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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Feb 10. 2024

엘라파트라의 연못

간다라 이야기 #8

파키스탄 펀잡주의 하산압달에는 오래된 영묘가 있다. 하킴의 영묘라고 불리는 팔각형의 이 오래된 건물은 16세기 무굴제국 시기에 왕실의 주치의로서 활약했던 의사를 위해 지어졌다. 영묘의 서쪽에는 영묘건축보다 더 눈이가는 연못이 있다. 연못은 사각형의 역피라미드 형태로 잘 다듬어져 있다. 사실 영묘보다 이 연못이 훨씬 더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 연못은 과거 간다라 지역이 불교로 융성했을 당시, 불교 설화에서 전해지는 엘라파트라 용왕(Elāpattra/Elāpatra, Pā.Erāpatta, 伊羅鉢怛羅, 伊羅鉢)이 살았던 연못이라고 해지는 곳이다.


하산압달에 위치한 하킴의 영묘


이 연못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적 기록은 당나라의 유명한 승려 현장이 남긴 대당서역기(CE 646)이다. 현장 법사는 '탁실라에서 서북 70리의 위치에 용왕 엘라파트라의 연못이 있는데, 주위는 100여보이다. 물은 맑고, 연꽃을 비롯한 아름다운 꽃들이 진귀한 색상으로 피어있다. 이 용왕은 카샤바불 시기에 엘라파트라 나무를 손상시켜 용왕으로 태어났다.'라고 기록을 남겼다. 현재의 연못은 기록의 묘사보다 작은 14.5m x 13.0m인데, 아마도 영묘 건설과정에서 물이 쏟아 나는, 수심이 깊은 쪽을 중심으로 규모를 축소하여 정비하였을 수도 있을 듯하다.


엘라파트라 연못


용왕 엘라파트라에 대한 이야기는 율장(불교 교단의 계율을 모은 문서)을 비롯한 여러 불교문헌(미사색부화혜오분율, 사분율,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 마하바스투, 불본행집경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록마다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는데, 용왕 엘라파트라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 이전 가섭불의 시절 비구였던 엘라파트라는 갠지스 강가에 자란 식물 에리카의 잎을 의도치 않게 뜯었다. 이 허물을 사소하게 취급했던 엘라파트라는 이 행위를 참회하지 않은 채 수행, 정진을 하였지만 결국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 그는 이 죄로 나가로 태어났다. 엘라파트라는 정진을 하여 나가왕이 되었지만 결국 축생의 몸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어 한탄하였다. 엘라파트라는 붓다를 만나 자신의 고민을 물었다. 붓다는 미륵불이 세상에 출현하면 나가의 몸을 벗어나, 출가하여 계를 받고 범행을 닦아 괴로움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을 하였다. - 엘라파트라 이야기


(좌) 하킴의 영묘, (우) 랄라루크 공주의 영묘


지금의 엘라파트라 연못은 완전히 무굴시대의 왕실 영묘 산으로 정비되어 있다. 하킴의 영묘 옆으로는 랄라루크라는 무굴시대 공주의 영묘가 들어서 있다.  


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유적군 내 곳곳에서 간다라시대의 불교 유적의 흔적이 공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못의 제방을 살펴보면 2~5세기에 사용되었던 석조 조적기술이 확인되며, 영묘 주변으로 간다라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열들이 확인된다. 파키스탄 고고학자 마뭇 울 핫산박사는 이 일대의 발굴조사를 통해 간다라 불교 유적이 있음을 이미 확인했다고 한다.


* 바로 인근에 구루와라 스리 판자 사힙(Gurdwara Sri Panja Sahib)이라는 시크교 사원의 연못이 엘라파트라 용왕의 연못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마뭇 울 핫산 박사는 연못 주변의 발굴조사 결과 이곳이 엘라파트라 연못일 확률이 높다고 하였.


(좌) 간다라 시대의 석조 조적 양식이 확인되는 연못 벽, (우) 영묘 인근에서 확인되는 간다라 시대의 석열 흔적


많은 성지들은 어느 시기에든 중요한 장소로 사용되어 왔기에 유적이 겹치는 일들이 많다. 엘라파트라 연못 일대도 세 종교(불교, 이슬람교, 시크교)가 밀집되어 있다. 다만 지금은 문화유산의 설명 및 활용이 너무 이슬람 쪽으로만 편중된듯하여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참고문헌

강형철, ‘엘라파트라 용왕의 수수께끼: 초기 붓다전기의 에피소드 삽입유형’, “불교연구”, 제58집(2023), pp.239-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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