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들으며 버스를 탔다. 집까지는 버스를 타고 삼십 분, 플레이리스트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거듭 지나갔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한 곡만 반복재생해서 듣는 편이 아닌데도 때로는 너무 좋아 하루 종일을 틀어 두는 노래를 만나기도 하는 법이었다. 그렇게 길게는 일주일도 들었던 노래 몇 곡이 귀를 스쳐 지나갔다. 한때는 가사를 손으로 옮겨 적으며 음절 한 마디 마디마다 가슴을 절절매었던 노래들이 이제는 미지근한 감흥으로 흘러감을 느낄 때마다 지나간 시간에 기분이 묘해지곤 했다.
그러다가 몽구스의 나빗가루 립스틱이 흘러 나왔다. 친애하는 이가 추천해 준 곡이었는데, 자긴 이 노래만 들으면 너무 신난다며 반짝이던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추천을 받고서 처음 들었을 적에는 꽂힐 만큼 취향은 아니었는데, 언제의 감성이 이 곡에 맞아 떨어진 건지 요새는 이 노래가 나올 때마다 한 곡 반복재생을 누르는 나를 발견한다. 이 노래가 신났다는 친구의 말엔 여전히 공감할 수 없지만, 나빗가루에 립스틱을 합친 노래 제목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노래가 좋고 제목이 노래에 잘 어울렸음 된 거 아닌가 싶다.
나빗가루 립스틱, 나빗가루로 만든 립스틱인가 생각하다가, 그냥 나빗가루와 립스틱을 병렬해둔 쪽에 가까운 제목이겠구나 문득 깨달았다. 가사에 나오는 숨비소리도 해녀의 숨비소리가 아니라 숨과 빗소리의 나열일 테니까. 각각의 단어로 나열되는 추억들로 써내려간 노래인가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내게는 좋았다. 나빗가루라는 말은 사실 일상에서 쓸 일이 잘 없는 말인데 대체 어떤 추억을 가졌기에 나빗가루를 가사에 쓸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사실 나는 나비를 무서워한다. 나비의 지나치게 섬세한 이목구비가 뇌리에 박혀서일까 나비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걸 꺼리는 편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공감할 수 있는데, 자연이 만들어낸 지독하게 아름다운 것들을 손꼽는다면 그 가운데 나비는 당연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나비가 예술에 활용되는 다양한 메타포의 방식을 나는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나비가 영혼에 비유되는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다. 프시케의 날개, 무덤가에서 날아오르는 하얀 나비들 따위가 동서를 막론하고 영혼을 뜻하는 것이 나는 참 좋았다.
그래서 한때 나는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나면 나비 날개 한 쌍씩을 가슴에 그려 넣고 싶었다. 할머니의 죽음이 언젠가 올 것이라는 걸 처음으로 실감하고서 한 생각이었는데, 기왕이면 하얀 나비를 새겨넣고 싶었고, 또 반드시 심장 위였으면 싶었다. 지금이야 하얀 타투는 내 눈에 예뻐 보이지 않고, 그런 식이 아니더라도 어떤 종류의 기억은 평생 각인되는 법이라는 걸 알기에 시들해진 생각이지만, 언제고 나비 몇 마리가 내 몸 위에 내려앉을 순간이 오지 않을까 지금도 막연히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비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나빗가루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나비가 가루를 떨어뜨리는 모습을 생각하면 나비가 곤충이라는 게 지나치게 실감되어서 그랬던 듯하다. 종종 미디어에서는 나비가 가루를 흩뿌리는 모습이 무척 환상적이거나 어여쁜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던데, 정말로 나비가 그렇게 가루를 흩뿌리고 다니는지, 아니면 송화가루처럼 나빗가루가 흩날리는 모습은 그저 매체의 과장에 불과한지 궁금해진다. 실제의 나빗가루는 그렇게 반짝이지는 않겠지 싶으면서도 정말 반짝였음 좋겠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도통 나빗가루와 립스틱을 연결지을 수는 없다. 나에겐 나빗가루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립스틱에 대해서라면야 조금 더 잘 떠들 수 있겠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단순한 경험만이 있을 뿐 립스틱이 불러오는 복잡한 감흥 같은 건 내게 없다. 그런데 <나빗가루 립스틱>의 화자는 자꾸만 무언가를 기억한다며 노래를 부르고, 그러면 나빗가루에 대한 기억도 립스틱에 대한 추억도 없는 나도 그것들에 대해 뭔가 그럴듯한 추억을 머릿속에 하나 심고 싶어지니까, 그런 없는 추억들 대신 거듭해서 듣곤 하는 노래, 나빗가루 립스틱이다.
나빗가루 립스틱은 나에게는 여름의 노래이다. 이 곡을 들으면 어쩐지 푹푹 찌는 열기를 짓눌러 없애는 여름 저녁의 공기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여름은 좋아하지 않지만 여름의 것들이 좋아지는 순간이 올 때마다 사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고민될 때가 생기는데, 오늘까지는 여전히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우세했다. 그러니 그저 이 여름을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고마움으로 나빗가루 립스틱을 듣는다. 오늘도 잔뜩 들었고 아마 이 여름이 끝나기 전 또 잔뜩 들으며 가사를 읽고 따라 부르고 하겠지.
부디 여름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이 노래가 안 질렸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