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깍쟁이의 신혼일기 (5)
남편의 직업은 경찰이다.
직무상 주 1회는 당직근무를 해야 하는데 당직의 장점은 딱 하나, 보수가 좀 더 좋다는 것. 단점을 말하라면 입이 아프지만 3가지 정도 말해보겠다.
- 외롭다.
밤늦게 귀가하는 경찰남편에게 서운한 소리 하는 그의 아내. 경찰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부부의 모습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경찰조직도 일반회사처럼 다양한 부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9to6로 일하는 경찰도 있다. 또 과학의 발전으로 수사력이 향상돼 경찰서에서 밤새는 날이 줄었다.
그러나 범죄나 사고는 365일, 24시간 발생하기 때문에 파출소, 경찰서에 불이 꺼지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당직 근무는 필수다.
경찰관과 결혼을 결심했다면 외로움은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연애 때는 가족, 친구 등 나의 바운더리 안에서 큰 변화 없이 지냈지만 결혼 후 서울을 떠나 아는 사람이라고는 남편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자 독립심과 호기심이 강한 나였지만 쉽게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지곤 했다.
다행히 결혼 2년 차부터 서울에 있는 직장을 구해 다니게 되었고 출퇴근이 힘들어 외로울 틈이 없었다. 남편의 당직 근무날은 나 또한 서울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퇴근 했고 일주일에 한 번 외박을 하게 되었다. (이럴 거면 주말부부를 하면 되겠지만 주말에도 당직 근무가 있는 남편은 주말부부는 절대 안 된다며 강경한 태도로 나와 무산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는 부모님 집에 항상 옷을 챙겨 다녀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부모님 집에는 나의 사랑 동근이(고양이)가(물론 엄마, 아빠도^^) 있기 때문에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할만하다.
지금은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 우울하지 않지만 가끔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열심히 즐기는 중이다.
- 날짜개념이 사라진다.
박봉인 경찰은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다면 돈 모으기가 참 어렵다. 그렇기에 휴무날도 출근하고 당직 때는 휴가라도 내면 급여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명절이든 크리스마스든 새해첫날이든 무조건 출근한다.
때문에 직접 달력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기념일이나, 명절을 그냥 지나쳐 가버리기 일쑤다. 특히 생일, 크리스마스, 1 주년 등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은 어김없이 당직근무였다. 명절의 경우 기간 중 하루는 무조건 당직이라 미리 명절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양가부모님이 서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남들 다 쉴 때 묵묵히 일하는 남편을 생각하면 나의 감정은 사치인 것 같아 조용히 접어두기로 했다.
- 늘 피곤하다.
한국인은 참 일을 많이 한다. 때문에 직장인, 자영업자에게는 만성피로는 평생 친구. 그중에도 야간근무, 교대근무, 당직근무자들은 수면패턴이 깨지기 때문에 더욱 고생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언제나 표현 많고 자상한 남편은 당직 근무가 끝나는 날이면 멍하고 무뚝뚝해진다. 그런 모습이 처음엔 많이 낯설고 서운했지만 지금은 안타까울 뿐이다. 자야 할 시간에 못 자고, 휴식이 없는 삶을 사는 남편의 건강이 매우 염려스럽지만 매년 이상 없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오는 남편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쓰다 보니 당직 근무의 장점 하나가 생각났다.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을 항상 소중히 한다는 것.
오늘도 퇴근하면 보고 싶었다고 말해줘야겠다.
(아직 깨 볶는 신혼이라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