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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Jun 01. 2022

2주간 돈 공부를 하며 깨달은 것

저기요, 그 돈 주식에 투자하지 마세요

돈, 돈, 돈 자본주의의 그림자 속에서 

너도 나도 돈 공부에 여념이 없는 시대이다. 나에게는 먼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인간은 역시나 사회적 동물이 맞나보다. 모두가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는 상황, 달리지 않으면 이대로 영영 뒤쳐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돈과 관련된 책자를 사 들었다. "월급쟁이, 부자로 은퇴하라!" 

돈에 관련된 책들은 모두 제목이 직관적이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해 확신이 없는 삶 속에서 돈이라는 가시적인 액수를 당장에 불릴 수 있는 액기스를 알려주겠다. 모두 모두 모여 실천하기만 하거라. 당신이 바뀐다면 무너질 리 없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고 천 년 만 년 불어가는 돈 속에서 경제적 자유를 얻으리라!

달콤한 말이다. 실상 돈이 있으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너무도 각박하다.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고자 하는 몸부림 속에서 누구나 꿈꾸는 자산가가 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푸념도 잠시, 동학 개미 운동은 계속된다. 나도 그 개미가 되어 보겠다. 책을 펴니, 이렇게 무지했을 수가. 나는 늘 문송합니다 고개만 숙인 채 하루하루 이상 속에 갇혀 허황된 말을 내뱉어온 건 아닐까. 현실은 바뀌지 않는데. 그래 나도 늦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 했으니, 이제부터 개미를 자처해 보자. 이렇게 해서 겨우 마음을 잡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그야말로 '개미지옥'의 시작이었다. 

끊임없는 돈에 대한 욕망의 굴레에 탑승, 여기에 투자해 보세요. 투자보다 백전불태, 부동산에 올라 타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인문학 본성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근데, 경제적 자유를 획득해야만 하는 의무를 왜 개인에게 지우는 거지? 개인의 실패는 개인의 몫. 사회적 원인을 찾는 이에게는 "노력"이라는 이름의 몽둥이를 처방해야 한다! 이렇게 돈을 벌기 쉬운 세상에서 돈이 없는 것은 전적으로 너의 잘못이리라.   

끝없는 생각의 방황 속에서 어찌됐던 이왕 하기로 마음 먹은 돈 공부, 제대로 해보자는 심산으로 강의까지 끊었다. 주 마다 올라오는 알찬 동영상과 배운 경제 지식을 응용하여 해결하는 미션까지, 어찌되었든 나도 이제 돈 공부 한다!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지인을 만나면 근황 톡을 하면서 "나 요새 돈 공부해"라며 작은 안도감을 한껏 뽐내기까지 했다. 


나 좀 쉬면 안될까요?

운동하러가는 길, 빼곡히 들어찬 방들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들어선 돈 공부의 초행길은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알아야 할 상식도 한가득이었다. 아 갭투자라는 이런 말이었구나, 너도 나도 돈 이야기를 할 때 마음 속으로 공자왈 맹자왈 인문학 지식을 뽐내며 상대적 박탈감을 상쇄하려는 노력도 이제 안녕. 나도 이제 뭐든 알아들을 수 있다고! 결심 속에 배우는 여러 경제상식들에 하루 하루 충실하게 임했다. 경제 대공황, 오일쇼크, IMF 아, 세계 경제가 이렇게 흘러왔구나, 정부가 혹은 은행이 이렇게 하면 우리네 삶은 이렇게 되겠구나, 끄덕 끄덕. 어느 정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감을 잡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때 다행히도 경제과목이 있었기 때문에 물가, 금리, 환율, 이렇게 3가지 원리로 돌아가는 경제판에 대해 조금은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충만해지는 머리 속과는 다르게, 주머니는 여전히 텅텅이었다. 이렇게 공부해서 언제 나는 저 돈 뿜뿜의 굴레에 올라 탈 수 있으려나 조급해졌다. 그런데 투자를 위한 시드 머니를 모으는 것조차 적은 박물관 공무직의 월급으로는 턱도 없을 터였다. 시드, 작은 씨앗일 뿐인데 나에겐 너무나도 크게 느껴지는구나. 끊임없이 시간을 들이는데도 불과하고 가시적인 변화가 없다는 생각 속에서 번아웃은 예정되어 있던 것처럼 쉽게 찾아왔다. 아- 쉬고싶다. 


