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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라 Aug 22. 2023

아이 양육과 집안일은 온전히 며느리의 몫이라는 생각.

10년차 며느리의 시댁과 멀어지기 ⑧


시댁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도통 부담스러워진 나는, 지금은 남편을 통해서 또는 아이를 통해서 하고 있다. 특히 아이의 양육과 관련해서는 즉시적으로 전할 것들이 많은데, 온전히 남편에게 또는 아이에게 전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사실 그 전할 내용들을 그동안 내가 전해온 것 일뿐, 내것만은 아닌 일들이다. 그동안 아이의 양육과 우리부부의 삶에서 조부모가 아닌 '아빠'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 해오신 시부모님이였다. 늦었지만 지금에서라도 그 시부모님이 그 선을 넘지오지 못하시게 하려, 애써 밀어내고 있다. 제발, 아빠는 아빠의 역할을, 시부모님은 조부모로서의 역할까지만 해달라고 간곡히 무언의 행위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동안은 아빠(=시부모님의 아들)는 바쁘니깐, 아빠는 주말부부로 멀리 지내니깐, 우리(=시부모님)가 바로 가까이에 있으니깐, 주중 아빠의 부재를 채우려고 시부모님은 부단히 노력해오셨다. 그 덕에 내 몸도 많이 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남편없이 매일 마주하는 시부모님은 점점 나를 지치게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아들은  배제하고, 늘상 아껴두려는 것 같아 며느리인 내 입장에서는 서운한 적도 많았었다.


맞벌이로 지내는 우리부부에게, 아이의 양육에 있어 생기는 갑작스러운 일로 남편에게 연차 또는 반차를 쓰고 올 것을 요청했다가는 시부모님에게 한 소리 듣기 일쑤였다. 일이 있으면 자기들(=시부모님)한테 부탁하면 되는데 왜 굳이 일하는 애(=남편)를 불렀느냐고. 일하는 아들 신경쓰지 않게 하라는 말을 나에게 직접적으로 하셨다.


그리고 또 하나, 시댁에 할말이 있을때 남편을 통해서 말하는 며느리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나는 시부모님을 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남편이 서로 편하니깐 용건있을때 시부모님께 전해야 할 말들을 남편에게 부탁했던 것은 사실이다. 시급성이 있었다면 매일 만나는 시부모님께 며느리인 내가 대면을 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과 내가 직접 말하기에 불편함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야기들은 남편을 통하곤 했다. 그과정이 시부모님은 이해가 안된 모양이다. 심지어, 아이를 양육해주고 드리는 소정의 용돈 조차 시부모님은 며느리에게 받기를 원하셨다. 손녀딸의 양육을 도와주시는거,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긴 한데, 그 딸이 비단 며느리의 자식만은 아닌건데, 아들이 주는 날이면 며느리가 주는 것이 법이라도 되는냥 이야기하셨다. 자신들이 손녀딸을 양육해주는 것이 곧 며느리의 일을 덜어준다고 생각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남편은 자신의 부모님을 바꿀수 없다 여러차례 말하였다. 나 또한 시부모님의 생각을 바꿀 의향이 1도 없음 을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매순간에서 이건 아니다 싶은 상황에서는, 명확하게 부모님의 생각에 대한 우리의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아빠가 집안일로 반차를 쓰고 연차를 쓰는거 잘못된거 아니라고, 이러라고 직장인들에게 휴가제도가 있는 거라고 적어도 우리는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시부모님께서 또다시 고지식한 생각으로 휴가쓰고 집안일을 돌보러 오는 아들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생각할테지만, 그 전반을 이해를 하시던 안하시던 분명히 설명하는 절차는 있어야 함을 공유했다.  




시댁과 두드러진 갈등이 있고 난 이후부터는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해진 측면도 있다. 며느리와의 소통이 이미 단절된 상태이니, 잘하니 못하니 잘잘못을 더이상 따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 부부의 모습이 시부모님께는 받아들여지지 않을지 모르겠다. 며느리가 온 집안을 책임지고 나가야 한다는 오래된 생각으로 그동안 직 간접적으로 나를 힘들게 해왔는데, 이미 그 생각에 며느리가 동의하지 않고 반박한다는 사실을 시부모님께서도 이제는 깨달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고 부모님도 생겼는데, 오롯히 혼자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이 생각은 아마도 남아선호사상이 심하고, 집안의 남자가 가정적일 수 없었던 옛날 과거를 살아온, 내가 지금 이해를 하지 못하는 '시어머님' 이 살아온 시대에는 아마 더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부모님의 이해가 안되는 말과 행동에도 더 이해해보려 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혼자라는 것, 아이가 어렸을때는 그 토록 갈망하던 자유로 표현될 수 있었던 혼자라는 말, 이제는 그 혼자라는 느낌, 그냥 느끼고 싶지 않다. 시부모님께서는 내가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이 집안일과 아이양육은 온전히 며느리의 역할이라고 정말 생각을 하고 계실까봐, 그 생각을 내가 온몸으로 느끼고 깨달을까봐 무섭고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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