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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 Sep 17. 2022

막존지해(莫存知解)

인생은 무지개

가을이다.

흔히들 남자의 계절, 옛 친구, 아련한 향수, 쓸쓸한 마음, 이런 것들을 떠올리지만, 나에게 가을은 무지개다.

공기와 물방울의 서로 다른 매질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빛의 반사각의 차이는 아름다운 스펙트럼의 향연(饗宴)을 만들어 낸다.


재택근무를 마친 이른 저녁나절에 책을 읽다가 살짝 잠에 빠졌었다. 아니 선잠에 들었었던 것 같다.

그때였다. 징.. 하고 휴대폰이 울린다. 낯익은 지인의 전화. 오랜만이다. 자다가 일어나 음.. 음.. 하고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는다. 잠든 목소리는 상대방에게도 미안함을 유발하기 때문이리라.


잘 지내고 계시냐는 물음으로 통화는 시작됐다. 시계를 보니 9시. 식사 중인 듯 전화 너머 웅성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파주의 디스플레이 대기업 L사의 지인이다. 예전 직장에서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서로 부탁을 하고 때로는 신세를 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잘 지내고 계시냐는 물음으로 통화는 시작됐다.10분 정도 그 지인과 통화를 했다.


전자 재료 업계를 떠난 지 8년이 되었다. 1년이 다른 업계의 10년과도 같다는 이 업계에서 8년의 시간은 상당하다. 그래도 이렇게 예전에 긴한 관계를 맺었고 아직도 현업에 계신 분들이 가끔 연락을 주신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반가운 목소리다. 전자 재료 업계를 떠나, 이제는 다른 분야의 재료의 마케팅을 하고 있기에, 옛 업계 지인의 이런 연락은 점점 줄어든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지 못한 'Out of the Blue'식 연락을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생각해 보니 뜻밖의 연락 들은 대부분 가을에 집중된다. 왜 그럴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본다.  


"... 이 부장님, 그럼 조만간 뵙죠, 저희는 약속만 정해지면 속전속결입니다. 아, 잠깐 만요 제가 누구 바꿔 드릴게요."

"아.. 네 그럼."


그때다. 그 지인이 전화를 돌린다. 급발진이다. 지인의 목소리는 한결 들떠있다. 그의 목소리에서, 오비탈(Orbital)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안정적인 안정 상태(Ground Sate)로 부터 이미 흥분 상태(Exciting State)가 되었음이 읽힌다. 그 10여 년 전 일본 도쿄에서 내 옆자리에서 한참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눴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때도 그랬었지..

전화를 돌려받은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전 직장 상사. 아마도 두 분이 저녁 식사를 하다가, 내 이야기가 나왔나 보다. 그리고, 예상한 듯  저녁 식사 기회를 잡는다. 언제 식사 한 번 하자는 그런 무책임하고 무미(無味) 한 말 말고, 정말로 진지하게 일정을 잡는다.


요즘은 식사를 하다가,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 보고 싶은 사람에게 불현듯 전화를 거는 행위는 경우에 따라서는 불쾌하다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연락들이 고맙고 정감 있게 느껴진다. 상호 무례의 가능성은 무한대로 치솟지만 그만큼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고, 이런 실례를 이해해 주리라는 단단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저녁에 심야에 이렇게 전화하는 분들이 고맙다. 인간적이고 따뜻하다는 생각이다. 나의 존재를 타인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행위는, 상호 하이 리스크(High Risk) 지만, 서로 생각이 같을 때는 스파크가 백만 볼트 튄다. 속전속결.


되새겨보면 나는 유독 저녁에 이렇게 갑자기 전화 오는 분들이 많다. 대게는 그냥 전화했다는 분이 제일 많다. 복 받았나 보다. 순전히 운이 좋았었다고 본다. 아마도 재료 부분에서는 아직 따라갈 것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재료를 파는 외국 재료 회사에 근무했던 이력 때문에 특별한 인연을 쉽게 만들었었던 것 같다. 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순전히 회사의 능력으로 말이다. 나는 적어도 그리 생각한다.

10 년전, 파주 L사 VIP투어를 마치고

이순을 바라보는 한 사람, 지천명이거나 곧 지천명이 될 두 사람, 그리고 커리어의 정점에서 한창 열심히 해야 할 불혹의 한 사람. 이렇게 네 사람은 저녁 약속을 잡았다. 회사 조직에서 지천명에 이르면 여기저기 압박을 피할 수 없다. 잘 나가는 사람이건 그렇지 못한 사람이건 우리는 어느 순간 자의든 타의든 회사라는 조직을 떠난다. 3~40대에는 일에 매진하고 앞만 바라본다. 나도 그랬었던 것 같다. 회사의 권력이 나의 권력이라 착각하고, 회사에서의 내 능력이 나의 능력이라 자만한다. 실상은 부초같이 허무한 것임을 그때는 몰랐다. 그러다 오십에 가까워지면서 관심은 나 자신의 내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에 대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본격적인 독서의 시작이었다.

인생의 여정에서 누구나 자아에 대한 자각의 시간이 온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두 번째 산』에서 이야기 한 '계곡'과 조우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불현듯 무지개가 생각났다. 무지개는 일곱 색깔의 빛으로 나뉘어 태어난다. 무지개의 파노라믹 한 색감을 통해 우리 모두가 특별한 가치를 갖는 존엄한 존재임을 느낀다. 다양함의 표현이고 개성의 창발(創發)이다. 그러나, 무지개의 궤적은 태어나자마자 포물선을 그리고 정점을 향한다. 그러다 다시 반대편의 정점으로 떨어진다. 빛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같은 궤적을 그리며 그렇게 소멸된다.

인생을 생각해 본다. 생명은 그렇게 한 곳에서 나서, 누구랄 것 없이 다른 한 곳으로 살아진다. 무지개의 궤적은 삶의 궤적과 같다. 어떤 인간도 태어나 죽지 않은 인간이 없듯 말이다.


이달 말 지인들과의 저녁 자리를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기대된다.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보이려면 몸부터 만들고 컨디션 조절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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