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0. 방을 비추던 따스한 빛의 기억

2부: 공간의 속삭임

나는 백열등이다. 천장에 달린 오래된 전구.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 같은 전구들은 대부분 사라진지 오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집 아들의 방 천장에 매달려 있다. 내가 아직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아들이 내 따스한 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밤이면 이 공간을 밝히는 게 내 일이다. 빛을 내는 순간 내 수명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기꺼이 이 일을 한다. 이것이 바로 내 존재의 이유니까.



불 좀 켜볼까?


주인의 손가락이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나는 온 힘을 다해 빛을 내뿜는다. 어둠이 물러나고 방 안은 따뜻한 빛으로 가득 찬다. 나는 이 순간이 좋다. 내가 만든 빛으로 주인이 책을 읽고, 가족들이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이 숙제를 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진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빛을 낼 때마다 생명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을. 언젠가는 나도 꺼지게 될 거라는 것을. 그래도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아, 이 전구 수명이 다 되어가나 봐. 점점 어두워지네.



주인의 말에 나는 슬픔보다는 오히려 자부심을 느낀다. 그만큼 열심히 내 역할을 다했다는 증거니까. 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빛을 내기로 마음먹는다.


가끔은 힘들 때도 있다. 나는 빛을 내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주인이 전기 요금 고지서를 보며 한숨 쉴 때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꼭 필요할 때만 켜져야 하는데, 그걸 스스로 결정할 수 없어 안타깝다.


어느 날 밤, 고열로 아픈 아이를 간호하느라 밤을 새우던 주인이 나직이 나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고마워. 네가 있어 정말 든든해." 

그 순간 나는 내 존재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내가 없었다면, 이 가족은 불안한 어둠 속에서 밤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나의 희생으로 아이와 주인이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세월이 흘러 나의 빛은 점점 희미해졌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빛을 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마지막 빛을 내뿜으며 생각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어. 누군가의 삶을 밝혀줄 수 있어서...



그렇게 나는 꺼졌다. 주인은 나를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그리고 내 자리에는 차가운 빛을 내는 LED가 들어섰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따뜻한 빛을 내는 우리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더 밝은 빛을 내는 새로운 등들이 우리의 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슬프지 않다. 내가 비춘 따뜻한 빛이 누군가의 마음 한켠에 작은 추억으로 남아있을 테니까. 어쩌면 그 추억이 진정한 영원한 빛일지도 모른다.


나는 백열등이었다. 짧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어둠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것. 그것이 나의 사명이었고, 나는 그 사명을 다했다. 


이제 내 빛은 꺼졌지만, 우리가 비춘 따스한 빛은 언제까지나 그들의 기억 속에서 반짝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작은 영원이자 자부심이다.



이전 10화 09. 책상 서랍의 비밀 - 숨겨진 이야기의 보관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