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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희 Dec 27. 2022

전도하는 자 vs 전도 당하지 않으려는 자

엄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성당에 열심히 다니다가 그 후 죽 냉담 상태다. 냉담이란 성당에 발을 끊었다는 뜻의 가톨릭 용어다. 냉담 신도는 마음을 고쳐먹고 성당에 가더라도, 고해 성사를 하고 보속 (속죄 행위)을 한 후에야 성체를 모시는 온전한 미사를 드릴 수 있다. ​


어떻게 생각하면 좀 억울하다. 나는 성당에는 가지 않았지만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마음이 힘들 때 신께 의지하고, 갈팡질팡 방황하는 마음이 들 때 신께 질문하고, 매 순간 감사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두 손을 모았다. ​


물론 지금 내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어린 시절 상상했던 하느님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분은 죽고 난 후 천국에 가서야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흰 가운 같은 옷을 입고 뒤통수에 빛을 뿜으며 천사들 가운데 앉아계신 분도 아니고, 잘 못을 저지른 자를 일벌백계하고 착한 자에게 상을 내리시는 분도 아니다. ​


내가 믿는 하느님은 형태가 없는 에너지에 가깝다. 생명을 움직이는 에너지. 내 세포 하나하나를 움직이고, 꽃을 피어나게 하고,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자연의 섭리와도 연결되는 힘. 무한히 커다란 우주와 무한히 작은 원자 속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생명력. 무한하고 무변한 에너지. ​


성경 말씀에도 있지 않은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느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신에 대한 관념의 틀을 깨고, 성경 책을 읽으니 그동안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납득이 안 갔던 부분들이 한순간에 이해가 갔다. ​


요즘 나의 기도는 명상이다. 내 안의 신을 만나는 행위.

하지만 엄마는 자꾸 나에게 기도하라고 하신다. "명상도 기도야." 하면 "맞아. 그러니까 그냥 기도를 해." 하며 씨익 웃으신다. 그럼 나도 별다른 대꾸 없이 씨익 웃는다. 가톨릭 신자들은 적극적인 전도 활동을 하지 않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타인에게 내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 또한 지양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내가 방심한 것일까? ​


어느 날 엄마가 매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


"성당에서 대림 주간을 맞아서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기도 모임을 하는데, 너희 집에서 좀 하면 안 될까?"


"왜?"


“너희 집이 성당에서 가깝기도 하고,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기도를 해 주시면 얼마나 축복된 일이야."


"기도만 하는 거야? 몇 명이나 오시는데?"


"그럼 기도만 하지. 한 시간 정도면 되. 많아야 서너 명 올까? 차나 음식은 절대 내지 않기로 했어. 그럼 부담스러워서 다 하기 싫어할 테니까. 서로 그런 건 아예 안 하기로."


"그래요. 그럼." ​


너무 쩔쩔매며 부탁하시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몇 년 전까지 엄마가 사시던 집이었다. 부모님이 아파트로 가시면서 세를 주었다가, 우리가 최근 리모델링해서 들어와 살고 있다. 공동 출자해서 샀으니, 엄마 지분도 반이 있다. 엄마는 싸악 달라진 집을 볼 때마다 뿌듯해하셨다. 수리 전 이 집을 드나들었던 동네 이웃들이나 성당 식구들에게 달라진 집 내부를 자랑하고 싶으셨을 텐데, 핑계 김에 잘 됐다 싶기도 했다.

하루인 줄 알았던 모임은 알고 보니 3일이었다.

집을 비워드리고 잠시 외출했다 오면 되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


하지만, 디데이 하루 전. 모임 시간 동안 집을 비우겠다고 하자 엄마는 기겁을 하셨다.

"집 주인이 자리를 비운다는 게 말이 돼?"

"말이 되는 것 같은데. 나는 교인이 아니잖아."

"너희 집 축복받으라고 기도해 주는 건데 한 쪽에 앉아라도 있어야지."

"그런 거야?"

"그럼. 그냥 앉아서 기도만 하면 돼" ​


마음을 다잡고, 앉아 있기로 했다. 나는 효녀니까. 엄마가 그간 베풀어 주신 은혜에 비하면 이쯤이야 뭐 대수로운 일인가. 눈을 감고 홀로 조용히 기도를 하리라. 기도와 명상은 같은 거니까. 만트라를 외우듯 로사리오 기도를 암송하리라.

