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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베개의 안도감 - 밤의 비밀을 간직한 친구

1부: 가정의 울림

7장: 베개의 안도감 - 밤의 비밀을 간직한 조용한 친구



나는 침대 위에 놓인 베개다. 하루의 끝에 지친 몸과 마음을 맡아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부드러운 솜으로 채워진 나의 몸은 언제나 주인의 머리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매일 밤, 나는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주인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침대에 눕는 그 순간을. 그의 머리가 나에게 닿는 순간, 나는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드디어 그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그의 피로를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 드디어 쉴 수 있다."

주인의 한숨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그래요, 이제 편히 쉬세요. 제가 있잖아요."


나의 역할은 단순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주인의 가장 은밀한 순간들을 함께하는 특별한 존재다. 그의 기쁨, 슬픔, 걱정, 희망... 모든 감정들이 나에게 전해진다. 때로는 기쁨의 눈물로, 때로는 슬픔의 한숨으로, 때로는 걱정 가득한 뒤척임으로.


특히 나는 주인의 꿈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평화로운 얼굴로 깊이 잠든 모습부터, 악몽에 시달려 땀을 흘리는 모습까지. 그 모든 순간을 나는 묵묵히 지켜보며 그를 지탱해준다.


"괜찮아, 괜찮아. 그건 그저 꿈일 뿐이야."

악몽에 시달리는 주인을 보며 나는 조용히 위로한다. 내 부드러운 감촉이 그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달래주길 바라면서.


가끔은 주인이 나를 껴안고 잠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그의 온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의 숨소리, 심장 박동까지. 그 순간 나는 단순한 베개가 아닌,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의 역할에는 어려움도 있다. 주인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일 때면 나도 함께 괴로워한다. 그의 고민과 걱정을 함께 나누고 싶지만, 나는 그저 베개일 뿐. 말을 걸 수도, 직접적인 위로를 건넬 수도 없다. 그저 최대한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왜 잠이 오지 않는 걸까..."

주인의 중얼거림에 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내가 조금 더 부드러워질 수 있다면, 조금 더 시원해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가끔은 정말 괴로운 순간들도 있다. 주인이 화가 났을 때, 나를 집어 던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그러는지 이해하려 노력한다. 주인의 분노와 좌절감이 전해져 오지만, 나는 말릴 수가 없다. 그저 나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차라리 나한테 화를 풀어. 다른 것들은 깨질 수도 있으니까."


부부가 다투는 날이면 나는 오히려 안도감을 느낀다. 그럴 때 나는 가장 안전하다.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물건을 던지는 대신, 나를 꽉 껴안고 울음을 삼키는 주인을 보면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된다.



"그래, 나한테 기대. 내가 너의 분노도, 슬픔도 모두 받아줄게."


정말 다행이다. 내가 베개라서. 부서지지 않고, 다치지 않으면서도 주인의 격한 감정을 받아줄 수 있어서. 이런 순간들을 겪을 때마다 나는 내 존재의 가치를 더욱 깊이 느낀다. 나는 단순한 베개가 아니라 주인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주는 버팀목이자 위로자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주인의 많은 모습을 보았다. 시험 전날 밤늦게까지 공부하던 학생 시절부터, 첫 직장에 들어가 긴장으로 잠 못 이루던 밤, 결혼을 앞두고 설렘으로 가득했던 날들까지. 그의 인생의 굴곡들을 나는 모두 함께했다.





이제 주인의 머리카락에 하얀 섬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그 시절의 젊은 주인 그대로다. 나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품고 있는 특별한 존재니까.


가끔 아침이 되어 주인이 일어나면 나는 조금 적막(寂寞)해진다. 하지만 곧 위안을 얻는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다가 저녁이면 다시 내게로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나는 여기서 그를 기다리며 다음 밤을 준비할 것이다.


나는 베개다. 단순한 침구가 아닌, 주인의 가장 은밀한 순간을 함께하는 조용한 친구다. 그의 피로를 덜어주고, 꿈을 지켜주며, 안식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나의 사명이자 기쁨이다.


오늘 밤에도 나는 여기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편안한 밤을 보내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그의 곁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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