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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게 좋아 Dec 15. 2024

새벽 기상 10개월, 10년은 해봐야지

오후 열시에 잠들고 새벽 다섯 시에 기상한 지 벌써 10개월이 흘렀다. 오늘은 실컷 늦잠잘 수 있는 일요일이지만 어김없이 새벽에 눈을 떴다. 작심삼일이 내 주특기 중 하나지만 새벽 기상은 꾸준히 지키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고. 그만큼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것이 만족스럽다. 나는 여전히 알콜중독과 싸우고 있고 삶은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새벽 기상을 시작한 후 술 마시는 빈도가 현격히 줄었고 정신 건강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


술을 마시면 도저히 다음날 다섯 시에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마시고 싶어도 자제가 된다. 알콜이 주는 기쁨보다 새벽에 일어나 책 읽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맥주 한 캔 마시는 것쯤이야 다음날 기상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나 같은 알콜중독자는 술 한 모금 들어가는 순간 끝장을 봐야 하기 때문에 애초에 마시지 않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11월달부터 핸드폰 달력에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을 체크하고 있다. 금주에 성공한 날마다 폭죽 이모티콘을 추가해놨는데, 폭죽이 빼곡한 11월 달력을 보고 있노라면 매우 뿌듯하다.


특히 평일에는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 주말이면 무너지는 날이 많지만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최소 주 4일 폭음하는 패턴을 몇 년간 이어온 알콜중독자에게는 엄청난 발전 아니겠는가. 12월 초에는 이런저런 일들로 술 마시는 날이 많았다. 이번 주부터 다시 빈도수를 확 줄일 예정이다.  


나는 기상 직후 일곱 시까지 책을 읽는다. 두 시간 동안 독서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인데, 일곱 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알람이 울릴 때까지 핸드폰을 전혀 확인하지 않는다. 핸드폰 화면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흐트러지고 곧장 중독되는 느낌이 강해서 일부러 전혀 보지 않는다. 두 시간 동안 디지털 디톡스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도 아침 패턴의 매우 만족스러운 점 중 하나다.


새벽에 일어나는 노하우는 별 거 없다. 그냥 뇌 빼고 일어나야 한다.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알람이 울리자마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다섯 시에 벌떡 일어난 후 가장 먼저 물을 마시고 이불을 갠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일 동안 스트레칭을 한다. 이때쯤 잠이 거의 깬다. 이후 두 시간 동안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다.


커피를 굉장히 자주 마시게 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인생과 건강에 술이 안 좋냐 카페인이 안 좋냐, 한다면 두말할 여지가 없으니 넘어간다. 물이 끓는 동안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하고 짬짬이 집안을 청소한다.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새벽 기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아직 술을 끊지 못하고 있고,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주말에 늦잠을 자는 경우도 있다. 평일에도 가끔 너무 늦게 잠드는 날이면 그냥 숙면을 택한다. 새벽 기상이 익숙해지면서 강박이 생겼었는데, 이젠 강박을 어느정도 내려놓고 내 상황에 맞춰가며 하고 있다. 특히나 나는 잠을 줄이진 않는다. 7시간 취침을 꼭 지키려고 한다.


내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두 시간 동안 책을 읽은 후 출근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특히 독서를 한다는 것에서 오오 감탄사를 내뱉으며 내가 갓생을 사는 성실한 인간인 것처럼 가끔 추켜세워주고는 하는데 사실과 거리가 멀다.


처음엔 나도 남들이 부르는 것처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행위를 별 생각 없이 미라클모닝이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새벽 기상이라고 생각할 뿐 미라클모닝도 갓생도 뭣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일찍 일어나는 것이지 다섯 시에 일어난다고 대단한 것도 아니고 매일 독서를 한다고 삶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읽는 책은 자기개발서도 아니고 경제서도 아니다. 내 독서는 철저히 취미에 기반해 있다. 그렇기에 다섯 시에 일어나는 것이 부담스럽지도, 괴롭지도 않다. 축구 경기 시청을 좋아하는 사람이 중요한 해외 축구 일정이 있는 날이면 새벽에 알람을 맞춰두고 일어나 축구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억지로가 아니라 순전히 좋아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 것이다.


미라클모닝에 대한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새벽 기상을 시작한 이후 삶이 바뀌었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 본질은 단순히 일찍 일어나서 인생이 바뀐다기보다, 새벽 기상이 주는 자기주도성과 통제력에 있을 것이다. 사실 성실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꼭 새벽에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벽에 기상하면 삶이 바뀐다는 것의 의미를, 괴로워하면서 억지로 새벽에 눈을 떠 하기 싫은 운동을 하고 지루한 자기개발서를 읽고, 새벽 시간을 활용해 부업이나 사업 등으로 수입을 창출해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글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긴 어려울 것이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한다면 금방 포기하는 경우도 빈번할 것이다. 삶이 바뀐다는 것은, 내가 하루의 시작을 주도한다는 감각에서 출발한다.  


10개월 동안 새벽 기상을 해본 결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느낌은 상당히 중독적이다. 오늘도 더 자고 싶은 욕구를 이겨내고 일어나서 독서가 됐든 운동이나 공부가 됐든 내가 선택한 일을 했다는 성취감, 뿌듯함, 일정한 생활 패턴에서 오는 안정감과 몸과 정신이 건강해지는 느낌, 내가 내 인생을 주도하고 있다는 이 감각. 하루의 질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저녁형 인간은 저녁형 인간대로의 낭만이 있을 것이고, 나는 새벽형 인간으로서 새벽의 고요함이 좋다. 복잡한 서울의 거리가 소음 하나 없이 잠들어 있을 때면,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며 비몽사몽한 머리가 깨어가는 것을 느끼는 새벽이면 서울을 조금은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앞으로 10년, 아니 평생을 새벽 기상을 할 것 같다. 해본 후 안 맞으면 그만두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새벽 기상을 시도해보려는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으로, 매우 추천한다.


나는 내가 시간과 젊음과 건강을 팔아 돈을 버는 무기력한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 도살장 끌려가듯 억지로 회사에 출근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뜻대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더, 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큰힘이 된다. 내가 원하는 아침을 보내고 왔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숨막히는 사무실 생활을 그나마 버틸 수 있게 해주고, 내일 아침 눈 뜰 용기를 주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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