그러나, 상황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모임이 시작되자, 구역장님이 책을 한 권 나눠주시며 오늘의 복음 말씀을 나에게 먼저 낭독해달라고 하셨다. 모두의 낭독이 끝난 후 묵상 내용에 대해 한 마디씩 발표를 시작했다. 설마 나도 해야 할까? 교인도 아닌데. 엄마가 한쪽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내 옆 자매님의 발표가 끝나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아.....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적극적으로 발표를 해버렸다. 나는 효녀이기에. 사실을 은폐한 그녀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엄마이기에. ​


모임에 참석한 어르신들은 엄마를 부러워했다. 이렇게 따님이 가까이 살면서 집도 이쁘게 싸악 고쳐 놓고, 주님의 말씀과 기도를 함께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며. 성님은 복도 많다며. 엄마는 '주님께 정말 감사하다.'라고 하셨다. ‘사실 이 집에서 모임을 하자는 말을 하기가 참 어려웠는데, 딸이 선뜻 응해주고 이렇게 정성스럽게 주님을 모셔주니 너무 감사하다.’ 라며 눈물까지 그렁그렁 보이셨다. ​


나는 졸지에 주님을 영접한 성당의 새 식구가 되었다. 적극적이고 밝은 구역장님은 3일 내내 성당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건네셨고, 아이들 가르칠 주일 학교 교사가 부족하다는 사정도 넌지시 말씀하셨다. 하마터면 "그럼요. 가야죠.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라고 넙죽 대답할 뻔했다. 분위기가 그랬다. ​


다행히 나는 정신줄을 놓지 않았다. 미소만 짓고,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즈음 슬며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하다. '내가 엄마를 너무 띄엄띄엄 본 걸까? 이 모든 것은 계획된 것일까?’​


내 테이블 한쪽을 쓰윽 밀고 들어온 십자가와 성당초


내가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기습적으로, 교묘하게, 우회적으로 포교를 시도한 엄마를 ​


원망하지는 않는다. ​


엄마는 당신이 믿는 하느님 안에서 축복을 경험했고, 그 경이로움을 사랑하는 딸과 나누고 싶으셨을 거다. 얼마나 고마운 마음인가. 하지만 고맙다고 해서 성당에 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교인들과의 모임 또한 최대한 피할 예정이다. 내가 엄마의 종교를 존중하는 것처럼, 엄마도 내가 신을 이해하고 교감하는 방식에 대해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일을 통해서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너무 깊은 명상 이야기는 브런치에 쓰지 않기로. ​


나는 올해 3월부터 디팍 초프라 명상 지도자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명상이나 요가, 마인드풀니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라면 알려주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나 닿는 법. 과도하고 전문적인 명상 정보나 경험담은 누군가에게는 간증에 열을 올리는 전도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온라인 커뮤니티를 하나 만들었다. 요가, 마인드풀니스, 명상 등 내면의 세계를 건강하게 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공간이다. ​


기존에 있는 명상 카페를 찾아 몇 군데 가입해 보았는데, 불교적 색채가 너무 강하거나, 명상 이야기는 없고 신비주의, 음모론에 관련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는 곳이 많아서.... 결국은 내가 하나 만들었다.​


명상과 요가를 실천하고 계시거나 관심이 있으신 분. 커피보다 차를 좋아하시는 분. 산책의 즐거움을 아시는 분, 책을 읽고 좋은 문장을 나누길좋아하시는 분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

단정하고 건강하고 균형 잡힌 각자의 '고요한 하루'를 위해 서로 응원과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참 기쁘겠습니다.

<네이버 카페, 명상클럽 고요한하루>


* 지금 딱 여덟 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초창기 커뮤니티의 정겨움 안에서 함께 노실 분!  관심사와 삶의 결이 비슷한 분이라면... 누구든 환영하는 바입니다.


명상 클럽 - 고요한 하루 카페 초대 주소

https://cafe.naver.com/goyohanharu

​​​


결국, 나 역시

기습적으로 교묘하게 우회적으로

전도하는 자!


- 고요한 하루, 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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