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대표는 김대표다.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모두 가깝게 지내는 편인데, 김대표는 미디어에 나오는 꼰대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인물이다.
사실 미디어에서 꼰대라고 희화화하는 전형적인 인물을 현실에서는 제대로 마주한 적 없다. 오히려 10년 가까운 세월 꼰대를 조롱하는 컨텐츠들이 쌓이다 보니 스스로 조심하는 어른들을 더 많이 본 듯하다. 물론 내가 보기에 50대 이상의 절대다수는 꼰대다. 조언과 걱정을 가장한 꼰대의 기질이 적든 크든 확실히 있는데, 미디어에 나오는 전형적인 인물의 모습을 100퍼센트 구현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런 희귀한 꼰대의 전형을 4개월째 일하는 이 회사에서 처음 만났다. 요즘 MZ들은 말이야 이기적이고 나약해 빠졌어. 나때는 매일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하고 첫 차타고 출근했어. 처음 들었을 땐 내가 이 문장을 육성으로 듣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엠지 욕으로 시작해서 나때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수많은 레퍼토리를 듣자보니 나중에는 기분이 나빴고 지금은 가끔 짜증나긴 해도 대체로 별 생각 없다. 조금 재밌기도 하다.
김대표는 지독한 꼰대지만 사실 나는 김대표를 그닥 싫어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내 포지션은 광대. 살면서 그런 포지션을 맡게 되는 상황들이 온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사람들과 밥도 같이 먹지 않는 낯가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분위기만 맞으면 나는 아주 장난스럽고 능청스러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또래는 물론이고 남자 어른들에게 특히 내가 많이 취하는 태도다.
아주 고지식한 사람이 아닌 이상 중년 이상의 남자들은 딸뻘인 젊은 여자가 능글맞게 굴면서 장난을 쳐오고 가끔은 버릇 없어 보일 정도로 능청을 떨어대며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을 당돌하면서도 귀엽게 여긴다는 걸 알고 있다. 또래 남자들은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에서는 상사인 남자 어른들이 어려워 그렇게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김대표와 나의 관계는 투닥거리며 웃고 떠드는 관계. 꼰대와 엠지 사원.
우리의 대화는 이렇다. 김대표가 지나가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웃는다. 왜 웃고 그러나? 김대표님 얼굴 보니까 반가워서요. 나는 이미 결혼 해서 자식이 둘이나 있는디. 아쉽네요 20년 만 일찍 태어날 걸. 아니 이게 뭔 대화냐.
전라도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는 목소리다. 김대표는 껄걸 웃고 다른 직원들도 소리내 웃는다. 나는 항상, 항상 웃고 있다.
처음에는 김대표가 싫었다. 점심식사 자리마다 엠지들을 욕했다. 그에게는 엠지에 해당하는 대학생 자녀 둘이 있는데도 거리낌없이 말을 내뱉는다. 나는 능글맞으면서도 가끔 뼈가 있는 말로 되받아친다. 통쾌해하는 또래 사원들의 응원이 몇 번 돌아온다. 화가 난다. 무심하다. 재미있다. 어떻게 되받아쳐서 사람들을 웃겨줄까.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주했지만 결국, 나는 조금 슬퍼졌던 것 같다.
나는 정상적인 부모를 두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굶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용돈을 받지 못 했다. 집에는 따스함이 없었다. 학업에 신경쓸 수 없었다. 부모 중 한 명과 평생을 함께 살아본 적 없다. 마음이 소란스러워서 불면증에 걸렸다.
20대 초반부터 혼자 살았다. 대학교 학비를 부모에게 받아본 적 없다. 자취 비용을 부모에게 받아본 적 없다. 학원 비용을 부모에게 받아본 적 없다. 용돈을 받아본 적 없다. 알바를 그만둬 본 적 없다. 방학 때면 살아남기 위해 주 7일, 매일 8시간씩 일했다. 생존하기 위해 생활비 장학금을 미친 듯이 찾아다니며 일했다. 학기 중에도 일했다. 어깨가 탈구됐을 때 다쳤다는 사실을 알리면 알바에서 잘릴까봐 깁스를 풀고 일했고, 식중독에 걸렸을 때 다음날 알바를 못갈까봐, 그래서 돈을 벌지 못할까 겁이나 몸이 낫길 기도하며 잠들었다.
열심히 공부했다. 홀로 부동산을 찾아다니며 자취방을 계약했다. 나는 6년간 빛이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살았다. 나는 스스로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고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고 돈을 벌어서 적어도 성인이 된 이후,(나는 전 생애라고 말하고 싶지만) 모든 것을 홀로 살아냈다.
다른 건 괜찮았는데 한 번도 내가 사는 곳에 와보겠다는 말을 부모님에게 들어보지 못한 건 조금 아쉬워… 언젠가 한때 가까웠던,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도 생각난다. 사실 안 괜찮았던 것도.
김대표는 자신은 부모를 부양하면서도 자식에게는 부양받지 못하는 최초의 세대라며 한탄했다. 엠지들을 욕했다.
김대표는 가끔 나에게 칭찬하고 저녁에는 내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갈 테니 밥 먹고 가라고 한다. 집에 가도 밥해줄 사람 없지 않냐면서. 자기가 먹고 싶지 않아도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르기도 하고 내가 일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혀 부탁하면 잘 도와준다. 나와 투닥거리며 웃는다. 나의 농담에, 어쩌면 무례하고 버릇없는 능청에 화낸 적 없다.
내가 웃으며 인사하면, 웃으며 받아준다.
그에게는 대학생인 아들과 딸이 있다. 엠지들이 부모에게 기생한다고 욕하던 그의 말과 모순되게 그의 자식들은 모두 김대표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가 자식들과 통화하는 모습을 몇 번 봤다. 그렇게 자상한 아버지의 음성을 나는 들어본 적 있던가.
나는 오늘도 김대표의 말을 되받아친다. 맞아요. 부모님이 해주신 게 맞죠. 아빠가 돈 준다고 해서 받은 게 죄인가요? 뭐 어떡하겠어요. 어깨를 으쓱하고 능청을 떨면 김대표는 특이한 친구라며 웃는다. 아빠에게 감사라하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는 작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김대표는 엠지가 배고픈 줄 모른다고 말한다. 굶주려본 적 없어서 간절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럴수록 나는 입을 벌리고 보챈다. 더, 더 달라고. 너무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다고, 먹이를 물어온 어미새 앞에서 부리를 활짝 벌리고 고개를 앞뒤로 흔드는 아기새처럼, 포만감을 인지할 수 없어 끝없이 먹다가 배가 터져 죽는 물고기처럼, 자꾸만 허기가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