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es
할아버지는 기타를 메고 하얀 구두를 신고 다니는 분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가수 한답시고 집도 절도 다 팔아먹고, 처자식은 안중에도 없이 계집 꽁무니나 따라다니는 웬수 놈의 자식’이 우리 할아버지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는 할아버지의 손에는 까만 비닐봉지가 들려 있곤 했는데, 그 안에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먹일 통닭은 고사하고, 손주들 입에 넣어 줄 과자 한 봉지나 귤 몇 알도 없이 본인이 마실 맥주 한 병과 사이다 한 병 만 덜렁 들어있었다. 그 일은 할머니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며 할아버지가 ‘인정머리라고는 털끝만치도 없는 종자’ 임을 보여주는 일례로 사용되었다. 나에게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신세한탄 속 인물이었다. 나는 그분을 잘 알지 못했고, 그렇기에 딱히 원망할 일도, 억하심정을 가질 일도 없었다. 내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이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아홉 살쯤이었다. 각자 이름에 대해 조사해오는 숙제가 있었다. 나는 내 이름을 아주 아주 싫어했다. 이연희. 평범한 이름이다. 흔하지만 여성스럽고 예쁜 이름 축에 속한다. 하지만 당시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연희동이었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 내내 똑같은 질문에 시달려야 했다. “니네 집 떡집이야? 니네 집 미용실이야? 니네 집 철물점이야?”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화가 났다. 동네 이름을 상호로 사용하는 상인들의 무성의 함에 화가 났고, 지겹지도 않은 지 맨날 같은 농담으로 낄낄대는 아이들의 단순함에 치가 떨렸다. ‘설마 연희동에 태어나서 연희라고 했겠어? 엄마, 아빠가 내 이름을 그렇게 대충 지었을 리는 없잖아.’ 한 번씩 의구심이 들 때마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고 다독였다.
그런데 이름을 지어 주신 분이 엄마, 아빠가 아니란다. 집도 절도 다 팔아먹고, 가족은 안중에도 없고, 계집 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인정머리라고는 털끝만치도 없는 할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란다. 할머니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구제불능의 웬수. 내 이름도 대충 지었을 것이 빤하다. “까짓 거, 연희동에서 태어났으니까 연희라고 하지 뭐….”하고 말이다. 눈물이 났다. ‘우리 딸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아빠의 농담을 들었을 때 보다 더 한 배신감이 느껴졌다. 내가 설령 주워 온 자식이라 해도, 사랑으로 키워주는 엄마 아빠가 있는 한 안도할 수 있다. 하지만, 평생 부를 이름을 떡집이나 미용실, 철물점과 동급으로 지었다는 건, 내가 태어났을 때 응당 받았어야 할 축복과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 아닌가? 언년이, 간난이, 끝순이 같은 이름과 다를 게 무언가?
“왜 엄마는 가만히 있었어? 왜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이렇게 짓게 내버려 뒀어?” 분노, 원망, 슬픔을 안고 꺼이꺼이 울며 엄마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딸의 대성통곡에 놀란 엄마는 나를 꼭 껴안으며 다정하게 위로하기는커녕, 목젖을 내놓고 깔깔 웃다가 눈을 한 번 흘겼다가 등 짝까지 후려치며 “네 이름이 어디가 어때서?”라고 소리를 쳤다. 분노, 원망, 슬픔에 등 짝을 맞은 아픔과 공감 받지 못한 서러움이 더해져 나는 더 크게 목 놓아 울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엄마는 종이를 한 장 가져와 내 이름을 한 자로 또박또박 적기 시작했다. 고울 연, 빛날 희. “봐봐, 여자애들 이름은 보통 계집 희자를 쓰거든. 근데 할아버지가 우리 딸 반짝반짝 빛나게 살라고, 특별히 신경 써서 빛날 희자를 써 주셨어. 할아버지가 어릴 때 서당에 다니셨대. 그래서 남들이 모르는 한자도 많이 알고, 이름도 특별하게 지어 주신 거야.” 그렇다면, 연희동의 연희는 한자로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엄마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 마음은 한결 누그러졌다. 할아버지가 서당에 다니셨다는 것도, 흔한 계집 희자 대신 빛날 희자를 썼다는 것도 슬그머니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라면 ‘다짜고짜 할아버지를 원망해서 미안했다.’ ‘좋은 이름을 지어주셔서 감사하다.’라고 훈훈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 없어 유감이다. 최근에 한 역술인으로부터 뜻밖의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름으로 쓰면 안 좋은 불용문자라는 것이 있는데 빛날 희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여자 이름에 사용하면 과부나 화류계로 풀릴 가능성이 높아지니 웬만하면 이름을 바꾸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순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불현듯 수십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했을 법한 대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웬수같은 인간아, 하다 하다 손주 딸 이름까지 그 모양으로 지어 놔? 내 인생 망친 것도 모자라서, 손녀 인생까지 망치려고?” 악을 쓰며 삿대질을 하는 할머니 옆에는, 맥주 거품에 위에 사이다를 쪼르르 따르며 딴청을 부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기타 메고 하얀 구두를 신고 평생을 무명의 딴따라로 사신 내 할아버지. 살아생전 뭐 하나 변변하게 해 놓은 일이 없고, 끝내 손녀 이름조차 찜찜하게 지어 놓으신 내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함도 나의 원망도 세월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지고, 이제 모든 게 그저 한 편의 유쾌하고 포근한 시트콤인 것만 같다.
- 릴라, 연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