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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 후각으로 떠나는 여행

6. 황천(潢川)을 지나서

6. 황천(潢川)을 지나서     


색은 인류의 역사를 말해주고 문화를 나타낸다. 또한 색이 주는 의미는 단순히 시각적 느낌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색은 사물을 아름답게 하고, 어둡게 느껴지기도 하는 감각 적 산물이기도 하며, 어떤 색이냐에 따라 심리뿐만 아니라 영혼을 느끼기도 한다.


색은 '눈에 보이는 모습과 관련된 빛의 파장 조합을 말하는 일반적인 용어' 또는 '어떤 형체나 물 질의 시각적 특성으로서 그 공간적 특성과는 구별되며 , 형체나 물질이 방출하거나 반사하는 분광적 합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말한다. 아무튼 색은 어떤 것이라 단정 짓기에는 복잡하고 오묘한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1666년 영국의 물리학자이며 수학자인 아이작 뉴턴은, 

“빛은 인간이 눈과 마음으로 색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조건이다.”

라고 하였으나 그것은 색의 내면을 깊게 이해하지 못한 오류였다.     

 보통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색을 인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어둠 속에서도 자기만의 색을 읽어낼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색에는 파장과 진동이 있어서 눈이 보이지 않는 대신 다른 기관이 더 발달되어 있기에 파장과 진동에 의해 색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냄새에는 후각적 느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향에도 파장과 진동이 있기에 각기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향기를 통해 색을 느낄 수 있다.   



내가 황천에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약간은 차갑고 상쾌한 공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향기는 맑은 회색으로 내게 성큼 다가와, 황천에 살고 있다는 한 사람의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전직 군인이며 입석리(立石里)에 살고 있다는 그 사람은 내게 작은 땅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던 분이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에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보았지만 결코 그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내게 회색 이슬 향만 남겼을 뿐이다.


황천(潢川)은 본래 고구려의 횡천(橫川)이며, 오사매 (또는 於斯買)라고 불리었다. 신라 때 황천으로 고쳐서 삭주(朔州)의 영현(領縣)으로 정했다가, 고려 때 다시 횡천이라 하여 춘주(春州) 임내에 두었으며, 뒤에 원주(原州)에 붙였다.

조선시대 태종 13년에 현감을 두었고, 14년 갑오에 횡천과 홍천(洪川)의 음이 비슷하므로 지어진 이름이 바로 횡성(橫城)이다. 한반도 대부분의 강은 남북의 종으로 흐르는데, 이곳의 강은 동서의 횡으로 흐르기에 붙여진 이름 횡성, 그곳이 바로 황천이다.


땅이 메마르고 찬 기운이 감돌기는 하지만, 맑은 회색의 향과 작은 땅의 뿌리가 여기에서 시작되었기에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미 깊이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황천을 지나 봉평으로 가는 길은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이라 평탄하지는 않았다. 굽이굽이 휘감은 도로는 차만 드문드문 다닐 뿐,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큰 산의 허리를 돌자니 왼편에 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예사로운 산이 아니다. 1,261미터의 태기산(泰岐山)이다. 과거에는 덕고산(德高山)이라 불리었던 이곳은 산림이 울창하며 특히 잡목이 많아 가을 경치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산삼을 캐는 심마니의 초막이 있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귀한 약초 등 식물이 많은 향의 보고임에 틀림없다.


 짙은 갈색의 약초 냄새가 코를 찌르는 산악 도로에서 벗어나니 따뜻한 햇볕이 차 창가에 길게 드리워지고, 먼 곳의 붉은색 점이 보였다. 봉평(逢坪)이다. 조선시대 전기의 문인이자 시인이었던 양사언(楊士彦)의 호인 봉래(蓬來)와 평촌리(坪村里)에서 이름이 비롯된 봉평은, 평창군에 속해 있는데, 면적의 80퍼센트가 고산 임야로 농업이 주종을 이루는 해발 500~600미터의 산간지대이다.


소설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빌리지 않더라도, 너무나도 유명한 봉평장과 메밀 ‥‥‥.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어 더 이상 봉평장에는 허생원과 조선달, 그리고 나귀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옛 영화만 그리워하며 메밀 막국수 한 그릇으로 마음을 달랠 뿐이다.




