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가현진 Apr 06. 2023

이다지도 자주 킹받는 나란 인간..

일상에서 화를 가라 앉히는 몇 가지 유용한 방법

글 속에서 말한 도로는 이 도로가 아님. 혹시 오해하실까바.


"아 씨x 여편네가 운전 그따구로 할거야? 야 운전 x같이 하네 아 씨x"


여느 날처럼 아이 유치원 등원미션 완료 후 단골 카페에 들러 에티오피아 원두 드립커피 한 잔 들고 나오는 길에 날벼락처럼 내게 쏟아진 욕설이다. 열린 창문 너머로  순식간에 씨x, x나, x같이..등의 하드코어 욕을 얼마나 바가지로 먹었는 지 정신이 혼미할 지경.


양방향 합쳐 겨우 2차선인데다 유턴 신호도 마땅히 없어 오가는 차들이 서로 양보를 하며 운전하는 도로였다. 건너편 차선이 여유가 있으면 조심히 중앙선 가로질러 각자 갈길 가는 암묵적인 룰이 웬만하면 잘 지켜지는 곳 말이다.


물론 나도 잘한 건 없지만 저 멀리 100미터 밖에서 오다가 내 차를 발견하자마자 그 좁은 골목에서 아주 들이받을 기세로 엑셀을 밟는 심보는 또 뭔지. 바득바득 죽어도 양보 못하겠다는 너란 인간, 평생 남한테 양보받을 생각 하지 말고 운전하길. 휴.


코끝을 간지럽히는 은은한 커피향의 행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인간에 대한 지긋지긋한 환멸이 밀려온다. 아직도 내 바로 앞에서 백미러로 잡아 죽일듯 째려보는 살기 가득한 눈길을 애써 무시하며 머릿 속으론 내가 알고 있는 제일 심한 욕이 뭐였는 지 생각을 더듬어 본다.


어떤 쎈 욕을 해도 분이 안 풀릴 것 같다. 집 앞 주차장에 도착해 한참을 차 안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키며  '저런 인간이 남편이 아닌게 얼마나 다행인가'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40개월 아들이 좋아하는 헐크. 화 났을 때의 내 표정이랑 닮았다.



살면서 화가 훅 끼쳐 올라와 그 날 하루를 다 망쳐 버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나부터도 그렇고 일상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점점 여유 없고 팍팍해지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타인의 사정은 알고 싶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없다. 내 가족 특히 내 아이에 티끌 만 한 손해도 용납할 수 없으며 일상에서의 여유나 기다림의 미덕은 실종된 지 오래. 양보해도 대세에 지장 없을 만한 일상적인 매너도 굳이 왜..싶고 조그만 손해에도 부르르 떤다.


스스로 떠안은 수 많은 역할을 수행하느라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잘 한 부분은 생각나지 않고 더 잘하는 사람을 보면서 왜 나는 저 만큼 못할까 비교하며 불행해져 슬며시 의욕이 상실 된다.


나는 왜 이다지도 화가 많을까? 이 지랄맞은 예민함과 성질머리가 어디서 왔는지 따지자면 어린 시절부터 되짚어 올라가야 할 수도 있다. 요즘 소위 말하는 영유아기 시절 부모와의 애착, 당시 우리집의 양육 환경을 되짚어 봐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다 현실로 오게 되면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갈 수록 비정상적이고 질식할 것 같은 사교육 현실 등 사회 구조적인 문제까지 들춰내며 신세한탄으로 이어질 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일단 예민해지고 겉잡을 수 없이 화가 난 상황에서 나는 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 지, 가장 효과 있었던 방법이 무엇인지에만 집중해보자.








요즘 말로 소위 킹받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 해왔는가.


1) 우선 젊을 땐 화가 나는 상황이 되면 미친 듯 폭주했던 것 같다. 내가 화 낼 상대가 누구인지, 그게 앞으로 내 평판에 얼마나 안좋은 영향을 줄 지 계산할 틈도 없이 성질에 못이겨 화르르 들이받고 터뜨려 내 안의 모든 화를 소진시키곤 했다.


그래서 결국 남는 건 쌈닭이라는 불명예스런 꼬리표 밖에 없더라도 화 날때 화 내는 것 말고는 도무지 감정이 정리가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일까? 당시엔 수시로 얼굴로 열이 확 오르는 느낌이 잦았고 안면홍조와 좁쌀 여드름 등의 피부 트러블로 늘 고생했었다. 워낙 방방 뛰며 자주 열 내다보니 몸이 고만 좀 하라고 신호를 줬던 것 같은데 그땐 뭐 그러거나 말거나. 성질대로 못하곤 못살아! 내일이 없던 막가파 시절이었다.


2) 자극적인 음식으로 분풀이를 하기도 했다. 고문에 가까운 캡사이신 폭탄 매운 떡볶이나 마라탕을 눈물 줄줄 흘리면서 먹고(아이고 속쓰려 ㅠ) 후식으로는 달디 단 초콜릿 케이크나 파인트 사이즈 하겐다즈 한 통을 그자리에서 먹어치워 버렸다.


굳이 생각이 별로 없어도 탄산 가득 달아빠진 소다 음료나  휘핑크림 위에 카라멜 드리즐 잔뜩 뿌린 벤티사이즈 푸라푸치노를 습관처럼 마셨다. 각종 도수의 알콜, 온갖 종류의 술들을 이리저리 섞어 마시며 하나 뿐인 소중한 간을 무던히도 괴롭혔다.


