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이렇게나 철학적이라니
수학의 '수'자도 모르는 내 편협한 지식으로 수학이라는 학문은 모름지기 규칙이 확실하고 모호한 것이 없는 줄 알았다. 흔히 말하는 0 하고 1로만 이루어진 세상인 줄 알았달까? 근데 통계학을 배워보니 생각보다 알쏭달쏭하고 철학적인 면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듣는 수업이 기초 중의 기초인 개론 수업이라 단어의 의미를 정의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 그럴지도 모르겠다.
처음 교재를 받아 펼쳐 보았을 때도 책에 숫자나 그래프보다 글자가 훨씬 많아 난감했다. 아니, 웬 수학책이 이렇게 구구 절절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첫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나누어준 유인물을 보았는데 거기서 이 문장이 눈에 띄었다.
Parameters are generally unknown. (매개변수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니? 수학에도 그런 게 있어? 놀라워하며 계속 읽어가는데 이번에는 이 문장들이 나를 놀라게 한다.
Numeric does not always mean it is countable or measurable.
(숫자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모두 셀 수 있거나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The year 0 A.D does not mean the beginning of time.
(서기 0년이 시간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A temperature of zero degrees is simply a placeholder and does not indicate the absence of heat. (0도는 온도 표기법일 뿐 그게 열의 부재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게 수학책이 맞나요...?
주어진 데이터를 측정하는 방법 중에 0이라는 숫자에 의미가 있냐 없냐에 따라 분류가 달라지는 게 있다. 0이라는 숫자에 의미가 있으면 Ratio로, 없으면 Interval로 구분하는데 그래서 출생 연도는 Interval이다. 위의 예시처럼 서기 0년이 시간의 부재를 의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온도도 마찬가지다 0도는 열이 부족하다는 뜻이지 열이 아예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나이는 0에 의미가 있어 Ratio란다. 0살은 생명의 부재, Absence of life를 의미하기 때문이라나? 정말 복잡하다 복잡해.
오늘 수업시간엔 이런 문제도 있었다. 한 상점에서 손님들이 사가는 물건의 개수에 대한 통계를 내는 문제였는데 이렇게 저렇게 공식을 대입해 풀어보니 2.7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근데 선생님이 답이 3이란다. 왜요? 하고 물어보니 물건에는 2.7이라는 것이 없으니 그렇단다. 그래서 문제에서 올림 하라고 나와있지 않더라도 이런 경우에는 3으로 올림을 해야 한다는 거다.
내가 음악과 글 쓰는 일로 돈을 벌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는 기술을 공부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예술의 모호함이 지긋지긋 해서였다. 정답도 없고 다수가 맞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게 싫어서 0과 1로만 이루어진 세상의공부를 시작했는데 필수 과목 중 하나인 통계학을 배우며 미묘한 감정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