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늘과 바다
그는 며칠째 먼바다를 바라보며, 휘몰아치는 파도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흙과 재가 적당히 섞여 있는 그의 몰골은 흡사, 가마에서 막 끄집어낸 토기처럼 무엇인가 정돈되어 있지 않는 모습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아련한 추억을, 쓸쓸한 저녁 안개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을씨년스러운 날씨 탓일까.
한 방울, 두 방울 내리는 비가 금세 큰비가 되어, 그의 온몸을 적시고 대지를 휘감아 버린다.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가마터에 앉아 흙을 만져본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꿈에 보았던 아름다운 그 색을 다시 볼 수는 없을까? 난 꼭 재현해보고 말 거야."
장작불이 빨갛게 익어 스러져간다. 그의 의식도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처마 끝에 물방울이 맺혀, 원을 그리며 대지에 안긴다. 전날 내렸던 비는 멈추고, 화창한 아침이 그를 맞이한다.
그는 습관처럼 바다로 나간다. 하지만 오늘은, 매일 만났던 바다가 아님을 순간 깨닫게 된다 한동 안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그곳을 바라보다, 소리친다.
"바로 저 색이야! 바로 내가 꿈에서 보았던 색!"
내가 전남 강진을 찾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이었다. 내가 우리의 향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전해져, 그가 강진에 편백향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는 연락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공장 관리인의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혀있는 팩스 한 장만을 보내왔을 뿐이어서, 나는 사전 지식도 없이 그저 향을 찾아 먼 길을 나서게 된 것이다.
보성의 율포 해수욕장을 지나 해안 도로로 접어드니, 지금껏 보지 못했던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하늘과 바다의 희뿌연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한동안 차를 세워놓고 수평선을 찾아보았지만, 하늘과 바다는 하나가 되어 날 그곳으로 데려가 나의 존재를 잊게 할 뿐, 수평선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는 이미 퇴색되어 버렸다.
칠량면에서 천관산의 허리를 관통하는 도로를 따라가면 주위에 빽빽이 들어선 숲을 만나게 된다. 편백이다. 3백만 주 이상 심어져 있다는 이곳의 편백을 활용하기 위해, 잎과 가지를 쳐서 향유를 만들었다 한다. 하지만 그 공장은 공장이 아니었다.
작은 비닐하우스에 정유시설을 해놓고 오일을 생산했지만, 부족한 시설과 판로 문제 때문에 비닐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잠겨있는 낡은 비닐 문은, 누군가 노력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우리 향 산업의 현실이어서, 먼 길을 달려온 나에게 허탈감과 상실감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돌아가야 하나. 지도를 펴고 되돌아가야 할 길을 살펴보니, 고려청자 도예지라고 표기되어 있는 한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찾아보기로 했다.
초가집처럼 묻혀 있다. '고려청자박물관' 1997년 9월에 개관한 청자 자료 박물관이다. 강진은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고려청자의 80퍼센트 이상을 생산한 곳이 어서, 수백 기의 도요지가 흩어져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청자의 완성품을 보려 한다면 잘못 찾아온 것이다.
이곳은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완성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변천 과정과 역사 장면을 연출해주는 곳이다. 청자 도편과 굽는 방법 등 제조 과정, 청자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진이 청자 제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은 까닭이 있다. 좋은 태토와 무궁무진한 화목, 그리고 해상을 활용한 무역 -장보고의 해상 무역과 관련이 있다- 등이 그것이다.
청자의 색을 비색(翡色), 우후 청천 색(雨後晴天色)이라 한다.
그것은 오로지 강진의 앞바다와 하늘을 말하고 있기에‥‥‥‥
유리의 역사를 보면, 처음 인류의 조상들은 천연산 유리를 사용했는데, 이 유리는 흑요석 (Obsidien)이라 불린다. 인류 최초로 유리를 가공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5000년경 페르시아에서였다. 유리 가공 기술은 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로 전파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기원전 100년경 입으로 불어 유리를 성형하는 블로우 파이프(Blow Pipe)-녹은 유리 물질을 관대(파이프)에 묻혀 입으로 불어 성형하는 방식이다- 기법이 개발되면서 다양한 유리 제품을 선보이며 , 제조 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다주게 되었던 것이다.
현대의 향수 용기는, 1950년대 디자이너 브랜드 향수가 본격적으로 발매되면서 새로운 가치로 인식되었다. 쇼윈도, 잡지 등에서 소비자의 눈을 유혹해야 했으며, 브랜드 전체의 느낌은 유리 또는 크리스털로 응축되었다. 용기는 진정으로 커뮤니케이션과 일반 소비의 산물이 되었고, 경제적인 요구와 더불어 심미적인 질과 연결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용기는 시대와 접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항상 유행하는 추세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향수 용기 제작은 디자이너들이 스케치한 수백 개 중 몇 개를 선택해 폼(Form) 또는 플렉시 글라스(아크릴 수지판)로 샘플링한 후, 곧 퍼퓸 하우스에 제안되어 선택되며, 이는 다시 글라스 메이커로 넘겨져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글라스는 단순히 향수를 담는 용기라기보다는, 예술품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아무튼 용기는 향만큼이나 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청자 자료 박물관에서 내가 가장 관심 있게 본 것은 청자 향유병이다. 뚜껑은 없어져 알 수 없었지만, 청자는 유약을 발라 굽기 때문에 내부가 유리 같은 성질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향수 용기로 개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자꾸만 내 발을 잡는다.
강진의 하늘색과 바다의 색을 담았던 청자, 그리고 편백의 향, 해상 무역을 주름잡던 장보고, 쓸쓸히 웃음 지으며 차에 오른다.
장흥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일몰을 보았다. 적어도 우린 저 태양처럼 죽어가지는 말아야 할 텐데.
작은 땅이 석양이 되어 내게 말한다.
"제 땅의 흙으로 당신의 꿈을 담으세요. 전 모든 것을 기꺼이 드릴 수 있어요. 전 당신의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