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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잉하리 Jul 09. 2021

9. 희망이 돋아 나는 자리

 새벽 4시 50분, 화장실에 가려던 남편이 거실로 나와 묻는다. "뭐 해? 지금 다섯 시야." "응 알아. 얼른 가던 길 가." 내가 대답했다.


 나는 수년간 자기 계발서를 매우 경멸에 가깝게 무시했었다. 책 좀 팔아보려는 작자들이 한 껏 꾸며냈거나 부풀린 이야기쯤으로 치부했었다. 자기 계발서를 읽는 것이 저급하게도 느껴졌으니 참 이상한 시각이었다. 그런 것 따위가 내 인생 바꿀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릿'과 '미라클 모닝'을 읽었다. 변화와 기적은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게 되었다.


 그럼 지금 나의 삶은 좀 달라졌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노이면서 동시에 예스.


 표면적으로 내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살던 집에 살고, 같은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같은 액수의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원래 모든 평가는 '하지만' 뒤가 중요한 법이지 않은가.


 조용한 새벽, 스스로 기상 시간을 선택해서 일어난다는 것은 내가 삶을 주도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준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침대를 박차고 나온 이상,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든다. 단정히 앉은자리에서는 희망이 돋아날 것만 같다. 내가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아침의 일과를 마치고 차에 탄다. 기분이 끝내준다.


 내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차리고 아이들을 재울 때까지의 몇 시간이었다. 약 3시간 동안 몇 가지 미션이 주어졌는데 저녁을 차려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이 어지른 것을 치워야 했다. 집을 치우고 씻고 양치질을 하라고 아이들을 채근했다. 나는 수십 번 협박 같은 잔소리를 하곤 했다. 둘째 한글 공부와 첫째 수학 공부를 동시에 봐주다가 가끔은 소리를 질렀었다. 오케이, 미션 클리어!! 근데 그 시간이 오후 11시다. 아이들을 닦달하고 어르고 달래며 쟁취한 시간, 드디어 두 손에 책을 쥐어보지만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진다.


 퇴근 후 아이들 재우기까지 수시로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을 분과 초로 나누고 쪼개 사는 것은 나를 피폐하게 했다. 아마 우리 아이들도 다르게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 나는 아이들과 거의 같은 시간 잠자리에 든다. 저녁 시간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전혀 없다. 나에게는 내일 새벽이 있다. 무의미하게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전에는 지친 하루를 보상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다. 원하는 순간은 자주 오지 않았기에 늘 부족하다 느꼈었다. 원하던 혼자만의 시간이 온다고 해도 피곤한 몸과 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스마트폰과 손가락 운동하기'가 거의 전부였다. 


 아이들은 여전히 늦장을 부린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달라졌다. '그릿'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목적에 따라 직업, 생업, 천직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하는 일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집을 치우고 밥을 짓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가치를 두려고 노력한다. 내 삶을 정갈하게 하고 나와 가족을 건강하게 하는 일,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워내 이 사회에 아름다운 사람으로 키워내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 화장실 배수구에 끼인 머리카락을 빼며 생각한다. '남편이 집에 와서 씻을 때, 더 좋은 기분으로 씻으면 좋겠다.'


 첫 2주의 동안은 오후가 되면 찾아오는 나른함으로 조금 힘들었다. 어떤 날은 온종일 나른하기도 해서 다시 잠들 때까지 빌빌거렸었다. 그것은 마음이 행복한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이번에는 포기할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새벽 기상을 이어나갔다. 이른 기상을 시작한 지 석 달 남짓 지난 지금은 처음보다 훨씬 더 할만하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떠나면 얼른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믹스 커피 한 봉지를 머그에 털어 넣었다. 커피 믹스는 지친 오전 일과를 보상하는 달콤한 상이 었고 남은 시간을 준비하게 해주는 버팀목이었다. 특히 일이 많은 날 마음이 힘든 순간, 다 써가는 치약을 쥐어짜듯 에너지를 짜내야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두 잔이 되고야 말았던 애증의 커피 믹스.


 자꾸 작아지는 바지가 불편해서 수차례 끊어보기를 다짐했었다. 믹스를 끊겠다며 책상 서랍 속에서 쏙쏙 속아내어 다른 곳에 가져다 두고는 사나흘도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다시 가져다 놓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주변에서 이런 동료를 꽤 보았다. 무서운 커피 믹스의 중독성......) 새벽 기상을 시작한 후에 난 커피믹스를 단칼에 끊었다. 믹스 이제 안녕! 더 이상 설탕과 크림으로 당을 충전하지 않아도 내게 하루를 마무리할 에너지가 충분히 있다고 믿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물론 커피 믹스를 끊었어도 배가 여전히 통통한 걸로 보아 그것이 뱃살의 주 적은 아니었나 보다. 


 운동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한 적이 없었다. 쉽게 운동을 시작하고 쉽게 그만두었다. 출산과 적은 활동량 때문에 점점 뱃살이 늘어났고 불편한 걸 많이 느꼈다. 하지만 몸은 옷으로 가릴 수 있었고 불편한 것은 참을 수 있었다. 


 문제는 저질 체력이었다. 몇 년 동안 숨쉬기 운동만 하다 보니 자꾸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저녁이 되면 쉽게 짜증이 났다. 몸을 움직여야 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 대기를 그만두고 나가서 뛰고 걸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전보다 덜 피곤한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덤으로 짜증이 줄고 기분이 좋아졌다.


 습관이 된 것 중에 좋은 것 하나는 작두콩차 마시기이다. 이것도 성과라고? 이게 우습게 보인다면 먹다가 버린 영양제나 홍삼, 각종 기능성 식품이 없는지 떠올려보길 바란다. 먹다 냉장고에 쑤셔 박은 도라지청이며 홍삼, 여러 종류의 차, 아직도 냉동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말린 생각, 종합비타민...... 얼핏 기억나는 것만 해도 이만큼이다.  나의 의식에서 지워버린 것들은 두 손 두발을 다 동원해도 셀 수 없을 것 같다.


 다 큰 딸이 비염을 달고 사는 것이 안쓰러우셨는지 아빠는 정성스레 작두콩을 직접 잘라 말려주셨다. 부모님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몇 개월간 간 부엌 서랍에 방치되다가 다시 부모님께 되돌아갔었다. 이제 나는 매일 아침 작두콩차를 마신다. 많은 것들이 나아졌다. 그리고 더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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