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2. 우산의 소외감 - 필요할 때만 찾는 관계에 대해

2부: 공간의 속삭임

나는 현관 옆 우산꽂이에 꽂혀 있는 우산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이곳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맑은 날이면 나는 그저 잊혀진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 나는 갑자기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된다.



"아, 비가 오네. 우산 어디 있지?"



주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설렘과 동시에 씁쓸함을 느낀다. 드디어 내가 필요한 순간이 왔다는 기쁨과 함께, 오직 이럴 때만 나를 찾는다는 서운함이 교차한다.


주인의 손에 잡혀 밖으로 나가면, 나는 최선을 다해 그를 비로부터 보호한다. 빗방울이 내 천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뿌듯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내가 존재하는 이유니까.


"다행이다. 우산 가져와서."


주인의 안도의 한숨을 들을 때면, 나는 행복하다. 하지만 동시에 묻고 싶다. "왜 비가 올 때만 나를 기억하나요?"



비가 그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주인은 나를 한쪽에 세워둔다. 때로는 나를 잊고 가버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깊은 소외감을 느낀다. 


"또 나를 잊고 가시는구나..."


다행히 대부분의 경우 주인은 나를 기억해내고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한번은 카페에 나를 두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 버려진 줄 알았다.


"이제 영영 헤어지는 건가..."


다행히 주인이 깨닫고 나를 찾으러 왔지만, 그 경험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맑은 날이 계속되면 나는 우산꽂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 동안 나는 생각한다. 나의 존재 의미에 대해, 그리고 이런 관계의 본질에 대해.




"나는 정말 필요할 때만 찾는 존재일 뿐인가?"



하지만 점차 깨달았다.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주인이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뜻이라는 것을. 나의 부재가 오히려 좋은 날씨의 증거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비가 오든 그렇지 않든, 나는 언제나 준비된 상태로 기다리겠다고. 주인이 나를 필요로 할 그 순간을 위해.


어느 날, 주인이 우산꽂이를 정리하다가 나를 발견했다.


"아, 이 우산. 지난번 폭우 때 정말 고마웠지. 덕분에 옷 한 방울 안 젖고 출근했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모든 서운함이 녹아내렸다. 주인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나의 가치를 알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나의 존재 가치가 사용 빈도에 있지 않다는 것을. 필요한 순간에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진정한 가치라는 것을.




나는 우산이다. 


때로는 잊혀지고, 때로는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 하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서 주인을 지켜줄 준비가 되어 있는 진실한 동반자. 


비가 오나 맑은 날이나, 나는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킬 것이다. 언젠가 다시 주인이 나를 필요로 할 그 순간을 위해, 오늘도 나는 조용히 기다린다.


                    

이전 12화 11. 발자국으로 쓰는 우리들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