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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07. 2020
9. 보이고 들리는 대로
돌아이
20대 중반의 아이는 어느 주말 아빠와 단둘이 차를 타고 장을 보러 가는 중이다. 엄마는 친목모임으로 함께 가지 못하는 관계로 오늘은 아이가 앞자리 조수석을 차지했다. 단출한 세 가족이지만 먹는 것만은 좋아하기에 집에서 거리가 있는 대형마트로 향하는 중이다. 아이는 장을 보러 가는 드라이브 길이 참 좋다. 맛있는 것을 살 생각에도 행복해지지만 무엇보다 달리는 차 안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고 멍 때리며 바깥 구경하는 순간이 제일 좋다.
조수석에 앉아서 아빠의 엄마 뒤땅, 할머니 숭, 아빠의 자기 칭찬, 말도 안 되는 애교 등에 오순도순 맞장구쳐주며 한창 소풍 가는 느낌에 젖어있을 때였다. 아빠의 이야기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BGM 삼아 멍 때리고 있을 때 아이의 눈에 한 병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저 병원은 도대체 뭐 하는 병원이길래 이름을 저렇게 지어놨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병원 이름을 저렇게 지어놨냐. 너무한 거 아닌가.'
'무슨 병원인데?
'등신 병원.'
'뭐?'
'등. 신. 병. 원.'
아빠는 그 순간부터 운전을 못할 정도로 웃다 울다를 멈추지 못했다. 내부순환로 한복판에서 차를 어딘가 세워야 할 판이었다. 아이도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는 소리로 '차 세워!!'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아이는 정말로 진지하게 그 병원을 등신 병원이라 읽었다. 그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을 다했다. 아무리 환자가 싫어도 그렇지 등신 병원이 뭔가. 도대체 무슨 병을 고치는 병원일까. 규모가 꽤 큰데 이름이 저런 병원에 환자가 오긴 할까. 가도 찝찝하지 않을까 스스로 등신 병원에 들어간다는 게.
당연히 병원 이름은 등신 병원이 아니었다. 아무렴 세상에 어떤 의사가 병원 이름을 등신 병원이라 지을까. '동'을 '등'으로 잘 못 읽은 아이의 난시가 만들어낸 해프닝이었다.
아이는 유년기에 미국에서 생활을 할 때도 이러한 일이 종종 있었다. 한창 말을 배울 때라서 였을까 무엇이든 들리는 대로 뱉어냈다. 하루는 유치원에서 동요를 배웠다며 집에 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Crazy~ Crazy~ 라라라 랄라라아아아 ♬ ♫'
동요에 '미쳤어~ 미쳤어~'라는 노랫말이 들어갈 리 없다 생각한 엄마, 아빠는 아이에게 그게 정확하냐 물었지만 아이는 계속 불렀다. 후에 동요 노래 CD를 틀어 보니 아이는 Daisy Bell이라는 동요의 첫마디인 'Daisy~ Daisy~'를 라임이 맞는 Crazy로 바꿔 부르고 있었다. 실제로 세 번째 마디쯤 가사에 Crazy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만 그렇게 뇌리에 박혔나 보다. Daisy를 향한 예쁜 사랑 노래가 Daisy 꽃을 귀에 꼽고 다니는 Crazy의 노래로 바뀐 날이었다.
Daisy, Daisy,
Give me your answer do!
I'm half crazy,
All for the love of you!
It won't be a stylish marriage,
I can't afford a carriage
But you'll look sweet upon the seat
Of a bicycle made for two.
- Daisy Bell 가사 중-
이뿐 아니다. 어느 날은 간식을 찾으며 '스니치크'를 그렇게 달라고 하던 아이는 사실 'Sneakers(스니커즈)'라고 하는 초콜릿 바를 달라고 한 것이고, Yosemite(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가족여행으로 다녀오면서 갑자기 그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우리 어디 갔다 왔지? 비타미씨?'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으며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주곤 했다.
장을 보러 가는 차 안에서 둘이 너무 울다 웃어서 인지 장을 보러 도착했을 때 똑같이 생긴 부녀의 무쌍의 두 눈은 빨갛게 부어있었다. 돌아오는 길 안에서 다시 자세히 보니 '동신병원'이 맞다. 30살이 된 아이는 동신병원 앞을 지날 때마다 아빠와 아직도 배를 잡고 웃는다. 아빠는 돌아이 같은 딸을 둔 즐거움에, 아이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는 아빠를 보며. 아, 동신병원 관계자들에게는... 앞으로 안경 꼭 끼고 다니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