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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Nov 20. 2024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돌아보는 자세

내가 관계를 통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불안형 애착을 가진 나는 연애를 할 때 상대방에게 나의 시간, 약속, 에너지를 과도하게 맞추려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나 감정이 커져있고 상대방에 대한 파악이 어려운 연애 초반부에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자발적을'이라고도 칭할 수 있는 이런 모습이 지속될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불안함에 기인하여 발생하는 이러한 자세는 관계가 지속될수록 상대방에 대한 '보상심리'로 발동하여 어느 순간에는 서운함이 폭발하게 되는 시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를 거치며 누군가와는 이별을 겪기도 했고, 누군가와는 여러 번 다툼을 겪으며 맞춰지기도 했다.


불안함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연애를 하는 내내 노심초사하며, 혹시라도 상대방이 떠나진 않을까,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특히나 이성문제가 개입하게 되면 이러하나 반응은 더욱 격해지게 된다. 


최근에도 남자친구가 직장 내에서 이성과 함께하는 회식자리가 반복되자 신경이 예민해졌다. 특히나 자주 언급했던 여직원이 끼어있다는 소리를 듣자 불안감이 발동한 것이다. 이성적인 감정이 없다고는 하나 인간적인 호감을 갖고 있다는 여직원에 대한 의견을 들은 상태에서 1회성의 만남이 아닌 여러 번의 회식 동석은 나에게 트라우마로 작동하였다. 회사업무의 연장이라고는 하나 그러한 상황이 자꾸만 연출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 이 계속해서 남아있었다.


남자친구는 회식이 끝난 후 연락을 해주었지만, 나는 평소와는 달리 2차까지 회식을 즐기고(?) 온 그를 환대할 만큼의 포용력은 잃은 상태였다. 이미 마음은 상해있었고 그것이 표출되며 이 문제로 우리는 크게 다투었다. 남자친구의 입장에서도 분명히 맞는 말들을 하였다. 이 모든 것은 업무로 인한 회식이라는 것.


물론 업무로 인한 회식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면 불참할 수 있을만한 '팀 회식'이었지만, 그것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생활패턴에 맞지 않기도 하며, 애초에 그에게 팀 회식이란 친구들과의 만남 같은 그 정도의 가벼운 회식의 일종이었다.


우리 회사는 그와는 반대적으로 병적으로 회식이 없는 개인주의 회사에 속한다. 팀회식, 그룹회식 등이 1년에 1회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적고 그마저도 개인 스케줄이 우선되는 부분이 강해 나는 상대방의 '피치 못한 상황'이라는 표현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서로의 '다름'으로 인한 반복되는 싸움에 그도 나도 지쳐가는 하루하루였다. 특히나 서로가 업무적 이성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성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이성과의 관계로 인한 문제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서로를 상처 주는 말까지 하게 되다 보니 이제는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까지 서로가 하게 되었다.


그는 잠시나마 진심이었을 마음으로 '관계의 끝'까지 언급을 하였다. 또한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낼 용기가 없었는데, 그가 말을 꺼내주니 동의하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는 이 관계의 진정한 '끝'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끝'


끝이라는 단어를 보면 떠오르는 생각은 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결코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인 것 같다. 아무리 힘든 일도 결국 끝은 찾아오고, 아무리 기쁜 일도 끝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생은 당장 어떻든 살아봐야 하고, 살만하다는 말이 생긴 것일 것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언제일지는 몰라도 반드시 '끝'은 찾아온다. 

이별을 대할 때에도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담담해진다.


내일 올 것이 그저 오늘 왔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10년 뒤 올 줄 알았던 것이 지금 왔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렇다고 그 이별이 안 올 것은 아니었기에 조금 더 빨리 겪게 된 것일 뿐이기에 

누구의 잘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그렇게 나는 덤덤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자 그도 이성을 되찾고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풀어냈고, 이번 사건 역시 해프닝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내면 속 문제는 여기서 끝이 나지 않았다.


그와는 트러블과는 별개로 내 안에는 계속해서 불안감이 남아있기에 이는 그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내 안에 남아있는 '트라우마'라는 것이 앞으로 계속해서 나를, 그리고 내 주변 사람을 괴롭힐 것이라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게 복잡한 심경으로 무심히 여러 TV를 보던 중, 우연하게 인간에게 학대를 당한 트라우마로 사람을 심하게 경계하는 강아지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강아지는 구조해 준 사람들 이외의 사람에게는 심각한 트라우마 반응을 보이며 문제행동을 반복하였는데 그로 인해 구조자까지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내 모습이 그 강아지에게서, 그리고 남자친구의 모습 혹은 나의 가족의 모습이 그 보호자에게서 비쳐 보였다.


나도 힘들지만 나를 케어하기 위해 내 주변 사람들 또한 고통을 겪고 있고 그것은 그들도 불행하게 만들기에 어쩌면 그들도 영원히 내 곁을 함께할 수 없게 되는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상황을 제삼자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렇게 영상을 보던 중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강아지가 점차 보호자를 믿고 보호자와 함께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모습을 보며 수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저 강아지 지금 엄청 용기 낸 거예요! 엄청 잘하고 있는 거예요! 대단한 거예요!"


이렇게 보호자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고, 강아지의 얼굴도 두려움에 떨던 모습에서 점차 편안함을 되찾아가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강아지는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연습해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어찌 보면 나보다 훨씬 더 컸을 트라우마를 극복해 내는 강아지가 나보다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음을 먹었다.


'강아지도 저렇게 훌륭하게 해내는데 나라고 못할게 뭐야!'

'나도 할 수 있어!'


지금 나는 혼자인 것도 아니고 나를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내 곁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곁에서 용기를 내본다면 나도 해낼 수 있다고 마음을 먹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남자친구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터놓고 도와달라고 했다. 


내가 또 비슷한 상황에 예민해질 수 있다. 그건 당신을 못 믿는 것이 아닌 나의 깊숙한 트라우마로부터 오는 불안함에 기인한 것이니 그저 나에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달라고 했다. 변해보겠다고, 노력해 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스텝을 향해 나아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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