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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삼촌

우리가 몰랐던 제주의 아픈 이야기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군이 점령군이냐?'하는 문제는 제주4.3을 들여다보면 명백히 알 수 있다. 1945년 9월 7일 발표한 포고문에서 맥아더 장군은 태평양 미육군 총사령관으로서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하여 군사정부를 세우고, '점령군(the occupying forces)'으로서 6가지 조건을 포고한다.


그 가운데 제2조가 문제가 된다.


제2조 정부 공공단체 및 기타의 명예직원들과 고용인 또는 공익사업 공중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사업기관에 종사하는 유급 혹은 무급 직원과 고용인 또 기타 제반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자는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정상적인 기능과 의무를 수행하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하여야 한다.


미국군사정부(미군정)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후 일제 잔재를 청산할 기회를 없앴다. 오히려 친일관료와 친일경찰을 포고문 제2조에 따라 대거 등용하여 통치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우리 민족을 분열시켰다.


제주4.3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주독립과 통일을 열망하는 제주민을 '빨갱이'로 규정하여 이념적으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공산당에 반감이 많았던 서북청년단을 투입하여 4.3사건을 무자비한 폭력과 학살로 확대시킨 미군정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브라운 대령은 "나는 봉기의 원인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 뿐!"이라고 천명하면서 2주일이면 반란을 평정할테니 해안에서 4km까지 지역의 치안을 확보하고 제주도 서쪽부터 동쪽까지 빗자루로 쓸듯 휩쓸어버리는 작전을 전개하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제주4.3은 처음부터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서울에 북촌이 있다면 제주도에는 북촌리가 있다. 이 작고 아름다운 북촌리는 오랫동안 무남촌, 과부촌이라 불렸으며, 매년 음력 12월 19일이 되면 마을 전체가 집집마다 제사를 지낸다. 그것은 바로 그날 대규모 학살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주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조천읍 북촌리에 있는 '너븐숭이 4.3기념관'을 방문했다.



1978년 유신정부 때 현기영 작가는 4.3을 소재로 한 소설 <순이 삼촌>을 발표하였다. 아무도 말 못하던 시절에 고향의 아픈 역사를 소설로 써 침묵의 금기를 깨고 세상 한복판으로 끌어낸 책이었다. 이 때문에 현기영 작가는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다.


제주도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부른다. <순이 삼촌>은 조천읍 북촌리에서 군인들에게 무참히 죽은 오백여명의 사람들 가운데 기적적으로 살아난 순이 삼촌이 어떻게 살다가 죽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다.


1949년 1월 17일(음력 12월 19일)에 너븐숭이(넓은 바위를 일컫는 제주말)에서 무장대에 공격받아 죽은 군인 두 명이 발견된다. 보초를 섰던 여덟 노인들은 시체를 인근 부대에 운구해 갔다. 그곳에서 서북청년단으로 주로 구성된 군인들은 경찰 가족인 한 노인을 제외하고 일곱 노인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해 주신 분의 할아버지가 그때 돌아가셨다.


죽은 이들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뜻으로 위령비 위에 태극기가 장식되어 있다.


북촌마을에 당도한 군인들은 마을을 포위하고 급습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을 모두 초등학교에 모이게 한 뒤, 40-50명씩 데리고 가서 옴팡밭(낮은 곳에 위치한 밭) 혹은 너븐숭이에서 사살하였다. 그렇게 살해된 이들이 오백여명에 이른다. 순이 삼촌은 그때 극적으로 살아남았으나 30년을 악몽 속에서 살다가 이미 30년 전에 죽었던 그 옴팡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이야기다.


너븐숭이 4.3기념관에는 그날 죽은 443명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이름도 없었던 어린 아이들도 많았다.


북촌리 학살사건으로 숨진 사람들의 이름


너븐숭이에 세워진 위령비가 비에 맞아 더 안타깝게 보였고, 애기무덤에 올려진 꽃과 복주머니, 그리고 과자와 장난감이 서러웠다. 무엇보다 옴팡밭에서 누운 채로 생을 마감한 순이 삼촌의 모습은 내리는 빗속에서 아무 말없이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고통받는 제주도의 아픔을 상징하는 순이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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