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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컵의 고뇌 - 반복되는 일상 속 작은 변화

1부: 가정의 울림

나는 주방 선반에 가지런히 정렬된 컵들 중 하나다. 매일 아침, 나는 주인의 손에 들려 커피를 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바로 지루함이다.


"또 커피구나."

나는 매일 아침 같은 생각을 한다. 뜨거운 에스프레소가 내 안으로 쏟아지고, 그 위에 우유 거품이 올려진다. 향긋한 커피 향이 피어오르지만, 나에겐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엔 달랐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커피의 쓴맛, 우유의 부드러움, 주인의 손길. 그 모든 것이 나를 설레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설렘은 사라졌고, 대신 단조로움이 자리 잡았다.


"왜 항상 커피뿐일까? 다른 음료는 안 마시는 걸까?"

나는 옆에 있는 유리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는 때때로 오렌지 주스를 담기도 하고, 시원한 아이스티를 담기도 한다. 다양한 맛과 색깔을 경험하는 그가 무척 부럽다.


어느 날, 나는 결심했다.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저 컵일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주인이 나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소망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식기세척기 속에서 깨끗이 씻긴 후 선반에 올려질 때마다 나는 기도했다.


"제발, 내일은 다른 음료를 담아주세요."


하지만 매일 아침은 늘 같았다. 커피, 또 커피.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주인이 나를 집어 들더니 싱크대로 향했다. 그리고는 찬물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물이야! 드디어 변화가!"


차가운 물이 내 안에 가득 찼다. 평소와는 다른 시원함이 나를 감쌌다. 비록 물이 무색무취지만, 나에겐 그 어떤 커피보다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따뜻한 차를 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시원한 스무디를 담기도 했다. 매일 똑같던 일상에 작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변화는 한순간에 크게 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서서히 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내 일상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을.


물론 여전히 대부분의 날, 나는 커피를 담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커피를 다르게 본다. 매일 조금씩 다른 농도, 다른 온도, 다른 향.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커피의 다양한 면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오늘의 커피는 어떤 맛일까?"

나는 이제 이런 기대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가끔은 주인이 나를 들고 테라스로 나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더욱 행복해진다. 차가운 실내에서 벗어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커피를 담고 있으면 그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지 깨닫는다.



나는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라는 것을.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매 순간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나는 더 이상 지루해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의 작은 변화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커피, 때로는 차, 때로는 물. 그 모든 순간이 특별하다.


나는 컵이다. 단순히 음료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주인의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동반자다. 매일 아침 주인에게 에너지와 활력을 전해주는 나의 역할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기억하자. 변화는 언제나 올 수 있다는 것을. 그 변화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나, 이 작은 컵의 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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