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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Oct 01. 2024

퍼펙트 데이즈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

솔직히 좀 무섭다. 예정하지 않은 쉼이 얼마나 오래 예정없이 이어질지 몰라서. 언젠가는 훌훌 털고 일어나 그 때 좀 더 쉴 걸, 사무치게 후회하게 될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이제 막 지나고 있는 현재에 의미를 붙이는 건 미래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나이기에,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며 사랑한다는 건 늘, 언제나 어렵다.


요즘 내가 매달리는 문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세랑 작가가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출간한 직후 인터뷰에서 한 말, “헤맸다고 여겼는데 돌아보니 거쳐야 할 길들이었네요.“. 다른 하나는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쓰인 문장, “어떤 생각을 지우고 남길지는 네가 선택하는 거야. 그리고 그게 너의 미래가 될 거야.”. 긴 시간 공을 들인 말들은 이처럼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살리는 힘이 있다. 정세랑 작가와 김연수 작가는 이 문장들이 누군가를 살리는 데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할 테지만. 아무튼 요즘은 이러한 선하디 선한 사유들 속에 숨어 가까스레 연명하고 있다.


사유와 더불어 하루하루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감정을 다독여 주는 건 일상의 단정한 반복이었다.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씻고, 산책하고, 글을 쓰고, 공들여 요리하고, 치우고, 다시 산책하고, 오후 공부를 시작하고, 또 요리하고, 치우고, 운동하고, 씻고, 잠자리에 드는 일과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 5일 빠짐없이 거뜬히 해냈다. 되려 회사 다닐 때보다도 훨씬 더 근면성실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달달 볶았다. 백수가 과로사해서 죽는다는 말이 딱 날 두고 만들어진 말이구나, 싶도록 쉼없이 움직이는 제 자신에 지쳐 허덕이다가도,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나면 스멀스멀 올라오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어느새 제 자취를 감쪽같이 감추게 되니 잠시라도 멈출 수가 없었다.


지난 어느 날, 심리학을 공부한 지인의 힘을 빌려 TCI라는 이름의 성격과 기질 검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검사를 함께 한 이들의 이목마저 단번에 사로잡았던 건, 우주를 뚫을 만큼 높았던 나의 인내력 지수와 자기초월 지수였다.  인내력 지수는 근면, 끈기, 성취에 대한 야망, 완벽주의로, 자기초월 지수는 창조적 자기망각, 우주만물과의 일체감, 영성수용으로 이루어진 기질을 보여 주는 지표였다. 몇 백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끈질기게 파고들어 저만의 인사이트로 꾸준히 풀어온 지난한 시간들을 돌아보며 새삼 고개가 끄덕여지는 듯 했다. 인문학 전공이 뭐 어때서, 이렇게나 잘만 사는구먼, 어깨를 활짝 펴고 ‘문풍당당’이라는 제목으로 에세이집을 기획해 볼까라는 하늘마저 뚫어버릴 기세의 당찬 자신감으로 살아온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효능감으로 똘똘 뭉친 날들에 예기치 못한 제동이 걸린 후로 여기저기 삐걱삐걱 망가져버린 느낌이다. 인생을 제 뜻대로 세팅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참 어리석은 일이야, 인생을 사랑하려면 들쑥날쑥 요란법석한 인생의 본연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 숱하게 읽은 책들이 입을 모아 속살이던 그 문장들이 절실하게 필요해지는 순간, 순간의 연속이었다.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야.


문득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던 언니의 말이 생각났다. 그 말이 어린 마음을 참 아프게 후벼 파고들었더랬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가난한 제 머리에는 긍정의 연료로 쓸만한 게 도저히 없는 것만 같아서 틈이 날 때마다 문장들을 꾸깃꾸깃 욱여 넣었던 게.


애쓰고 애쓰다 드디어 펑하고 터져버린 건, 꽤나 시간을 들여 준비해 지원한 회사에 장렬히 떨어지고나서였다. 몸을 움직일 힘마저 남아 있지 않은 것만 같아서 한동안 멍하니 허공만을 노려보았다. 그동안 매달려 온 문장들도 그 순간에는 소용이 없었다. 이때다 싶어 애써 외면해 온 부정적인 생각들이 이곳저곳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럼에도 오래 들여온 습관에 힘입어 무기력을 떨쳐내고 밖으로 나섰다. 한걸음, 한걸음마다 부정을 짓이겨 없애 보겠다는 심산으로 쿵쿵 거세게 땅을 밀쳐내며 나아가 본다. 파아란 하늘, 그 사이로 부는 선선한 바람. 그렇게 한달음에 달려 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나무들이 만들어 주는 포근한 그늘 아래로 흙내음을 가득 머금은 산을 오르고 내리며 두런두런 건네는 서로의 일상을 보듬어 주는 따스한 말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책을 읽으며, 함께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렇게 하루를 잔잔하게 보내고 나니, 쑥쓰럽지만 명징한 사실 하나가 마음을 훅 스쳤다. 더이상 혼자가 아니야. 세상을 등지고 숨어 제 길만을 외로이 걸어왔다고 여겼는데, 어느새 곁에 선 이런 저런 사람들이 함께 문장의 힘을 믿고 있었다. 그렇게 사랑으로 옆을 굳세게 지켜 주고 있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가?

그들의 사랑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한강 작가의 문장을 놓고 골똘히 생각해 본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때때로 예기치 못한 불행을 안겨 주는 이 세상을 끝도 없이 긍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대해. 세상은 늘 그렇듯 언제나 엉망진창이겠지만, 그 속을 뒤채이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붙들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다가올 앞날들을 서로가 믿는 문장들에 덧대어 새로운 이야기를 꿈꾸어 볼 수 있다면, 그런대로 세상은 완벽할 수 있다.


최악인 줄로만 알았던 하루가 마침내 완벽한 하루하루로 여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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