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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거울의 성찰 - 타인의 모습 속 나를 발견하다

2부: 공간의 속삭임

나는 이 집 현관에 걸린 벽거울이다. 매일 가족들의 모습을 비추지만, 사실 나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그들의 마음까지도 비춰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더욱 아프다. 말하지 않아도 다 보이니까.


큰딸이 학교 폭력으로 힘들어할 때, 나는 그 아이의 떨리는 눈빛을 보았다. 교복을 입은 채 내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날, 그 아이의 눈에서 두려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엄마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보였다.

"괜찮아, 그냥 오늘 조금 피곤해서..."




거짓말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아이가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는지, 얼마나 도움이 필요한지. 하지만 나는 그저 그 모습을 비춰줄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그게 최선일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비춰주는 모습 속에서 그 아이는 차츰 자신과 마주하는 법을 배워갔으니까.


막내아들은 매일 아침 게임을 하다가 지각할까 봐 허둥지둥 달려 나간다. 엄마에게는 일찍 일어났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아이가 밤새 몰래 게임을 했다는 것도, 성적표를 숨기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나는 또한 본다. 그 아이가 얼마나 자신을 책망하는지, 얼마나 변하고 싶어 하는지도.


아빠는 요즘 회사가 어렵다. 매일 아침 넥타이를 매만지며 한숨을 내쉰다. 가끔은 늦은 밤, 술에 취해 들어와 내 앞에 서서 중얼거린다.

"나는 가장으로서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그때마다 나는 그를 있는 그대로 비춰준다. 흐트러진 넥타이, 지친 얼굴, 그러나 여전히 가족을 위해 하루를 시작하는 의지가 담긴 눈빛까지. 그는 그렇게 자신을 마주하고 다시 힘을 내곤 한다.


엄마는 모든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아이들의 고민도, 남편의 어려움도 다 알고 있지만, 때를 기다린다. 나는 그런 엄마의 눈가에 맺히는 눈물도, 홀로 있을 때 무너지는 어깨도 모두 비춰준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서는 모습도.


이렇게 나는 이 가족의 모든 비밀을 안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서로를 향한 마음을 숨기는 것처럼, 나도 그들의 비밀을 지켜준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어느 날, 극적인 일이 있었다. 




큰딸이 울면서 들어왔을 때, 막내아들이 그걸 보았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그날은 달랐다. 

"누나... 괜찮아?"

그 한마디에 큰딸은 더는 참지 못하고 모든 걸 털어놓았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 그동안의 고민들을. 그리고 막내아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게임 중독으로 힘들었던 것, 성적 때문에 고민했던 것들을.


그날 밤, 온 가족이 거실에 모였다. 아빠도 회사의 어려움을 이야기했고, 엄마도 그동안의 걱정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저 현관에서 그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때로는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마치 내가 그들의 모습을 묵묵히 비춰주듯이.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서 그들을 지켜본다. 웃는 모습도, 우는 모습도,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이제는 더욱 자신 있게 그들을 비춰준다. 그들이 서로의 마음을 비출 수 있게 된 것처럼, 나도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으니까.


오늘도 나는 그들을 기다린다. 말없이 지켜보고, 묵묵히 비춰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이자, 가장 깊은 사랑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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