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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비와 바람, 그리고 한라산

바프와 함께 한라산을 오르다

며칠째 가만히 마당만 지키고 있는 바프에게 미안해 아침 6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제주도 어디에서나 보이는 한라산, 비가 내리는 한라산을 며칠째 바라만 보다가 비 속에서라도 한라산을 만나고 싶어 길을 나선 것이다.


집에서 1100도로를 타러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많은 차가 달리는 도로에서 심지어 경적까지 울리는 몰상식한 운전자와 함께 달리고 달려 1100도로에 도달하니 에너지의 50%는 소진한 것 같았다. 이제는 1100도로를 타고 올라 1100고지에 도달해야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오르막을 가다보니 어느새 구름 속을 달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주도 사람에게 한라산은 어머니와 같지 않을까 싶다. 눈비를 모두 막아주고 어디에서나 고개를 들면 같은 자리에서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어머니, 그 어머니 한라산이 내게 비 세례를 내린다. 나는 땀을 씻고 마음의 걱정을 덜고 차도 없어 정적과 고요만이 가득한 1100도로를 즐겁게 오른다.   


오전 10시에 1100고지에 도착했다. 구름 속에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달달한 커피를 한잔하면서 고민을 했다. 이대로 제주시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서귀포시로 내려가서 산록남도를 타고 516도로를 다시 올라 성판악 휴게소를 거쳐 내려갈 것인지.


1100고지에서 바프를 위한 사진 한장


구름과 비와 바람이 더 세차게 몰아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냥 서귀포시로 내려간다. 어머니 한라산을 완전히 한바퀴 돌아 꽉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서귀포시로 내려가는 1100도로는 롤러코스터와 다름 없었다. 신났다. 구름과 안개 속에서 비는 격려의 손뼉이 되어 하이바를 때리고, 얼굴로 스쳐가는 바람은 시원하기 그지 없었다. 큰 소리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불렀다.


서귀포시 입구에서 산록남도를 타고 516도로로 나아간다. 516도로를 만나니 다시 오르막이다. 하지만 1100고지를 오른 사람에게 해발 750미터는 두려워 할 것이 못된다. 열심히 올랐다. 차는 많았고 남은 에너지는 거의 바닥이 나고 있었다. 디다. 


12시 10분 드디어 성판악 휴게소에 올랐다. 컵라면이라도 하나 먹을 기대를 하고 올랐건만 아무것도 없다. 매점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마실 물도 없어 남은 물과 에너지바를 털어놓고 다시 제주시로 내려간다.


집으로 가는 길은 늘 좋다. 내리막길의 시원함만이 아니라 한라산을 양쪽에서 오른 뒤에 느껴지는 성취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516도로를 끝까지 내려가지 않고 교래리로 빠져 사려니 숲길을 지난다. 역시 신비한(사려니) 숲길의 삼나무가 아름답다. 절물자연휴양림 길로 빠져 4.3평화공원을 거쳐 집으로 직진한다.


점심도 못 먹고 집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좀 넘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점심도 건너 뛰고 7시간에 걸쳐 거의 90에서 100킬로미터를 탄 듯 하다.


한라산 둘레를 종주한 오늘의 자전거 길


이로써 바프에게 한라산을 동서남북에서 제대로 보여주었고, 어머니 한라산의 비 세례까지 잔뜩 받았으니 기억에 남을 라이딩이었다. 이제 한라산에 깊게 안겨 두 발로 걸어 오를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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