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B급 인생을 살 거'라던 수학 선생님
나는 수포자였다.
'수포자'
수학을 포기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참 입에 잘 붙는다. 나는 수포자였다. 어릴 때부터 수학적인 머리가 없었다. 공식을 외워서 적용하는 이과적인 공부를 힘들어했다. 그때 나는 해리포터를 읽기에 여념이 없었고 공부를 하라고 하면 국어 교과서만 읽어대는 학생이었다.
중학생 시절, 수학 시간에 선생님이 "다 같이 몇 분간 몇 번 문제를 풀어보자, "라고 하면 곧장 포기하고 낙서를 했다. 하루는 수학을 너무 못하는 내가 한심해서 교과서 귀퉁이에 '나는 B급밖에 안되나 봐'라고 적었다. 지나가던 수학 선생님이 내 뒤에서 그 낙서를 보고 있는 줄 모르고.
(그때 유행했던 드림하이 OST 중에 'B급 인생'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가 떠올라서 낙서했던 것이었다... 드림하이가 잘못했네.)
수학선생님은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네가 지금 그러고 있으니까 B급 밖에 안 되는 거야. 넌 평생을 B급 인생으로 살아가겠구나.'라고 말했다.
그 말 뒤에 내가 풀지 못한 수학공식을 알려주셨지만, 나는 여전히 그 공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수학 공식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수학을 하지 못해서 B급 인생으로 살 것이라는 말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부터 나는 그 선생님을 싫어했다. 수학 못한다고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내 인생을 B급으로 규정해버리다니. 너무하지 않나.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수학 성적이 너무 낮아서 쓰레기 고등학교에 진학하거나 대학교도 가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밤잠을 못 이뤘다.
다음 학년 때는 수학 성적에 맞추어 A반, B반, C반으로 나뉘었다. 나는 당연히 C반이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첫날, 여러 수학 선생님 중에 하필 그분이 교실에 들어왔다. 그분은 무서운 표정으로 '너네 수학을 그렇게 안 하고 포기해서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밖엔 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왜 하필 C반 선생님이 그 선생님이었을까. 정말 싫었다.
그리고 그 학기에 들어가고 싶었던 테디베어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그 동아리 담당 선생님이 그분이었다. 자유로운 동아리 시간을 하필 그 선생님과 보내야 한다니. 최악이었다.
그분도 날 싫어해서 내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내가 테디베어를 제대로 만들든지 딴짓을 하든지 신경도 안 썼다. 그래도 나는 테디베어를 좋아했고, 바느질도 곧잘 해서 가정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학생이었다. 정말 열심히 만들었다. 도우미 선생님은 날 좋아해 주셨다. 나는 그 학기 동안 조용히 테디베어를 완성해갔다.
우리는 총 세 개의 테디베어를 만들었다. 두 번째 테디베어를 완성했을 때, 수학 선생님이 나의 테디베어에게 귀엽다고 말해주었다.
내 테디베어에게 귀엽다고 한 마디 한 거가 뭐라고. 나는 또 마음이 스르륵 풀려서, C반 학생 중에 제일로 질문을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수학을 제일 열심히 했을 때인 것 같다. 다음 학기에 바로 C반을 탈출했으니까. 그 쌤은 이제 나를 싫어하지 않았고 나도 은근히 C반을 탈출했다는 거에 감사함을 갖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내가 같은 재단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그 수학 선생님도 같은 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으셨다. 인연이었던 걸까. 나는 수학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수학 방과 후 수업도 기쁜 마음으로 수강하며 나머지 공부도 했었다.
선생님이 임신하시고 아이를 낳으러 학교를 떠나시자 나는 자연스럽게 수학에 손을 뗐지만... 그 시점부터 수학이 더 어려워져서 쌤이 계셨더라도 수학은 포기했을 거다.
아이를 낳고 선생님이 돌아오셨을 때, 나는 선도부가 되어 교문에서 아침 검문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나를 보고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오셔서 내 볼을 손으로 감싸며 "잘 지냈어? 선도부 됐구나!" 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귀엽다고 말해주었던 테디베어는 아직도 내 침대 위에 있다. 갑자기 테디베어가 이상한 자세로 침대 귀퉁이에 박혀 있어서 제대로 눕혀두다가 수학 선생님에 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학교로 돌아오시던 아침, 내 볼을 감싸던 선생님 손의 촉감과 핸드크림 냄새가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한동안 잊고 살았다. 선생님은 날 기억하실까. 수학 성적이 필요 없는 학과에 지원해서 대학교까지 무사히 왔다고 말씀드리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나의 포기하는 모습에 실망하셨던 것 같다. 수학 문제를 푸는 시간에 배운 공식을 적용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나는 B급 인생'이라고 낙서하는 학생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나중에 선생님에 대한 마음이 풀리고 나서 질문할 때면 따스하게 웃으며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 나는 선생님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좋았다. 이런 걸 질문해도 될까 싶던 문제도 자꾸 질문하고 싶었던 선생님이셨다.
분명 나는 그 선생님을 싫어했고, 무서워했고, 피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 수학 선생님은 내 인생 최초의 입체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선생님을 회상하면 양면의 기억이 떠오른다. 악역이었던 선생님과, 따뜻했던 선생님.
한 살 한 살 나이가 쌓여가면서 어릴 때 보았던 어른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게 가끔은 슬프다. 특히 선생님과 부모님이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때, 나는 슬퍼진다. 그들을 이해하려는 나의 마음이 어릴 적의 나를 위로하려는 마음과 같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걸까.
그 선생님도 나와 같은 미숙한 사람이었을 뿐이니까. 그때의 나는 성실하지 못했으니까, 그런 말을 하셨을 수도 있다고. 그 이후에 선생님은 꾸준히 점점 내게 좋은 분이 되어 갔으니 그때 나에게 B급 인생을 살 거라는 말은 홧김에 뱉은 말씀이었을 거라고. 그렇게 회상한다.
나는 여전히 수포자로 살고 있다. 아직 내 인생은 현재 진행 중이라 후에 나의 인생이 어떤 '급'으로 평가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 B급 인생이라 낙서하던 내게 '넌 B급 인생이 될 거라' 충고하던 수학선생님을 점점 좋아하게 된 것처럼, 지금 누군가 나를 한심하게 볼지라도 언젠가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다'라고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