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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Aug 12. 2020

못다 핀 어린 생명

가혹한 운명이 비켜가길 바라며

"의사들은 환자들의 죽음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탓에

종종 타인의 죽음에 무뎌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무뎌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바로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생명들이 떠났을 때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p. 68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는 저자는 수많은 환자들을 봐왔을 터이다. 외과의사의 특성상 환자의 배를 가르고 피를 뒤집어쓰는 일도 다반사였을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결코 눈뜨고 보지 못할 그 모습들을 의사이기에 무뎌진 감정으로 대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된다. 타인의 죽음을 수시로 보게 되는 직업을 가진 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나 역시 저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표현이 이렇게 밖에 안되어 죄송하지만 교통사고나 공장 같은 곳의 대형 기계 사고 현장에서 처참하게 짓이겨진  사람의 형체에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살아 있다면 당연히 신속하게 기계를 비집고 벌려 꺼내야 하고 죽은 자라 판단되면(사망 판정은 의사의 권한이기에 현장에서 구조 대원들은 사망 추정으로 만 본다) 수습하는 일만 무덤덤히 하게 된다.



 다만 나 역시 그러한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을 칠 때는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이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을 직접 목도한 적은 없다.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비슷한 일이 있다.  부산진 소방서 구조대 근무 시절 모텔에 화재가 났는데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불법체류자 신분이 들킬까 봐 자식들과 함께 불속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중국 동포 일가족을 구조했을 때가 생각난다.


 복도 끝 작은방에서 유치원 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 둘과 갓난 아이밖에 안되는 아이 하나를 엄마는 끌어안고 하얀 연기 속에서 콜록 거리고 있었다. 나와 구조 대원 동료는 당연히 데리고 나가려고 했지만 아이의 엄마는 완강히 거부했다. 당황했다. 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울며불며 살려달라는 아이들과 아이들 셋을 끌어안고 절규하듯 못 나간다며 우는 엄마...


 황점층(불이 발생한 층)이 아니었기에 연기만 가득했던 그 방은 갈수록 시커먼 연기가 복도를 타고 방으로 들이닥쳤다. 이러다 애고 어른이고 다 질식하겠다 싶어 아이들을 강제로 뺐다시피해서 하나씩 들쳐매고 나왔다. 연기에 괴로워하는 아이와 역시 제대로 콜록대지도 못하며(화재현장의 연기는 기침하며 마시는 수준이 아니다) 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엄마까지 구조 대원 3명이 일가족을 둘러메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아니 끄집어 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나오자마자 나와 구조 대원 선배는 그 일가족에게 죽으라고 환장했냐며 언성을 높였지만 이미 패닉에 빠져 울부짖는 아이들과 그 엄마는 우리말에 한마디 대꾸도 없었다. 화재는 진압됐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모텔에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 불법체류자들이 꽤 많이 투숙하고 있었고 우리가 구한 그 일가족 역시 쫓겨나기가 겁나 차라리 타 죽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 가족을 살렸지만 며칠을 난 공황상태로 지냈다. 지금도 엄마 손에 잡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그 아이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하얀 담요에 쌓여 우는지 어쩌는지도 보이지 않았던 아기의 얼굴까지.




나의 동료들은 중에는 어린 생명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처참하게 죽은 현장을 겪은 동료들이 다수 있다. 전해 들은 얘기라지만 글로 쓰기에도 손이 떨리는 상황들이다.  


아이가 길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져 피만 흘려도 부모의 마음은 아프다.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어린아이들이 안타깝게 사고의 현장에서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결코 무뎌진 감정으로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남녀노소를 가려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생때같은 어린아이들에 불현듯 찾아오는 사고는 너무 가혹한 운명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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