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게 좋아 Nov 17. 2024

부처와 원수

그런 아침이 있다. 눈을 뜨자마자 막막함이 밀려오는 아침이. 지긋지긋한 하루가 또 시작되는구나. 오늘은 또 어떻게 하루를 버텨야 할까. 밤이 올 때까지 이 긴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나는 그만 다시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런 상념에 사로잡히는 아침이면 이미 고된 하루를 살아낸 듯 온몸이 무겁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이불을 개는 작은 동작조차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힘겹다.      


그가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해결할 수 없어. 지금 다니는 직장을 떠나 이직해도,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도, 심지어는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산속에 들어가거나 이민을 가도 똑같을 거야. 현재 해결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우리는 지금 이대로 완전하니까.      


그 말 듣는 나 눈물 한 방울 흘린다. 늙은 여자가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한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절한다. 손바닥을 싹싹 빌며 염불을 외며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한다. 그녀의 여위고 작은 등을 발로 차고 싶다거나 하얗게 샌 머리채를 휘어잡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 했던 것 같다. 늙은 여자는 3년 전에는 교회에 다녔다.      

당신의 기도는 부처님도 하느님도 들어주지 않아요.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거나 자식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달라거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거나... 미워하는 사람을 죽여달라는 기도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아요.      


하지만 사실 나는 미워하는 사람을 죽여달라고 부처에게 빌고 싶었고, 내 소원을 들어준다면 알라나 예수에게도 빌 수 있을 것 같았고, 아니 그 사람을 살게 해달라고. 눈 뜬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만들어 달라고, 그 사람의 자식도 그 자식의 자식도 지옥 속에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고 싶었다. 동시에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될 수만 있다면 내 심장을 꺼내 건네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을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달라고 원수의 발등에 입맞출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나를 보고 늙은 여자가 운다. 그녀가 울면 나는 울지 않는다. 그녀가 내 울음을 빼앗가버렸다. 그녀 앞에서 나는 눈물샘이 말라버려 울고 싶을 때도 울 수가 없고. 그녀는 나 대신에 두 배로 눈물을 흘려야 했으며 그녀는 조용히 뒤돌아 눕곤 했다. 여위고 마른 등이다.     

 

사는 게 지옥 같구나.

나는 꿈속에서도 지옥에 살고 있어요.


그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밤이 새도록 작은 등에 이야기를 쏟아냈다. 저주에 관한 이야기. 늙은 여자가 지옥에 떨어져 죽어서도 고통에 몸부림치기 바란다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바라왔던 소망을 들려주었다. 내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늙은 여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늙은 여자의 유난히 동그란 뒷바퀴는 내 것과 닮아있다. 매끄러워 보인다. 사람의 어느 부분은 영원히 늙지 않을 지도 모른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귓바퀴가 색색거리며 흔들린다. 아주 작은 날카로운 것에도 금세 찢어질 것 같은 연약한 살점, 핏줄이 바짝 서있는 둥근 홈에 피가 고여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전 20화 여름, 하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