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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Dec 16. 2023

'간다라'는 어디일까?

간다라 이야기 #3

앞서 두 편에서 쿠날라 스투파와 발랄톱 스투파에 대한 이야기로 '간다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간다라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한 후에 글을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답사를 다니면서 만난 스투파가 너무 아름다웠고, 또 거기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 다소 설익었을지라도 그 감동을 잊기 전에 글을 남기고자 한 것이다. 간다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먼저 간다라가 어디인지 그리무엇인지 등을 살피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래서 살짝 늦었지만 간다라에 대한 간단한 정보부터 알아보고자 한다.


간다라의 위치, 인더스강의 상류에 해당하며 지금의 파키스탄 북부 지방이다.


간다라는 어디일까? 지금의 세계지도를 열심히 찾아보아도 '간다라(Gandhara)'라고 적힌 곳은 없다. 이는 옛 지명으로, 파키스탄의 북서부 일대에 있었던 고대 왕국(혹은 민족), 그리고 그 이후 그 일대를 불러왔던 과거의 명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경계를 논하는 것도 다소 불분명하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간다라를 좁게 보는 견해와 넓게 보는 견해가 공존하고 있다. 간다라를 좁게 보자면 파키스탄 북서부에 위치한 카이베르파크툰크와(KPK)주의 주도 페샤와르를 중심으로 한 페샤와르 분지를 일컫는다. 이 지역은 북, 서, 남으로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으로는 인더스 강에 맞닿아 있어 지형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간다라의 중심지인 페샤와르 분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만, 간다라는 이 지역만이 아니라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확장된 문화권 포함해서 말해진다. 동쪽으로 인더스 강을 건 탁실라 지역과, 북쪽의 스왓 협곡 깊숙한 곳, 심지어 힌두쿠시 산맥을 건너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더 나아가 우즈베키스탄 남부의 테르메즈 지역까지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는 페샤와르 분지를 중심으로 시작된 간다라 문화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는 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간다라' 일까? 간다라라는 명칭의 기원은 기원전 15세기부터 기원전 12세기에 걸쳐 이 지역에 거주했던 간다 민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민족은 힌두교 경전인 리그베다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 등 중국의 많은 기록에서 이 지역의 명칭을 남기고 있는데, 건타위, 건타국, 건타라, 혹은 건타라국이라고 불렀다. 간다리 민족의 나라가 사라진 이후에도 '간다라'와 유사한 명칭은 이 지역을 부르는 명칭으로 남겨졌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 간다라에서 특별한 문화가 꽃필수 있었을까? 간다라 문화가 독보적으로 성장하고 폭발적으로 확산한 것에는 복합적인 이유들이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특별한 입지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인도아대륙 지형도(1917)


위 지도는 인도아대륙의 지형도이다. 산맥과 바다로 둘러싸여 천혜의 요새와도 같다. 인도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북쪽의 히말라야를 넘기는 어렵고, 서쪽으로 넓게 펼쳐진 술레이만 산맥도 만만치 않다. 그나마 넘을 엄두가 나는 것은 히말라야 산맥과 술레이만 산맥의 사이에 위치한 '힌두쿠시 산맥'이다. 그나마 넘을만하다고 하였지만, '힌두쿠시'라는 단어의 의미는 힌두의 학살자라는 의미이다. 과거 많은 힌두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나가던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해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힌두쿠시를 건너온 역사적 인물들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건너온 경우에도 역사에 큰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가장 알려진 사람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기원전 329년 봄,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힌두쿠시를 넘었다. 이후 그는 인도에 처음 발을 디뎠고, 그가 남긴 그리스계 국가들은 이 지역에 그리스 문화를 전파했다. 또한 1504년 바부르도 힌두쿠시를 건넜다. 티무르의 후예인 그는 인도에 무굴제국을 건국하였고 인도 전역을 지배한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했다. 즉 힌두쿠시는 쉽게 넘을 수 없는 산맥이며, 혹여 이를 넘었다고 하더라도 넘을 만한 인물만이 넘었다.


힌두쿠시를 넘어 인도에 발을 처음 디디게 되는 곳이 바로 간다라이다. 간다라는 외부의 세력이 인도에 넘어왔을 때 처음으로 접하는 지역인 한편, 인도에서 발전한 문화가 외부의 문화와도 처음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즉, 간다라는 문화의 소용돌이가 치는 곳이었다.


특히 간다라 예술은 알렉산드로스가 가져온 그리스 예술과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 철학이 융합한 결과이다. 이는 동서의 결합이자 미술사의 특이점이었다. 여기에 쿠샨왕조의 적극적인 불교장려가 더해져 간다라 예술은 전성기를 맞았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간다라 불상과 유적들이며, 수 천년이 지난 우리에게도 감동을 주는 것이다.


간다라의 문화유산들 (상좌: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상우: 모라모라두 스투파, 하좌: 라호르 박물관 소장 고행상, 하우: 라호르 박물관 소장 부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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