같은 큰 차가 없어 승용차 두대가 지나가는데 문제가 없었으나 지금은 RV나 관광버스가 지나가려면 미리 예약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큰 차가 지날 때는 반대편에서는 기다려야 한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작은 주차장이 나온다. 자리가 있으면 주차하고 길을 건너 캐년 뷰 트레일을 하면 짧은 시간 투자해서 아주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다.

캐년 뷰 트레일에서 보는 자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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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년 뷰 트레일에서 내려와 왼쪽으로 천천히 가면서 언덕 위를 보면 운 좋은 날 산양(Big Horn Sheep)들을 볼 수도 있다. 산양들은 바위를 타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재주가 없어 다른 동물들이 오르지 못하는 가파른 바위 위에서 산다.

길가로 나온 산양 한쌍이 가다가 한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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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커보드 메사에는 세월의 씨줄과 날줄이 새겨있다. 여기선 한 해 두 해가 아니고 만년, 억년이 단위다.

인간은 개미 같고 우리의 세월은 눈 깜빡할 순간에 불과하다는 걸 확실하게 느끼게 해 준다. 가을이면 단풍과 붉은 사암과 푸른 하늘이 화려하게 어우러진다.

눈이 내리면 동양화 같다

언제 가도, 몇 번을 가도 좋은 곳.

20년이 지나서 가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곳. 100년 후에 가도 그대로일 것이다. 국립공원이기에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