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서핑보드 (알아차림의 정체)

by LifeRpg

거친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잡으려면 튼튼한 보드가 필요하다. 우리는 앞서 그 보드의 이름을 알아차림이라고 불렀다.


도대체 알아차림이란 무엇일까.


지금 당신의 경험을 보자.


당신은 지금 이 글자를 알아차려 보고 있다. 하지만 글자의 내용에 빠져 있으면 내가 이것을 알아차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잊는다.


소리를 알아차림이 있기에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소리의 내용에 빠져 있으면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다는 사실은 잊는다.


사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순간에는, 언제나 알아차림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알아차림이 없으면 글자도 소리도 생각도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생각과 행동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있기 때문에 그것을 비추고 있는 이 근원적인 바다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알아차림이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매몰되어 있던 시선이 풀려나오며 배경이 드러난다. 소리가 들리고 글자가 보이고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것의 바탕인 알아차림을 확인하게 된다.


대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사라지지만 그 모든 변화를 지켜보고 있는 이 아는 마음만은 이 자리에 있다.
이것이 알아차림이다.


우리가 호흡 서핑을 할 때 딛고 서야 할 곳이 바로 그 자리다. 변덕스러운 파도인 감정 위에 올라타면 넘어지지만 변하지 않는 배경인 알아차림 위에 올라타면 안전하다.


그렇다면 알아차림 보드 위에 올라타서 일상을 살면 무엇이 좋을까.
가장 큰 변화는 삶의 중심축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행위자로 생각과 행동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일을 하고 고민하고 통제하려 하니 힘이 들어가고 긴장 상태 지속된다.


하지만 알아차림에 내맡기면 우리의 본체는 알아차림이 된다.
행위자(생각과 행동)는 경험과 데이터에 따라 알아서 처리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움직임을 배경에서 고요하게 알아차리는 자리에 머문다.


이때 비로소 무위가 일어난다.


겉으로는 치열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대화를 나누지만 내면의 나는 그 행위에 말려들지 않고 그저 비추고 있을 뿐이다. 행위자(생각과 행동)는 바쁘게 움직여도 알아차림은 언제나 고요하다. 행동은 하되 뼛속까지 지치지는 않는 자유가 여기서 온다. 행위자는 알아차림 셀프모니터링을 통해 더 정교하고 더 적절한 행동, 생각을 해나가게 된다.



더 깊은 이야기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우리는 보통 세상을 둘로 나눈다. 보는 나와 보여지는 세상, 듣는 나와 들리는 소리, 내 몸과 내 몸이 아닌 것. 이것을 분별하는 알아차림이라 한다.


나와 타인을 나누고 세상과 나를 나누던 경계선은 부분적 알아차림 속에만 있다.


쓴맛이라는 감각과 그 쓴맛을 알아차리는 감각이 분리되어 있을까? 아니다. 알아차림이 없는 쓴맛은 존재할 수 없다. 쓴맛이라는 경험 자체가 알아차림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봄이라는 경험도 들음이라는 경험도, 어떤 생각도 알아차림이 있어야만 나타날 수 있다.


즉 경험하는 자와 경험되는 대상이 모두 하나의 알아차림일 뿐이다.


개별적 자아를 벗어나 옛사람들이 말하던 불이(모든게 둘이 아님), 범아일여(나와 세상이 모두 알아차림),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임) 등이 바로 이것을 뜻한다. 당신의 본질(알아차림)이 곧 세상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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