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겨울비
지난 17일 한해동안 하느님께로 돌아간 볼티모어 대교구 사제들을 기억하고, 사제 서품 60주년, 50주년, 40주년, 25주년을 맞이하는 사제들을 축하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죽음과 삶이 동시에 기념되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평생을 사제로 살다가 사제로 죽은 열 여덟명의 사제들의 얼굴과 이력, 사제로서 봉사하는 삶의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는 일은 그 끝이 서로 맞닿아 있었다.
사제는 사제를 필요로 한다. 산 자는 동료들과 친교를 나누어야 할 뿐만 아니라 죽은 자의 삶을 통해서도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 나보다 먼저 사제로 살다가 떠난 이들은 그런 면에서 내게 위로와 힘이 되었다.
대주교님은 축하식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들이 성체를 모시기 위해 제대로 나아오는 모습을 볼 때 제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저 여러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살면서 우리를 절망하게 만드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볼티모어만 하더라도 교구가 파산을 선언한 상태고, 운영이 어려운 본당들을 문닫고 합치고, 수많은 부정적인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수 있음은 우리가 희망의 제자(Disciples of Hope)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과 절망의 시간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때로 어깨동무까지 해 주시니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무엇일까.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그 한가운데 주님이 내 곁에 계시니 어찌 희망을 잃을 것인가.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다시 체험한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희망의 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