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아무렇게나 흩어졌던 기억들이 모여 가슴 중간에 새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고통은 기다리고 있다.'
지난 5월 18일, 광주 무등산을 올랐다. 나의 두번째 산티아고로 전국 국립공원을 순례 중이었는데 우연히 무등산을 5.18에 오르게 된 것이다.
산 정상에서 바라본 광주는 낮고 평화로웠다.
어떤 이끌림에 의해 산을 내려와 5.18 국립묘지를 찾았다. 그날 아침 권력자가 다녀간 흔적을 가로질러 바로 묘역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나를 반긴 이정연 님은 전남대 대학생이었다. 그가 남긴 일기장 글이 있었다.
"아무것도 헛됨은 없어라. 우리가 사랑했던 것, 괴로움 당했던 것, 아무것도 헛됨은 없어라."
이어 두번째 열사를 만났는데 그는 짧은 머리 엣된 얼굴의 고등학생이었다.
문재학. 어머니가 몇 번이나 찾아와 '집에 가자'고 말했지만, 형들이 '너는 어서 집에 가라'고 했지만 끝까지 도청에 남아 있다가 죽음을 맞이한 그가 다섯 달이 지나 나에게 찾아왔다. 아니, 그의 어머니가 먼저 왔다.
김길자. 우연히 문재학의 어머니가 광주MBC에서 인터뷰한 유투브 영상을 보았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중학생 동호가 바로 문재학이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책을 읽으며 줄을 긋고 '내 아들'이라고 썼던 동호의 어머니가, 폭도로 죽은 소년이 이제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된 문재학이라고 말하며 우셨다. 아들을 그리며 부르는 어머니의 노래는 나를 울렸다.
<소년이 온다>는 그렇게 나에게 왔다.
얇고 작은 책을 펼치며 '소설 한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내 쓰나미같은 충격에 사라져 버렸다. 한 챕터를 읽고는 책을 놓고 긴 숨을 쉬며 걸어야 했던 책, 마치 한사람 한사람이 나에게 자기만의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소설은 현실의 나를 뒤흔들었다.
'거의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표현으로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평론가의 말처럼, 고통은 다양한 형태로 눈물과 분노, 침묵을 일으켰다.
5.18을 가슴 아픈 역사의 한장면으로 묻어두었다면 그래서는 안됨을, 내가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걷고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총에 맞아 죽는 것처럼 느꼈다. 작지만 정말 무거운 책이다.
동호, 아니 재학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전 세계 사람들이 재학이의 이야기를 읽고 그와 함께 산화한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까?
이런 고통을 모른 척하고 산다는 것이 무섭다. 관심없다고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일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고통은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면 언제든 맞을 준비가 된 충실한 종처럼. 제주 4.3도 거기에 같이 있었다. 삼년전 제주에서 만난 <순이 삼촌>이 광주의 소년과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고통을 고통과 이으니 연민이 되고, 죽음이 죽음을 만나니 불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