저는 그냥 생겨먹은대로 살아야 하나 봅니다

그림 그리기 원데이 클래스, 색다른 체험을 하며 나름의 힐링을 얻고 싶었다

채워지는 머리와 다르게 날로 가난해지는 마음, 괴로웠다.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에 시작한 공부가 오히려 내 자신을 더 초라하게만 하는 것 같았다. 일상 속의 작은 행복들을 모두 물리치고 시드머니를 모아보겠다 용쓰던 그 때, 마음 속에서 용트림처럼 반항심이 튀어 올라왔다. 아 몰라, 하고 싶은거나 한 번 해보자. 

늘 해보고 싶던 아크릴화 그리기 원데이 클래스를 그렇게 덜컥 결재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오랜만에 설레임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물아일체. 좋아하는 역사 공부를 할 때, 책을 읽을 때 제 자신도 모르게 현재의 시간 속에만 존재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는 그 짜릿함. 잊고 있던 감각이 온 몸 곳곳에 돌며 손과 발 끝을 저릿하게 하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돈 공부 선배들의 유툽 영상을 열심히 찾아봤다.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행복할까? 라는 단순하지만 정말 중요한 물음에 대해 문득 궁금해져서였다. 보는 영상마다 하는 이야기는 놀라울만큼 똑같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 자신에 대한 투자라는 것이었다. 어렵게 모은 돈을 어떻게 굴려서 불릴까를 골몰하는 것보다도 실상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일이라고 이구동성 선배들은 소리를 높였다. 

나에게 투자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또 다른 고민에 잠식되어 그날 밤 이불 속에서 여러 번 뒤채였다. 


투자처는 '나'입니다 

투자처를 찾을 때에는 그곳에 대한 어마어마한 정보가 필요하다. 모두가 맞물려 돌아가는 글로벌 경제사회 속에서 돈의 흐름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사리 판단도 가능해야 하고, 적절한 때에 치고 빠지는 운 때도 잘 맞아야 한다. 이러한 상식에서 무엇보다 믿을 만한 투자처는 제 자신밖에 없다라는 말이 새삼 불변의 진리처럼 느껴졌다.   

나도 결국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 이렇게 방황하게 된 게 아니던가. 문송합니다라는 현실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당장 나오지 않는 제 자신의 몸값을 하염없이 비탄하며 결국 자본주의가 답이다라는 체념에 사로잡혀 시작한 돈 공부였다. 그런데, 돈을 얻은 현자들은 오히려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에게 투자하란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결국 2주간의 빡센 돈 공부를 통해 얻은 결론은 "다시 나만의 길을 걸어가보자"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나 혼자라도 유일하게 나를 굳게 믿어주자. 그리고 가슴 뛸 만큼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당장의 수익이 나지않더라도 끊이없이 투자해보자. 그렇게 인고의 시간 속에서 "펄스널 브랜딩"을 계속하다 보면, 돈은 그대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돈 공부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게 결국 다시 인문학이었다. 누가 보면 참으로 허무한 결론이라고, 허무맹랑한 결심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는다. 언젠가 내가 믿고 투자한 나가 누구보다도 짜릿하고 행복한 경제적 자유를 불러오게 되리라고. 

이제 커서의 깜빡임 앞에는 "주식"이 아닌 "대학원 박사"가 자리하고 있다. 

여전히 텅 빈 주머니의 현실이지만, 이렇게 마음만은 부자가 되었다. 


물론, 계속 적금은 들겁니다. 그런데, 이건 일억천금의 금은보화를 위해서가 아닌 제 자신을 브랜딩할 비용이고요. 그렇게 우뚝 설 제 자신은 필연적으로 노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경제적 자유를 이룩하게 될 겁니다.

저기요, 그 돈 주식말고 스스로에게 투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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