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이미지는 무엇입니까. 작열하는 태양. 하늘을 올려다보면 눈이 멀 것만 같고. 가만히 있어도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 축축한 머리카락. 얼굴에 엉겨붙은 머리칼을 힘겹게 떼어내며 뜨거운 바람에 숨이 막히는. 그런 장면들과 함께 좋았던 기억들은 모두 여름에 있었던 일인 것만 같다. 아름다운 추억들은 모두 여름 태양 아래서 만들어진 일인 것만 같다.
여름은 마법 같은데, 지나고 나서야 마법 같았다고 생각되는 그런 계절이다. 나는 여름을 굉장히 싫어하지만 여름 하면 상투적이게도 청춘, 젊음, 사랑 이런 뻔한 단어들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물놀이를 즐기는 젊은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고 진실만 말하기로 약속하고 캠프파이어 앞에 둘러앉은 친구들이 가장 솔직하지 못한 말들만 주고받는, 그런 이미지들밖에 연상되지 않는다.
나는 여름을 싫어하고 겨울을 좋아하는데도 좋았던 일들은 다 여름에 일어난 일인 것만 같고 슬펐던 일들은 다 겨울에 일어난 일인 것만 같다. 이상하다. 사람은 햇빛을 보고 살아야 행복하다는데 그런 연유일까?
나는 대체로 여름에 가장 솔직하지 못 했고 여름에 자주 눈물 흘렸고 여름의 더위에 고통받았으며 매일 짜증나 있었는데 여름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4년 전 여름에 그를 만났고 1년 전 여름에 그와 이별했고 올 여름엔 그에게 다시 연락했다가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나를 아직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올 여름엔 그를 많이 생각했고, 외로웠고 삶은 흔들렸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나는 선선해지는 날씨를 환영하면서도 여름을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4년 전 스물여섯 살의 여름, 그때 정말 즐거웠지. 환상적인 여름이었지. 우린 모두 어렸고 그저 즐거웠지. 우리는 너무 빨리 친해졌고 매일을 웃으며,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두 달을 보냈지. 그중 난 너와 사랑에 빠졌고 나는 사랑과 우정에 둘러싸인 채 최고의 여름을 보냈지. 다함께 둘러앉아 밤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마시던 날 우리 중 누군가 말했다. 아, 이게 청춘이지.
그때는 모든 것을 가진 느낌이었는데 지금 내겐 사랑도 우정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스물여섯 살, 그해 내가 한 최고의 선택은 여름을 그곳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것. 그곳에서 우리들을 만난 것. 시간이 흐른 뒤 나는 한때 너희들 전부를 미워하기도 했는데, 훼손되지 않는 추억이란 얼마나 강력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