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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 후각으로 떠나는 여행

4. Epilogue 행복한 순간

에필로그 - 행복한 순간     


 “냄새는 물기에서 나서 거짓이 없고, 후각은 생기에서 나서 성실함이 있어, 억지로 힘쓰지 않아도 저절로 좋아하고 싫어함이 있기 마련이다”

                                         최한기(崔漢綺)의 「기측체의(氣測體義)」 중에서     


 넓은 들판과 꽃과 나무가 가득한 동산,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교회의 종탑 위로는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들며, 마을 곳곳에는 은은한 향기가 흐르고, 소년은 오늘도 변함없이 꽃을 따고 이끼를 모으며, 나무 잔가지를 자루에 가득 채워 집으로 가져간다.  

    

작은 통나무집에는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식탁과 그릇, 삐걱거리는 나무 침대, 그리고 집 안 가득히 온갖 식물들이 항아리나 자루에 담겨 작은 공간을 메우고 있다.

소년은 작은 손으로 자루에 들어있는 재스민 꽃을 꺼내어 나무로 짠 상자위에 놓인 유리판에 올리브기름을 바르고, 꽃잎을 정성스럽게 하나씩 펼치기 시작한다. 기름이 녹기 시작한 꽃잎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향긋한 향 기름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

나무의 잔가지와 뿌리는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들고, 말린 꽃잎과 섞어, 작고 예쁜 병에 담아 놓는다. 소년은 언덕 위 느티나무 곁 작은 땅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가장 좋아하였고, 그 잎을 말려 작은 주머니에 넣어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은, 이곳으로 요양하러 온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소녀는 병이 깊어 살 가망이 없자, 언덕 위의 작은 움막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아무도 출입을 못하게 하였다.

매서운 바람이 불던 겨울, 소년은 소녀가 보고 싶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발길을 움막으로 향하였다. 아무런 기척이 없는 집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러 날 불을 피우지 않았는지 냉기가 코끝을 감돌았다. 기침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구석진 곳에 낡은 담요에 싸여있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년은 불을 지피고 물을 끓여, 가져온 빵을 소녀에게 먹이고, 조금씩 온기가 돌자, 아이는 모든 식물에는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이 소녀를 치료해 줄 것이라고 설명하고 가져온 말린 꽃잎과 나뭇가지들을 하나씩 불 속에 던지기 시작하였다.


 “이 꽃잎은 생명이야”

 “이 나무는 사랑”

 “이 나무가루는 꿈이야”


 피어오르는 연기는 실내를 떠돌며 향기로운 냄새를 풍겼지만 소녀의 생명은 점점 희미해져 갈 뿐이었다.

 이제 소년에게 남은 것은 작은 땅에서 가져온 주머니 속의 야생화와, 재스민 향유뿐…

 소년은 울면서 한꺼번에 남은 모두를 불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러자 불속에서 핀 향기는 움막 속의 소녀를 감싸고 한동안 머물다가, 어느덧 움막에서 빠져나와 개울과 숲을 지나고 교회의 종을 두드리며, 죽어있던 모든 것을 살아 숨 쉬게 하고 마을 전체를 뒤덮어 나갔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소년을 “향기의 마술사”라고 불렀다.      

 때론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다. 향은 우리의 감각 중에서도 가장 다루기 힘들고 신비스러운 후각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강렬한 감정이나 특별한 경험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죄악으로부터 신성함에 이르기까지, 향은 우리의 욕망과 열정을 자극하고, 개발되지 않은 감성의 영역과 잃어버린 기억 속의 낙원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러므로 향은 우리의 기억을 든든히 지켜주고, 또한 우리들은 대부분이 그것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자연에서 향기를 포집한다는 것은 식물의 채취와 추출을 의미한다. 수많은 꽃잎과 나무의 수지를 모아서 에센스를 뽑아낸다. 이 힘든 과정을 통해 얻어낸 향 자체는 아름다웠지만, 처음과는 거리가 멀다.

 향료와 향목(香木)은 그 자체로도 좋지만 찧을 때 더 좋은 향기가 나는 것처럼 향의 원료인 식물은 하나의 아름다운 향기의 원천이 되는 순간의 에센스를 만들기 위해서 철저히 자기의 모습을 잃고 변형되며 모든 것을 버린다. 그것은 자신을 희생함으로 아름다운 향기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향은 바로 그런 것이다.   

 조향사, 그들은 보통 사람보다 어떻게 냄새를 잘 맡으며, 이러한 능력을 가진 것일까? 그들은 음악가나 미술가처럼 타고난 후각의 예술가이다. 하지만 반드시 타고났다고만 할 수 없다. 그것은 타고난 것보다 더 중요한 훈련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조향사는 냄새를 마음과 생각으로 맡는다. 특정한 향의 냄새를 떠올리고, 성분을 섞었을 때 어떤 냄새가 날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배우며, 그들은 마음과 상상으로 식물을 만나고 그 냄새를 익혀간다. 그리고 각 냄새를 순간의 기억으로 뇌 속에 정리하며 분해하고 조합하는 훈련을 거듭한다.

 후각적 상상력의 핵심에는 마음의 상상력이 있다. 조향사는 하나의 향을 창조하기 위해 기억의 통로를 따라서 느낌이 좋은 후각의 풍경을 재구성하며, 또한 세속과 성전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고귀한 영혼을 그 속에 담기도 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풍경을 상상할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냄새를 떠올릴 수 있다. 후각의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은 시각적 상상력도 풍부해진다. 다시 말하면 지난여름에 갔던 남해의 바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첫 키스, 그 기억 떠올리면서 바다와 연인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음을 말한다.  

 

 현자의 돌! 궁극의 물질이며, 이로부터 물질이 생겨난다. 연금술사들은 이것의 도움으로 비천한 금속을 변환시켜 귀한 금속으로 탈바꿈시켜 마지막 생성물인 금을 만들어내려고 하였다.

현자의 돌은 반짝이는 루비 색으로 단단하기도 하지만 유리처럼 부서지기도 쉽고, 가루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샤프란 꽃처럼 선홍색을 띠는 가루는 불길 속에서 연기도 불꽃도 내지 않고 밀랍처럼 녹았다가, 차가워지면 금보다 더 무겁고 단단해진다고 한다.

많은 연금술사들은 이 기적의 물질을 만들기 위해 신의 영역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침범하였다.    

 

 어느 날 진리를 깨달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향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지구 상의 식물이 간직한 아름다운 향기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바로 그는 현자였으며, 열정과 행복을 담아내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한 방울의 향기에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다. 이제 그가 만든 향기는 시공간의 문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며,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을 갖게 해 줄 것이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아무런 미동이 없다. 마치 자신이 향기인지, 향기가 자신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향기 속에 푹 빠져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      

얼음 꽃의 순간,

후온 파인의 영원,

그것들을 담은 향기,


이제 행복의 긴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Moment is happiness    


사진 : 송인갑/송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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