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부수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삶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다

나만의 서사(Narrative)

연휴 오후에는 가끔 삶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생겨난다. 대부분은 걱정이나 염려에서 비롯된 쓸데없는 상념이지만 때론 머리를 후려치는 것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삶은 길이가 아니라 깊이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는 아주 관대한 삶의 길이를 가정하며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의 길이를 통제하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죽음이다. 내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기대하지 않았을 때 죽음은 시련과 고통의 모습으로 다가와 주체를 낚아챈다.


현명한 자는 삶의 길이가 아니라 깊이에 관심을 가진다.


통제할 수 없는 삶의 길이가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삶의 깊이에 전념한다. 여기서 전념하기의 핵심은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시간은 무한정이고 그 시간에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해방을 만끽하는데 문제가 있을리는 없다. 다만 그것만 추구하면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예전에 후배 신부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젠 무얼 해도 재미가 없어요."


나는 놀랐다. 그에게 삶이란 재미를 추구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을 살아낼 수 있을까 싶었다.


삶의 깊이는 전념에서 온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계속해서 성실하게 해내는 일이다. 익숙해지겠지만 지루해 하지 않고 헌신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제라면 착한 목자라는 정체성에 맞도록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 전념해야 한다.


하나를 선택하는데서 오는 다른 하나에 대한 포기,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열정, 구체적인 현실에서 매순간 스스로 결정하는 삶은 깊이가 있다.




우리는 모두 자유롭기를 원한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진정한 자유는 내가 행하는 것이 결국 내 인생이라는 깨달음에서 온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삶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 최고라는 상댓값이 아니라 최선이라는 절댓값에 의미를 두면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자신답게 사는 고유성은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달리말해 삶의 깊이가 요구된다. '나만의 서사 narrative'가 되기 위해서는 누적된 나만의 기록이 되어야 하고, 그 안에는 진실한 좌절과 성장이 있다.


고유성이라는 나의 주장이 쌓이면 언젠가는 남들이 알아볼 때가 온다. 굳이 남들이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요구하지 않기에) 진정성은 타인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오직 삶의 깊이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이 될 수 있다. 나무의 나이테가 그러하듯 자신만의 깊이있는 시간을 통해.


매거진의 이전글 나훈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