화나 스트레스는 자극적인 음식으로 풀면 효과가 즉각적이다. 요가를  하고부터는 그나마 음식 양이나 질에 신경 쓰고 음주 빈도도 줄이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아직도 나는 화나는 일이 있을 때 엽떡에 치즈+야끼만두 추가 혹은 교촌치킨 날개/봉 매운맛 간장맛 반반 세트에 맥주를 곁들인 폭식을 즐긴다.


3) 힘든 마음을 수다로 푸는 것도 내가 즐겨 사용한 방법이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 몇 시간이고 전화로 미주알고주알 다 쏟아내고 나면 속이 후련했다.


나를 화나게 한 그 인간이 얼마나 나쁘고 재수 없는지, 반면 나는 얼마나 상식적이고 멀쩡한 지..따라서 내가 얼마나 억울하고 가련한 피해자인 지를 목에 핏대 세워가며 쏟아붓는 과정에서 분노의 감정은 누그러지고 마음이 정리가 된다. 뜨겁게 달궈진 전화기 너머로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자'며 피곤한 의식을 마무리하는 건 덤이고.


반대로 나 역시 가까운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경우도 잦은데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딸린다. 서로의 감정 찌꺼기 처리장이 되어 이미 십 수년 간 반복된 얘기를 하고 또하다 보니 나중에는 말하는 쪽도, 듣는 쪽도 지친다. 듣기 좋은 말도 계속 하면 별론데 부정적인 에너지가 극대화 되었을 때 친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안 좋은 기운을 전가하는 건 상대를 아끼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뿐인 홀가분함을 위해 타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는 것, 어디선가 들은 찰떡같은 표현 '에너지 흡혈귀'와 다를 바가 없다. 남의 뒷담화로 인한 찜찜함과 부정적인 감정도 싫었다.









이다지도 자주 킹받으며 살아온 내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겨우 찾아낸 꽤 괜찮은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잠깐, 이쯤에서 앞선 내 글들을 읽은 분들은 눈치 채셨겠지만 역시 기승전 요가 얘기이긴 하지민 땀 뻘뻘 흘리며 요가 하잔 얘기 아니니 도망가지 마시길.


요기들의 필독서 중에 요가 수트라 라는 명상 경전이 있다. 책을 읽다보면 '아힘사'라는 산스크리트어 단어가 나오는데 이 아힘사란 '비폭력', '불살생'을 의미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단순히 살생을 하지 말라는 의미 보다는 '사랑'에 더 강조를 둔 철학적 계율이며 일상을 살면서 타인과 자신에게 상처주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 스스로에게 무의식적으로 해왔던 모든 폭력의 사슬을 끊는 선택을 할 것을 강조한다.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린다면 찬찬히 생각해보자. 나는 일상에서 무의식 중에 나 자신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나는 누가 만나자고 하면 딱히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거절하지 못하고 약속을 잡는 편이다. 가뜩이나 아이 키우고 요가하고 실낱같은 커리어 가늘게 이어 가느라 쫒기면서도 정신 못차리고 도대체 왜 그러는 지 나도 모르겠다.


그러니 늘 시간 부족으로 쫒겨서 운전하다보니 위험하거나 짜증내며 운전할 일이 생기고, 쫒겨서 아이 라이드와 픽업 숙제를 봐주다 보니 늘 아이에게 빨리빨리 하라는 말을 달고 살고, 쫒기다보니 정작 중요한 마감이나 집안 대소사를 못 챙겨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 딱히 용건도 없고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만나서 밥까지 사주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가.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불치병 수준의 예스우먼이다. 지금 내 상황에 부담이 될 것 같고 힘든 일은 당장 상대를 실망시킬지라도 가볍게 노 하면 그걸로 끝인 것을 정색하는 어색함을 못참아서, 남에게 좋은사람이고 싶은, 사랑받고싶은 마음에 덮어놓고 예스부터 하고 난 뒤 처리를 못해 곤란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크고 작은 일 부탁부터 sns 홍보 피드 부탁, 재능기부라는 이름의 각종 행사참석, 젤 심한 건 일면식도 없던 사돈의 팔촌의 친구의 엄마를 위해서 병원 예약을 해준 일이다.


내 기분보다 상대방의 기분을 우선에 두는 것, 타인에겐 관대하다 못해 호구짓을 자주 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박하고 엄격한 것. 지금까지 내가 스스로에게 행해 온 심각한 폭력행위다.








내 요가 선생님은 이런 스스로에 대한 구체적인 폭력의 정황을 알아차렸다면 이제는 '아힘사'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삶의 선택을 해보라고 하셨다. 내 몸과 마음이 언제 편안하고 행복한 지, 반대로 언제 힘들고 불행한 지를 정확히 알아차리고 이 잣대로 내게 이로운 선택을 하다 보면 자주 끓어 오르는 화도 조금씩 빈도수가 줄어들고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본인의 경험을 들려 주셨다.


우선 내키지 않는 사람이나 모임의 점심 약속은 애초에 잡지도 말 것, 또 곤란한 부탁을 받으면 가볍게 '노. 안될 거 같아' 라고 말하는 연습하기. 남을 실망시킬 준비(각오)가 되어 있는 채로 살아보려 한다. 남을 실망시키지 않는데 급급해 너무 나를 돌보지 않고 살아온 것 같아 내게 많이 미안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스스로에게 어떤 폭력을 행하고 있는지 내키지는 않지만 용기 내어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이번에는 스스로를 위한 비폭력, 사랑과 편안함이 가득한 선택을  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런 생각들이 쌓이면 어느새 내 일상은 지금보다는 더 편안하고 덜 화나고 더 자주 웃음 짓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지 않을까. 우선 나부더 좀 해보고 다시 업데이트를 할 예정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그때 서로의 경험을 나눠보는 것도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