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실라를 안내하게 되면, 시간이 길든 짧든 간에 반드시 탁실라 박물관을 포함시킨다.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하기 쉽기도 하지만, 이곳을 방문해야 할 이유는 많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장에그대로 뒀다가는 사라질(도둑맞을) 위험이 높은 중요한 유물들을 모아 둔, 이른바'탁실라의 보물창고'이기 때문이다.
탁실라 박물관 입구
방문객들은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인상적인 정원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 정원에는 탁실라의 상징과도 같은 오렌지 나무와 영국에서 들여온 듯한 장미꽃들로 가득하다. 파키스탄에 위치한 유럽식 정원이라 자칫 어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성된 지 100년 가까이된 오래된 수목들과 무성한 관목들은 박물관과 이미 하나로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정작 박물관에 와서 유물은 보지 않고 정원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오래된 거목들과 꽃들이 가득한 탁실라 박물관 정원
존 마셜의 마지막 과업으로 만들어진 박물관
탁실라 박물관은 1928년 영국인 고고학자 '존 마셜(Sir. John Marshall)' 경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존 마셜은 1902년 남아시아 고고학 총책임자로 발령받은 이후로 많은 유적들을 발굴 조사를 하였다. 그는 여러 지역 중에서도 특히 탁실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발굴조사를 수행했다. 남아시아 고고학 분야에서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그의 저서 'Taxila'를 보면, 탁실라의 연구에 애정과 열정을 가득 담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탁실라에서 얻은 고고학적 연구 성과들은 그를 위대한 고고학자의 반열에 올려주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던 존 마셜이 27년간 총책임자로서의 지냈던 경력을 마무리하면서 건립한 것이 바로 탁실라 박물관이다. 즉 이 박물관의 건립은 그의 마지막 과업이었고, 박물관은 존마셜의 마지막 유산으로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졌다.
박물관에 들어서게 되면 좌우로 넓게 펼쳐진 갤러리가 눈에 들어온다. 전시실은 뒤집어진 'П'자 형태로 회랑형 공간을 따라 갤러리가 쭉 이어진다. 그래서 명확하게 전시실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다만 박물관측의 정보에 따르면 모두 3만여 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고, 그중 총 7천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을 분류하자면, 1) 간다라 유적과 관련된 부조 벽화들, 2) 스투파와 승원의 벽면에서 수습해 온 회반죽 조각, 3) 스투파 내부에서 출토된 사리 관련 품목과 보석들, 4) 고대의 생활 용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탁실라 박물관 내부
사실 페샤와르 박물관이나 라호르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유물들과 같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당할 수 있을 정도의 유물은 많지 않다. 대신 그 배경 이야기를 알고 보면 정말 흥미롭고 중요한 유물들이 많다. 그중에서 꼭 봐야 할 유물들을 몇 점 꼽아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다르마라지카 출토 부처님 뼈사리
우선 박물관 입구를 들어가면 정면 맞은편에 가장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유물을 볼 수 있다. 이는 다르마라지카에서 출토된 부처님의 뼈사리이다. 진신사리라고도 불리는 부처님의 뼈사리는 전해지는 수가 매우 적기도 하지만 종교적 의미가 더해져 세계적으로 귀중하게 여겨진다. 이 사리는 발굴조사에서 출토 된 것으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라는 명문과 함께 출토되었다. 하지만 봉헌한 시점이 서기 57년으로, 이미 부처님 사후 500년 뒤의 일이었다.과연 이 사리는 진짜 부처님의 사리일까? 이와 관련하여서는 간다라 이야기 19편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스투파는 부처님의 사리를 담는 일종의 무덤과 같은 것이다. 그 구조가 흥미로운데 바깥의 껍질을 제거하고 고 안으로 파고 들어가면 금속으로 된 상자, 돌로 된 상자, 귀금속으로 된 상자, 그리고 유리로 된 상자 등으로 겹겹이 감싸져 있는 경우가 많다.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와 같은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귀중한 물건을 감싼 만큼 그 포장용기 자체에도 정성이 담겨있다. 지금은 사리를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사리함들도 귀중한 보물이 되었다.
스투파 발굴에서 확인된 보석류
당시에도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귀했던 만큼, 사리를 넣을 수가 없어이를 대신할 보물들을 함께 넣었다. 보석이나 금박, 잘 다듬어진 돌 등이다. 박물관의 중앙 전시 캐비닛에 스투파에서 출토된 작은 유물들을 가득 들어있다. 너무 많아서 그 소중함이 희석될 정도이다.
스투파를 장식하고 있던 회반죽 조각들
스투파 안에서 출토된 유물들도 소장되어 있지만, 바깥을 장식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반죽 조각들도 중요한 전시품이다. 지금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스투파는 원형의 모습이라기보다 원형의 뼈대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스투파는 회반죽 조각과 안료 등으로 화려하게 장엄되어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좌) 스투파 상부 장식, (우) 자울리안 출토 세로로 긴
보통 스투파의 상부에는 상륜장식이 놓였다. 일반적으로 일곱 겹의 우산모양 석조각으로 장식되었다고 한다. 현재 탁실라에서 이 상륜부까지 남아있는 스투파는 없다. 따라서 박물관에 전시된 이 상부 우산 구조 장식의 의미가 크다. 다만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이게 무엇인지 잘 모르고 지나치기 쉬우니까 유심히 보기를 바란다.
또한 자울리안에서 출토된 세로로 긴 모양의 스투파 모형도 중요한 유물이다. 이 유물은 스투파가 간다라에서 세로 방향으로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세로로 높게 쌓이는 우리나라의 탑의 기원이 간다라에서 왔음을 보여주기에 우리에게도 의미가 큰 유물이다.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을 수 없는 유물들
박물관을 장식하고 있는 유물들을 보면 이 조각들이 원래의 위치에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투파를 장식하고 있었던 회반죽 조각들이나 스투파의 상륜부와 같은 경우에는 원래의 위치에 있었다면 더욱 그 의미가 되살아 날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도굴이나 도난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며, 비바람에 풍화되어 손상되기 쉽기 때문에 박물관 안에 둘 수밖에 없는 현실도 이해가 간다. 이런 면에서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그럼에도 탁실라의 간다라 문화유산들의 정수를 이해하기 위해서 탁실라 박물관은 꼭 둘러봐야 할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