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밤, 뇌리에 불쑥 솟아난 문장이 하나 있었다. 어제를 지내면서도 나는 그 문장을 잊지 않았다. 청소를 하는 중에, 아이와 공룡 놀이를 하는 중에, 설거지를 하는 중에도 그 문장을 되뇌었다. 잊고 싶지 않았다. 일기장에 써두고 싶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아이 옆에 누워 어둠 속에서 포근한 이불을 폭 덮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고요가 지속되는 시간. 일기장은 다른 방 책상 위에 있고, 핸드폰은 거실에 있었다. 일기장 혹은 핸드폰에 가 닿으려면 몸을 일으켜야 하지만 타이밍을 잘 살펴야 한다. 아이가 완전히 잠들기 전에 움직였다간 말똥한 음성이 '엄마, 어디가?'하고 정적을 깨뜨릴 위험이 크다. 이는 곧 아이의 잠자리 이탈 사태를 불러올 수 있고, 자칫 잘못하면 아이가 새나라의 어린이가 될 가능성을 짓밟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인내해야 한다. 지루함을 견뎌야 한다.
수용할 시각 자극이 없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것은 무슨 소용인가. 눈을 감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문장을 잊지 않았다. 누운 채로 머릿속에서 그 문장을 여러 차례 되감았다. 행여나 내가 잠의 수면 가까이 다다르더라도 문장이 단어로 쪼개지고, 자음과 모음이 흩어지고, 선이 점으로 분해되더라도, 그 문장을 다시 조립해낼 수 있도록 말이다.
나의 어제에 관한 기억은 여기까지고, 눈을 떠보니 아침이 되었다. 내가 잠에서 깼을 때, 아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누운 채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살금살금 나가야지, 책상 앞에 앉아 일기장을 펼쳐야지, 펜을 들고 대뇌 주름 사이에서 구겨져 잠들어 있는 그 문장을 조심조심 꺼내야지. 그 순간, 아이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댤댜떠(잘 잤어)!"
의문문 아니고 평서문이다. 본인의 잘 잤음을 알리는 것이다. 귀여움에 퍽 웃음이 터진다.
아이는 이내 배가 고프다며 아침밥을 달라고 한다. 손을 씻기고, 이러저러한 먹을거리들을 주섬주섬 식탁에 차려주고, 그 사이 나도 소변을 보고, 입을 헹구고, 물을 마시고, 식탁 앞에 앉아 아이와 함께 요기를 했다. 오늘따라 아이는 무언가가 마음에 내키지 않은지 평소보다 칭얼거림이 심했다. 바나나를 먹겠다고 했다가, 안 먹겠다고 했다가, 스스로 숟가락으로 요거트를 떠먹겠다고 했다가, 숟가락을 내팽개쳤다가. 삐걱거리는 식사를 겨우 마치고,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휴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인가 싶었는데, 소속 부서 부장님으로부터 급한 업무처리 연락이 왔다. 아아. 업무 매뉴얼을 다시 살피고, 일을 처리하고, 업무 관련자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일기를 쓴다. 지금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소란함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내가 적고 싶었던 그 문장. 그것을 적는다.
내가 일기장에 적은 문장은 처음의 문장과 과연 같은 모양새인가. 과연 동일한 질감을 지니고 있는가. 처음의 문장은 이미 영영 사라져 버렸고, 나는 파생된 문장만을 적을 수밖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왜 그토록 그 문장에 집착하는가. 문장이 사라진다고 한들, 나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못하는데. 문장을 적는다고 한들, 그것이 나에게 아몬드 한 톨이라도 가져다주지 못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