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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Mar 22. 2022

큐레이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

나는 소위 '문헌사학' 전공자라 불린다. 문헌사학은 말 그대로 빼곡히 쌓인 몇 백년도 더 된 역사 문헌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공부이다. 퀴퀴하게 묵은 종잇장들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걸까, 꽤나 지난한 고민을 거쳐야 한다. 

물론 그 시간들을 모두가 알아주리란 만무했지만, 나는 여러 날 날밤을 지새우며 나만의 작은 소토리를 완성해 냈다. 한중일 연구성과들 사이를 동분서주하고 밤낮없이 조선 할아버지들의 말씀에 귀기울였건만 내가 얻어낸 건 문헌사학 석사 과정을 끝내 마쳤다는 졸업장 '한 장'뿐, 허무하기 그지 없었다. 

이후 지독한 외로움을 달래고 고군분투하여 들어온 직장에서 나는 다시 나름의 보람을 찾았다. 내 머릿속 상상이 공간으로 구현되는 신비, '전시'를 업으로 삼게된 것이다. 



전시의 첫 걸음, 큐레이팅


큐레이팅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정보를 수집, 선별하고 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전파하는 것"이다. 요즘은 각종 큐레이션 샵을 종종 길거리에서 볼 수 있다. 최근 나의 애정을 담뿍 받고 있는 곳 중에 하나를 소개하자면 연필 큐레이션 샵, '흑심'이다. 이곳에서는 여러 나라를 출처로 하는 지금은 단종되어버린 1940~60년대 희귀한 연필에서부터 연필과 관련된 각종 물품들까지 총 망라하여 판매하고 있다. 인상적인 건 연필을 골라 결재할 때면 결재해 주시는 분들이 누구시든 간에, 해당 연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어김없이 토해 내시며 예쁘게 포장해 주신다는 점이다.

연남동에 위치한 흑심

이처럼 큐레이팅은 단지 어떠한 정보를 "건조하게" 수집, 선별한다는 느낌보다도, 대상에 대한 "엄청난 애정이나 해박한 지식을 전제로" 한 수집, 선별이라는 다소 특별한 뜻을 품고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일종의 덕후 기질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는 거다. 같은 맥락에서 박물관의 큐레이터는 "역사 덕력"을 바탕으로 역사에 대한 각종 지식이나 정보, 유물들을 수집하고 선별한다. 이렇게 큐레이팅 된 모든 대상들이 바로 전시를 위한 소재가 되는 것이다.


스토리로 완성되는 전시의 결, 내러티브



큐레이터의 큐레이팅은 박물관의 녹을 받는 한, 쭈욱- 계속된다. 전시를 할 수 있을 만한 소재는 무엇이든 찾아내어 수집, 선별한다. 그러던 중 전시 기획 시즌이 다가오면 그동안 소중히 모셔둔 보따리를 하나 하나 풀어보는 것이다.

전시 주제를 선정할 때에는 여러 요소가 고려된다.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여러 유물들 중에 오늘날 우리 삶에 꼭 들어맞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좋은 소재가 없을까, 면밀하게 살피기 시작한다. 평소 생각해 둔 토픽이나, 그와 관련된 스토리를 구현해줄 매개를 유물로 설정하는 방법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오브제 중심'의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오브제를 통해 전시 주제를 선정하는 방법 외에 특정 역사 주제나 스토리의 맥락을 먼저 고려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면 올 해는 어떤 사건의 몇 주년이다, 하는 계기성 전시가 있겠다. 이럴 경우 해당 사건과 관련된 모든 정보와 자료, 유물들이 모두 전시의 소재가 된다. 



"그래서 너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지도 교수님이 늘 나에게 하시던 말씀이다. 오브제를 먼저 고려하든, 주제 및 스토리를 먼저 구상하든, 가장 중요한 건 "결", 즉 맥락이다. 그 맥락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전적으로 큐레이터에게 달렸다. 

나의 경우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공감"이다. 길게는 몇 백년, 짧게는 수십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게 할 수 있다는 건 큐레이터로서 가장 큰 명예이다. 내가 역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낡고 낡은 세피아 색상 속 과거의 삶들이 현재의 내 생에서 작은 이정표들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등 철학적이기 그지없고 난해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러한 고민에 한번 쯤은 뒤채여 보았을 테다. 이 때 앞서 살았던 평범한 이들의 선례는 그 자체로 따스한 위로가 되기도, 또는 예상치도 못하게 내 삶의 이유를 규명해 줄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전시의 거푸집, 연출의 의미

아무리 좋은 전시 내러티브라도, 최대의 변수가 있다. 바로 "공간". 문헌 사학도에 불과할 당시, 내 스토리를 구현할 공간은 껌뻑이는 커서가 있는 흰 바탕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 내 앞에는 단단한 물성을 지닌 3차원의 전시실이 놓여 있다. 

요즘 국립 박물관들의 스케일은 예사롭지 않다. "실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시실 사방을 꽉 채운 영상들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곳이 우리가 알던 지루함의 대명사, 박물관이 맞나"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연출력은 전적으로 예산의 규모에 달려 있다. 

예산이 터무늬 없이 적을 때라도, 큐레이터는 구상한 전시 내러티브를 구현할 최상의 공간을 생각해내야만 한다. 이 때는 큐레이터의 힘 만으론 역부족이다. 공간 연출을 위한 디자이너, 공간 시공을 담당할 업체 등 많은 이들과의 소통과 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큐레이터는 전시 하나를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전시 주제와 메시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동의를 얻어내고, 또 원하는 방향으로 전시를 꾸려나가야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많은 이들의 새로운 의견이 모여 전시는 공간이라는 거푸집을 갖게되고,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Life Goes On, 삶은 계속되니까


출처: 전쟁기념관 오픈 아카이브
출처: 전쟁기념관 오픈 아카이브

작년 이맘 때 쯤 기획했던 전시가 있다. "1952, 아주 보통의 나날들"이라는 이름의 사진전이었다. 위의 사진들은 놀랍게도 한국전쟁 당시 대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다. 1952년, 휴전을 위한 회담이 한창 열리던 중에도,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양 측은 치열한 전투를 치러내고 있었다. 

전쟁이 언제 끝날 지, 더디게 지나가는 나날 속에서도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벌써부터 일상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 "평범하지만 찬란한 아주 보통의 나날들"을 위해, "Life Goes On, 삶은 계속되니까". 

이러한 사진들을 보다 보면 마음 한 켠 어딘가가 덥혀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70여년 전 삶들이 오늘날의 생들에게 건네는 따스한 위로 덕분일까. 

유례없는 팬데믹 시국을 보내던 작년, "1952, 아주 보통의 나날들" 전시는 불특정 다수의 마음에 와닿았으리라 믿는다. 이처럼 전시가 갖고 있는 작지만 소중한 힘을 믿으며, 또 내 삶의 의미도 덩달아 채워지는 유쾌한 기분을 좇아가며, 오늘도 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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