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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허영감 Dec 15. 2024

2. 전직소방관 영화 "소방관"을 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영웅들에 의해 나라는 존재한다

영화 소방관은

2001년 3월 4일 서울 홍제동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방관 6명이 순직하고 3명이 부상을 입은

소방 역사상 최악의 비극적인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사실 영화가 처음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만 해도 보러 갈 생각이 없었다

아니 보고 싶지가 않았다

32년을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보내야 만 했던 많은 동료들  

세월의 흐름 속에 무뎌져 가는 그 아픈 기억들을 다시 소환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2024년 겨울에 경험하고 있는 믿고 싶지 않은 혼란스러운 현실에

진짜 국민을 위해 짧지만 뜨거웠던 삶을 살다가신 영웅들의 모습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고 싶어졌다


영화는 슈퍼맨이 아닌 그 당시 현실적인 소방관들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나 또한 주인공들과 같은 시기에 소방관의 삶을 살았기에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에 잊고 었던 추억들이 소환되었다


13년 동안이나 했던 24시간 근무 후 24시간을 쉬는 살인적인 격일 근무

밤샘 진화 작업이 있던 날이면 어김없이 마셨던 동료들과의 아침 퇴근 주 

딸랑 벤치프레스와 아령이 전부였던 컨테이너 체력단련장

신랑을 사다리차에 매달고 축하해 주던 소방관들만의 결혼 축하 전통

그리고

그 당시 군청색 기동복과 구조대원들만 입었던 주황색 구조복, 방화복이 아닌 코트형식의 방수복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호돌이 구조대원 패치

지금 돌이켜 보면 힘들고 열악했던 시기였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힘든지 열악한지도 모르고 불 끄는 것이, 구조하는 것이 마냥 좋았다는 기억만 있다


추억 여행도 잠시

영화 속 소방관들은

뜨거운 불길 속에서 용감하게 사람을 구하고 화재를 진압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기 속에서 그들이 주고받은

"야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이 두 마디는

아마도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인 동시에

동료를 믿고 그 어둡고 뜨거운 불길 속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You go, We go


영화는

서서히 그렇게 우리가 알던 그 결말을 향해 가고 있었고

잠깐잠깐 그들의 가족이 등장하는 장면에는

앞으로 다가올 가슴 아픈 이별을 알기에 벌써부터 먹먹함이 다가왔다


영화 소방관은 액션 영화가 아니라 가족 영화였다


사실 소방관들은 화재 현장에서 가족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오로지 이 급박한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화재를 더 잘 진압할 수 있을까에 생각을 집중한다

화재가 진압이 되고

부를 가득 채웠던 연기가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고

맑은 공기가 들어올 때 사랑하는 가족도 함께 들어온다


영화 소방관은

해피앤딩으로 각색되지 않았고

홍제동 6명의 소방관들은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

끝내 살아서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안타깝게 그렇게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나 또한 아직 체온이 남아있던 순직한 동료를 영안실로 모신 경험이 있어

마지막 장면에서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참을 울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홍제동 6명의 순직자 분들의 명복을 기원드립니다


스크린 속 영화는

당시 실제 사고 현장의 모습들을 보여주며 그렇게 세드앤딩으로 끝이 났지만

현실 속 영화 소방관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전역에서

소방관과 그 가족들을 주인공으로 해피앤딩을 향해 계속 진행 중이다


영화관을 나와

혼란스러운 2024년의 겨울로 나서며

아무 조건도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좋았고

화재를 진압하는 것이 소명이었던

짧지만 뜨거웠던 그분들의 삶에

무한한 감사와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에 용서를 구해본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내가 늘 깨어 살필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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