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실라에서 절경이 가장 빼어난 스투파를 꼽자면, 단연 '바말라 스투파'이다. 바말라 스투파는 히말라야 산맥의 끝자락, 머리산과 하자라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산세만으로도 수려한데 유유히 흐르는 하로강이 굽어 흘러 비경을 자아낸다. 부처는 생전에 스투파는 마을 한가운데에 설치하라고 했고, 승원은 마을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지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후대의 불교도들이 이렇게 좋은 자연경관을 가진 입지에 수도원을 짓지 않고서는 못 배겼을 듯하다.
(좌) 바말라 스투파와 하로강의 하류 방면 풍경, (우) 상류 방면 풍경
바말라를 방문하기는 간단하지는 않다. 탁실라 박물관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가까이 가야 하는데, 30분은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원으로 가는 길은 하로 강 옆을 따라 난 비포장길이다. 한쪽은 산비탈이고 다른 한쪽은 낭떠러지다. 차를 돌릴 틈도 없는 좁은 길이 계속 이어져 있어, 혹여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어떻게 할지 마음을 졸이게 된다. 특히 위험했던 십여분의 산길은 한 시간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언덕 위에 위치한 바말라 유적 사원이 위치한 언덕, 1시 방향이 승원으로 동쪽에 해당한다.
바말라 사원은 두 개의 큰 산 사이로 굽어 흐르는 강 안쪽에 솟아오른 언덕 위에 있다. 약 100년 전에 이 사원을 조사했던 존 마셜은 이 사원의 입지를 보고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라고 평가를 했는데, 확실히 수도원이 아니라 요새가 있었어도 어색하지 않을 지형이다.
언덕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언덕 위에 오르면 절경이 펼쳐지는데, 비포장길을 따라오면서 누적되어 온 긴장과 우려가 싹 사라진다.
바말라 스투파를 찾아가는 길
지금의 하로강은 바말라 사원 남쪽으로 흘러가는데, 지형을 보면 과거에는 사원 북쪽으로도 강이 흘렀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길이 바뀐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사원이 만들어진 당시인 2천 년 전에는 잘하면 이 언덕이 섬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혹여 그랬다면 더 멋진 경관을 가졌을 수도 있겠다.)
바말라 사원이 있는 언덕은 정상부는 동서로 긴 평지로 되어있다. 이 평지는 사원을 만들기 위해서 편평하게 조성된 것 같다. 사원 건물들은 지형에 맞춰 동서로 배열되어 있다. 동쪽으로부터 승원, 중간에는 대형 스투파, 서쪽(흰색 보호각 아래)에는 초대형 열반상과 작은 스투파가 있다.
동쪽의 승방지 가장 동쪽 편에는 소규모의 승방지가 있다. 25개 남짓한 방들이 중정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다. 뒤편에는 주방과 하인들의 공간이 확인된다. 잔존하는 것은 1층 구조뿐이지만, 조사 결과에 따르면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있었다고 하니, 방의 수는 50개까지 늘어날 수도 있을 듯하다. 간다라에서는 방 하나당 두 명이 사용한 점을 생각해 보면, 수도원에 수용 한 승려는 약 50명에서 많게는 100명 정도였을 것이다.
승방지 항공사진
승방지는 최근에 깨끗하게 복원되어 깔끔하다. 잔존 현황을 명확히 하며, 추가적인 손상을 방지하는 선에서의 현대적 복원이 이루어져 있다. 다만 석구조만 남아,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어 다소 아쉽다. 보통 승방 건축에는 목구조가 많이 더해져 있기 때문에 당시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특히 바말라의 승원은 주변의 산세와 강이 품은 절경과 잘 어우러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과거의 모습이 어떠하였을지 궁금해지는 승원이다.
