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근처 장애인 특수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교문을 들어섰는데 다시 허리 높이쯤의 접이식 철문이 가로막고 서서 본관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다른 입구가 어디 있을 텐데 하며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그 문 앞에서 중년 여성이 혼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차분한 외모는 단아한 인상을 주었다. 학교 관계자가 출입문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내 맘대로 추측하고는 뒤쪽에 조금 떨어져 섰다.
잠시 학교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반가움과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면서 다정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말씨였다.
“성찬아~ 천천히 와야지...”
눈길을 돌려보니 다운증후군의 10대 사내아이가 건너편 경사진 복도를 뛰어서 내려오고 있었다. 엄마로 보이는 그 중년 여성을 향해 손을 흔들더니 나를 보자 큰소리로 말했다.
“멋진 남자다! 멋진 남자다!”
순간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나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아내에게서는 말할 것도 없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과찬의 말이어서 겸연쩍고 쑥스러워 못 들은 척했다. 그러자 그녀는 접이식 철문 너머로 아이의 손을 잡고 말을 건넸다.
“그래... 그렇지?”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아이의 관심을 돌렸다.
“오늘은 어땠어? 재미있었니?...”
그녀는 ‘넌 그렇게 보였니? 난 아닌데.’라고 말하고 싶었겠지만 당사자 앞이라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예의를 차려 얼버무린 듯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그 아이는 접이식 철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머쓱해진 나는 학교 관계자를 찾아 옆 건물 속으로 총총히 들어갔다. 복도를 지나가는 교직원의 도움으로 우회하는 길을 찾았고 행정실에 들러 짧게 일을 마치고 나왔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다시 그 철문에 다다랐을 때 그녀와 아이는 떠나고 없었다.
나는 과연 멋진 남자일까? 사실 별 볼 일 없고 일상생활 속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한갓 찌질남일 뿐인데 과분한 상찬에 기분만은 좋았다. 순수한 그 아이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당사자가 아닌 이상 누구도 알 수 없을 테지만 아마도 편견, 선입견 등이 없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복잡다단한 셈법이 없는 눈으로 투명하게 세상을 볼 것이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다운증후군은 유전병으로 1866년 영국인 의사 존 다운에 의해 최초로 보고되었다고 한다. 21번 염색체 이상으로 모든 인종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안타깝게도 선천성 심장병 등으로 평균 수명이 그리 길지는 못하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이 착하고 인내심이 강해서 일명 ‘천사병’으로 불린단다.
우리는 모두 '감정의 연못'을 머리에 이고 살아간다. 사소한 일이 그 연못을 흔들어 놓아 우울해하기도 하지만 조그만 배려에는 온종일 잔잔한 감흥이 일기도 하는 것이다. ‘멋진 남자다’라는 말이 나의 '감정의 연못'에 기분 좋은 파문을 일으켰지만, 만일 ‘못생긴 남자다’라고 했다면 철없는 아이라 치부했을지언정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아이의 자아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 않던가.
교정 어딘가에서 바람에 실려 온 금목서의 향기가 달콤했다. 깊어가는 가을, 오후의 까슬한 햇볕이 아스팔트 위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고 나의 가슴 한쪽 생각도 저리도록 길어졌다. 나는 예기치 못한 천사의 선물을 과분하게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