 봉평면에 가기 전 왼쪽의 흥정 계곡으로 조금 가다 보면, 흰색의 아담한 건물과 시험실이 보인다. 평창 산채 시험장이다. 표고 580미터에 있는 이 산채 시험장은 강원도 내의 산채를 찾아내어 재배 육성하는 곳이다. 특히 봉평은 산림 자원이 풍부한 고산 지대의 특성으로 인하여 천연 향료 식물의 자연 군락지가 많으며 , 생육이 적합한 곳으로써 소득이 높아 향료 개발의 가능성을 한층 높여 주고 있다.

더덕, 참취, 생강나무, 쥐오줌풀, 광나무, 쑥, 오가피, 더위지기, 산마늘 등 약용과 향료용 식물이 어우러진 자연산 식물의 밀집지역이다. 시험장의 추진 계획으로 산마늘, 쑥, 고수 등을 향료로 개발하기 위하여 연구 중이라 하였다.


향의 추출이 가능한 자생 식물이 많은데, 그동안 연구 개발과 투자를 게을리하였기에 버려지고 묻힌 식물들이 너무나도 많다. 서양의 향이 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좋은 냄새를 발산한다면, 동양의 향은 내적 정신을 중시하고, 약효로서 기를 다스리는데 그 목적이 있고, 서양에서는 외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좋은 향기를 얻는 데 있다. 

지금이라도 대단위 재배를 위해 정확한 성분 분석을 하고, 재배 방법을 연구하고, 그리고 국민 의식을 높이고, 기업이 투자하는 등 관·산·학의 열정이 있다면, 묻혀있는 보물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 같다.


흥정 계곡으로 들어서는 내게, 안내를 맡은 농업연구사가 "이곳 봉평은 쑥이 많아 쑥대밭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깔려 있는 것이 모두 쑥이죠."

라고 여운을 남기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였다. 길거리에 깔려 있는 쑥을 보며 한참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붉은 단풍이 고운 색시처럼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내밀고 기웃거린다.


 나는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마냥 개울가에 앉아 10월 단풍의 붉은색에 파묻혀 가을 향기를 실컷 맡고 싶었기 때문이다. 버려진 쑥의 냄새와 색을, 후각과 시각을 통해 오랫동안 나의 가슴에 묻어 둘 것이다.     



 프랑스의 그라스(Grasse)는, 온난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 등 뛰어난 자연조건으로 인해, 향수의 원료가 되는 방향성 식물류의 생육에 아주 좋은 지역이다. 이곳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에센스 생산을 발전시키며, 언덕마다 오렌지, 재스민, 카네이션, 바이올렛으로 물들여 갔다. 

자연 소재에서 추출되는 향수의 기본 원료는 오일과 수지, 그리고 앱설루트인데, 이것들을 세포 조직 속에 포함하고 있는 식물은 지구 상에 존재하는 25만 종의 식물 중에서 약 2천 종을 차지하고 있다


 같은 식물에서 추출한 향이라도 나라와 지역, 심지어는 시간에 따라 다른데,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빨리 메말라 버리기 때문에 새벽에 채집하기도 한다.

 장미의 경우, 향수의 중요한 원료 중 하나로 질 좋은 장미 오일을 추출해 내기를 갈망한 많은 향수 제조업자들은 향수용 장미로 불가리아의 장미를 최고로 인정하였는데, 이 장미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진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추출된 원액은 투입된 원료에 비해 너무나 미미한 양이기 때문에 천연산 장미 원액은 비쌀 수밖에 없다. 최상품인 경우, 1킬로그램의 국제 시세가 1만 달러를 훨씬 능가하고 있으니, 천연 장미나, 재스민 오일을 사용한 향수가 비싼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봉평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길은 슬픔이 낙엽처럼 가슴에 쌓였다 진정 나를 사랑하지 않았음에 눈물이 괴어 온다. 

언젠가 정녕 작은 땅을 사랑하고, 그 향기를 통해 세상에 작은 빛이 되는 날 나는 다시 황천을 찾아갈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내게 작은 땅을 만나게 해 준 그분이 친히 모습을 드러내, 나를 반갑게 맞이하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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