십자형 계단을 가진 바말라 스투파
중앙에는 거대한 스투파가 놓여있다. 크기는 한 변이 약 30 정도이다. 이미 도굴과 파손으로 상부구조는 알아볼 수 없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기단부가 명확하게 남아있어서, 형태와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기단은 정사각형이며, 기대가 높게 솟아있다. 사방으로 계단이 확장되어 있다. 평면은 십자가에 정사각형 모양이 겹친 형태다.
(좌) 측면에서 바라본 바말라 스투파, (우) 바말라 스투파 복원 추정도 (KPDOAM)
상부의 구조는 원형의 스투파가 알과 같은 형태로 놓여있었을 것이고, 그 알 위에는 여러 겹의 돌로 된 산개(우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100년 전 발굴조사 내용에 따르면 스투파의 외장 회반죽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일부 사진을 통해서 그 면모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 기록 중 눈에 띄는 것은 회반죽으로 만든 와불상이다. 그리고 스투파 주변 바닥은 지금은 흙으로 덮여 있는데, 조금만 내려가보면 돌로 된 타일들이 나타난다. 눈에 띄는 것은 계단으로 올라가기 위한 곳에 차크라 모양의 타일 장식이 있다.
(좌) 스투파 발굴조사시에 확인된 회반죽 와불상 (Durom University), (우) 스투파 진입부 바닥의 차크라 모양의 타일
유적군의 서쪽 편에는 100년 전 존마셜의 조사 당시에는 대상지의 붕괴 위험과 발굴조사의 중요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그냥 남겨 두었던 부분이 있다. 하지만 최근 2012-2016년에 Hazara 대학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첫 번째로 14m에 이르는 거대한 와불상이 발견되었다. 간다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와불로 유사한 사례가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이 뼈대만 남겨진 상태이다. 분명 회반죽으로 마감이 되어 있었을 듯한데, 발굴 과정에서 모두 손상된 듯하다. 앞서 스투파에서 확인되었던 와불 회반죽 장식(흑백사진)과, 또 이 와불 뒤편에서 확인된 소형 스투파 장식에 또 다른 와불 장식을 통해서 대략적인 형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좌) 14미터 대형 와불의 뼈대, (우) 소형 스투파에 남겨진 와불 회반죽 장식
두 번째로는 와불 뒤편으로 소형 스투파와 이 스투파를 둘러싸고 있는 불상군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총 23개의 벽함에는 좌불들이 놓여있었고, 벽함과 벽함 사이에는 입상(부처)들이 위치하고 있다. 다만 완형으로 발견된 것은 오직 2개소뿐이고, 나머지는 상반신 혹은 얼굴 부분이 파손된 상태이다. 회반죽은 손상되기 쉬운데, 두 개의 완형 좌불이 발견된 것으로도 매우 운이 좋은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유적을 관리하는 KP주 지방정부에서 멋진 보호각을 설치한 듯하다.
(좌) 와불 및 소형 스투파 구역 평면도(Abdul Samad 2023), (우) Chapels 와 Pedestals 현황
기적적으로 보존이 잘 된 7번 Chapel(좌)과 9번 Chapel(우)
바말라 유적은 간다라 지역에서 발굴조사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인 1920~30년 경에 영국인 고고학자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1947년 독립을 하였지만, 정치적으로 불안전한 상황이었기에 오랜 시간 동안 추가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 재개된 조사에서 또다시 새로운 발견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여전히 조사나 연구를 위하여 충분히 갖추어진 상황이 아님에도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분명 파키스탄이 좀 더 안정되고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이 일대에서 2천 년 간 잠들어 있던 놀라운 문화유산들이 하나 둘 다시 깨어 날 것 예상된다. 조만간 간다라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발견에 대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올 것을 기대해 본다.
참고자료
Abdul Samad, Abdul Hameed, "Bha Mala", 2023
Abdul Hameed, Shakirullah, Abdul Samad and Jonathan Mark Kenoyer, 'Bhamāla Excavations 2015-16: A Preliminary Report', "Ancient Pakistan 2018", 2018, pp.171-184
John Marshall, "Taxila", Royal Book Company, 1945, pp.391-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