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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Dec 08. 2024

'카레'에서 보는 문화 그라데이션

파키스탄 이야기, 둘


파키스탄에서 만난 카라이


파키스탄 온 지 얼마 안 된 초창기, 다 비슷해 보였던 파키스탄 음식 중에서 가장 먼저 인식된 음식은 '카라이(Karahi)'였다. 치킨 카라이, 비프 카라이, 머튼 카라이, 화이트 카라이. 어느 식당에 가든 온통 카라이였기에 이곳에서 가장 먼저 구분이 되기 시작한 뉴였다. 카라이 기름진 카레의 일종으로 로티나 난을 찍어 먹는데, 처음 맛볼 때부터 입에 맞았다.


(좌) 치킨 카라이, (중) 화이트 카라이, (우) 새우 카라이


필자가 파키스탄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본 파키스탄 요리 카라이였다. 레시피도 크게 어렵지 않다. 


카라이 레시피

우선 넉넉한 기름에 닭고기를 익히고 고기를 빼낸다. 그리고 양파, 청고추, 마늘 다진 것을 넣고 볶는다. 야채가 충분히 익으면 강황가루, 고춧가루, 쿠민가루를 넣고 볶는다. 닭고기를 다시 넣고 10분간 가열한다. 마지막으로 요거트, 생강, 코리엔더 잎을 넣고 섞어준다. 소금 간을 맞추고 5분간 끓인다.


크게 어렵지도 않으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또한 요리 시간도 짧아 여러모로 괜찮은 요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 직접 만들어 보고 식당에서 나오는 카라이에 얼마나 많은 식용유가 들어는지 상을 알게 되었고, 이후 식당에서 주문하는 것은 다소 망설여지기도 한다.


직접 만들어 본 치킨 카라이, 기름을 넉넉히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파는 것보다 기름이 많이 적다.



식기구에서 온 이름


사실 얼마 전까지 '카라이'라는 음식은 인도의 '카레'가 이 지역에서 불리는, 일종의 지역화된 명칭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최근에 알게 된 반전이, 이 음식을 만드는 냄 '카라이'기에 음식 이름이 이렇게 되었다 것이다. 그러고 보니 라이와 더불어 '한디'라는 음식이 파키스탄 음식의 양대산맥이라 하는데 이 것도 냄비의 이름이라 했다. 흥미로운 음식 작명법이다.


왼쪽의 냄비가 카라이, 오른쪽이 한디이다(ⓒ Wikiwand)
(좌) 치킨 한디, (우) 한디에 담겨있는 파티얄라 치킨


카라이든 한디든 카레의 일종이다. 파키스탄에 와서 계속 카레류 음식만을 먹고 있는데, 돌이켜 보면 필자가 살아봤던 나라들은 모두 '카레'에 일가견이 있는 나라들이었다. 한국, 일본, 캄보디아, 라오스에 이르기까지, 나라들 마다 적어도 수 종에서 십여 종의 카레 요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팔만사천종의 카레가 있다고 말해지는 카레 종주국 인도에는 딱 한번 여행을 가 본적 밖에 없음에도, 이미 카레에 익숙해진 혀를 가지고 있었다. 



내릴 수 없는 카레의 정의


그런데, 카레란 무엇일까? 강황이 들어간 되직한 노란 국물의 음식을 카레라 부르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사전을 찾아보니, '강황(薑黃), 생강, 후추, 마늘 따위를 섞어 만든 맵고 향기로운 노란 향신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라고 정의한다. 아마 한국인은 대부분 이런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의가 바다를 건너가면 달라진다. 옥스퍼드 사전에 '고기, 야채 등을 매운 향신료 소스와 요리하여 밥과 함께 먹는 것(Oxford Dictionary)'이라고 정의한다. 조금 더 범위가 광범위해졌다. 반드시 노란 강황이 안 들어가도 되는 듯하다. 정작 본토라고 불리는 인도에서 '카레(curry)'란 특정 음식이 아니고, '소스가 있는 요리'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라 한다.


파키스탄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다양한 향신료들


카레에 대한 정의는 상당히 모호하다. 많은 향신료를 섞어 만든 소스가 있는 요리라는 기준 따르면 기원전 2,500년 전에 인더스 문명의 사람들이 먹던 요리가 카레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인도에서 만들어 먹는 카레 중 다수는 고춧가루나 토마토 그리고 감자가 주로 들어가는 형태이다. 하지만 이 재료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두 원산지가 남미이다. 즉, 요즘 흔히 먹는 유형의 는 적어도 그 시작이 유럽인들이 인도에 들어온 16세기 이후가 될 것이다. 더욱 엄밀하게 살펴보자면 지금의 카레는 18세기 영국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영국인들은 식민지에서 맛 들인 카레를 본국에서도 먹고자 했고, 간단하게 운반하기 위해서 정량의 향신료들을 섞어서 '카레 가루'라는 것을 정형화했다.


카레의 전파 동선(위키피디아)


카레의 세계 확산은 생각보다 복잡하. 16세기 이후 세계의 문화교류가 단순히 육로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카레의 전파는 대양과 대륙을 건너뛴다. 15세기 콜럼버스 이후 남미에서 가져온 농산품들이 인도에 들어가 새로운 유형의 카레류 음식들이 만들어졌다. 이는 영국으로 흘러갔다. 영국에 들어온 카레는 크게 유행했다. 1747년 처음으로 카레 레시피가 담긴 책이 출판되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인도계 설탕 노동자들에 의해 카레가 아메리카 대륙에 퍼졌고, 서양의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던 일본 정부의 노력에 의해 일본에는 서양음식 중 하나로 카레가 수용되었다.



세계의 다양한 카레들


문화라는 것은 다른 나라에 그냥 들어가는 법이 없다. 인도의 식문화 '카레'도 세상으로 퍼져나가며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카레는 '카츠 카레'이다. 돈카츠를 밥 위에 올려 카레와 같이 먹는 음식이다. 카츠 카레의 '카츠'가 일본어로 이기다인 '카츠(勝つ)'와 발음이 같아 시험을 본다거나 승부를 볼 때 먹는 상징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동남아시아의 카레는 코코넛 밀크가 들어가서 상당히 마일드하다. 특히 캄보디아의 크메르 커리는 카레 특유의 향신료의 향연보다는 속을 편하게 해주는 따뜻한 음식이다. 태국에는 게가 들어간 푸파퐁커리나 초록색 고추가 들어간 그린커리도 맛이 좋다. 이 동남아 특유의 코코넛 카레는 종종 생각이 난다. 그래서 방콕을 경유할 때는 공항에 내려서 카레류를 꼭 시켜 먹는다.


(좌) 일본의 카츠카라, (우) 캄보디아의 크메르 커리
(좌) 남인도의 토마토 커리, (중) 인도에서 먹은 카레 정식, (우) 북인도의 팔락파니르(ⓒ Freepik)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이야기는 본토에서의 에 대한 해석이다. 시금치와 치즈가 들어간 팔락파니르나, 새우와 생강의 향긋함이 부드럽게 어우러진 프라운 마살라.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는 달커리에, 영국에서 유행해서 인도로 역수입되었다는 치킨티카마살라 등등, 인도 본토의 무궁무진한 카레에 대해서 더 논해보고 싶지만 아직 필자의 미천한 경험이 아쉬울 따름이다. 언젠가 더 깊이 있는 카레요리에 대한 견해를 쌓고 다시 정리하고자 하며, 여기에서는 파키스탄의 카라이와 한디에 대해서 본 것만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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