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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황주황 Oct 23. 2020

등산을 좋아하는 아버지, 서핑을 좋아하는 아들

서핑으로 이해한 삶과 아버지

 아버지는 등산을 하며 인생사를 느낀다고 하셨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고생 끝에 정상에 올라 성취감을 느낀다고 하셨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것이 마치 인생사와 비슷하다고 하셨다. 


나는 군대를 산악부대를 나와서 그런지 산에 정이 가지 않는다. 산에서 경험한 고생과 우울함이 묻어나서인지 산에서는 정서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바다로 떠났다. 서핑보드 위에서 파도에 부딪히고, 미끄러지면서 인생사를 느꼈다.



 서핑은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레저 스포츠 문화다. 파도와 호흡을 맞춰서 파도의 경사면을 이용해서 퍼포먼스와 속도를 즐긴다. 서핑 문화에 필요한 주요 개념은 기다림, 자연과 호흡을 통한 행복 도출이다. 이 두 가지를 즐기지 못한다면, 서핑하는 동안 행복하기 어렵다. 


 파도 없이는 서핑이 허용되지 않기에 항상 파도 차트(파도 예보)를 보면서 기다려야 한다. 파도가 좋은 날 바다로 입수한다고 해서 그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퍼포먼스를 즐기기에 좋은 길이 나있는 파도를 고르기 위해 또 기다려야 하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탈 경우에는 양보하고 배려하며 타야 한다.


 수영, 테니스, 골프, 스노보드, 조정 등 많은 스포츠들이 인공 구조물에서 행해진다. 서핑은 해변에서 즐기기 때문에 자연 지리와 파도에 사람이 맞춰야 한다. 자연을 이해하고 관찰해서 나만의 작은 경기장을 펼쳐야 한다. 


 최근 시흥에 인공 서핑장이 들어왔다. 파도가 없는 날 그리고 바다에 멀리 있는 사람들이 즐기기에 좋다. 나도 꼭 한번 이용해 보고 싶다. 그래도 결국에는 인공 파도보다는 사람들은 바다를 찾게 될 것이다. 서퍼들은 불규칙한 자연의 파도에서 호흡하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 퍼포먼스 하기를 즐긴다.


 바다 위에서 그 불규칙함과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파도들을 맞이하게 된다. 길도 좋고 말랑말랑해서 여유로운 파도는 서퍼가 즐기기에 좋다. 그런 파도가 앞으로 다가오면 흥분해서 막 패들(헤엄) 한다. 그렇게 잡으려고 애를 쓰다가 좋은 파도를 놓치면 맘이 아프다. 기다린 시간들과 아쉬움, 심지어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쪽팔림까지 밀려온다. 복잡한 부정적 감정들이 파도와 함께 나를 덮친다. 하지만 파도는 또 온다.


 예측도 못한 큰 파도를 맞이할 때도 있다. 계속 작게 들어오던 파도보다 훨씬 큰 파도가 갑자기 나를 덮쳐 모래사장 쪽으로 밀어낸다. 코와 입에 짭짤한 바닷물이 사정없이 들어오고, 보드에서 나가떨어져 몇 바퀴를 구른다. 다시 먼바다로 나가야 하는 힘듬과 동시에 다시 올지 모르는 큰 파도에 대한 불안감과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어느 순간 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파도는 파도일 뿐이다. 파도는 현상일 뿐 목적이 없다. 나를 덮쳐서 골탕 맥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서핑보드에서 일어나 이쁘게 탈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바람과 바다의 흐름에 따라 물이 들어오고 나갈 뿐이다.  그리고 파도 뒤에는 계속 파도가 온다. 그리고 완벽히 똑같은 파도는 없다.



 나는 서핑을 하면서 인생을 느낀다. 파도를 타면서 인생의 유사한 점을 느끼며 위안도 얻고 용기도 얻나 보다. 음악, 농사, 게임, 영화, 책, 낚시에서 사람들은 각자 공감되는 분야에서 인생을 느낀다. 우리 아버지는 그걸 등산에서 느끼는 것 같다. 아버지와 등산 한번 같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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