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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걍 Nov 18. 2020

숨을 참는 일


일순간 숨을 참을 때가 있었다. 잠수하기 직전, 아스팔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얼굴에 훅 끼쳐올 때, 그리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 나의 정지는 세상의 속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나를 둘러싼 시간들이 잠시 고여 흐르지 않는다고 착각했다.
─Written by JM


 어느날 SNS에서 친구가 '내가 소설이라면?' 챌린지를 했다.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소설이라면 첫 문장은 무엇일지에 대해 써 주는 것이었다. 무심코 누른 하트 모양에 답은 몇백 자로 돌아왔다. 나는 첫 문장을 읽자마자 조금 놀랐다. 내가 쓰지 않은 소설 서유진에 어떻게 알았나 싶은 나의 순간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전 숨을 참는 걸 어떻게 알았지. 내가 종종 숨을 참곤 한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던 나의 사소한 버릇을 어떻게 알았을까.




 숨을 참는 버릇이 있다.


 그건 버스 안일 때도 있었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이기도 했고, 길거리를 걷는 도중일 때도 있었다. 별안간 숨을 멈추고 속으로 가만히 초를 세는 일을 나는 내가 초등학생일 적부터 종종 해 왔다. 처음엔 내가 몇 초나 숨을 참을 수 있나하는 간단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기록이 사십 몇 초 였는지 그보다 길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숨을 참고 초를 세는 버릇만 아직까지 남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노트북 앞에서도 잠시 숨을 멈춰 보았다. 속으로 헤아리기로 정확히 38초 동안 숨을 참았다. 간혹 숨을 참아 온 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늘 고만고만한 기록이었다. 어떨 때는 잘 참으면 1분이 넘게 참았던 것 같지만, 어쨌건 드문드문 호흡을 멈추고 그 시간을 기록한다고 해서 숨을 참는 시간이 갑자기 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날리 없었다. 그런데도 난데없이 눈을 감고 몸을 살짝 움츠린 채 호흡을 눌러 멈추는 일을 나는 계속해 왔다. 그저 약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숨을 참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면 거기에 집중하며 시간을 헤아리곤 했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숨을 참는 법을 배운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사격부가 있었던 나의 모교에서는 재능 있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신입생의 첫 체육 시간이 되면 학교 꼭대기층 사격실로 학생들을 불러 모두에게 총을 쏴보게 했다. 평소 잡아보기는 커녕 볼 일도 없는 총을 가만히 잡고 과녁을 겨냥할 때의, 혹시 나에게도 재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두근거림은 역시나 수포로 돌아갔지만, 방아쇠를 당기기 전 손의 떨림을 막기 위해 잠시 숨을 멈춘다는 가르침은 생각보다 내게 깊숙이 남았었나 보다.


 사진에 재능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어 사진을 취미로 가질 거라고 상상도 못했던 내가 어느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게 되었을 때, 피사체에 렌즈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르기 전 나는 자연스레 숨을 참았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했다. 호흡을 죽이면 고요한 집중이 찾아 온다는 걸 나는 알았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숨을 참고, 오랫동안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다 마침내 포착하고 싶은 장면이 스쳐 지날 때, 나는 비로소 셔터를 눌러 찰나를 필름 위에 기록했다.


 숨을 참는 일을 정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숨을 멈추고 있으면 심장 소리가 귀에 더욱 선명히 와닿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터져나가는 심장소리는 나를 잔뜩 흔들었고, 이윽고 막혔던 숨을 토해내고 나면 빠르게 반복하는 호흡 속에서 시간의 흘러감이 선명하게 느껴지곤 했다. 숨을 참는 동안 정말로 나의 시간이 '고여서 흐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삶에는 멈춤이 없기에, 흘러가는 물줄기를 손바닥으로 잠깐 막아내다가 터뜨리고 나면 손틈새로 와르르 무너지는 시간이 오히려 박동 넘치게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숨을 참는 동안 억지로 붙들어둔 시간이 내 곁에 고여 있다고 착각을 해 보는 일도 좋을 것 같았다. 착각은 세상을 내멋대로 받아들여 주무르게 하니까. 착각 대신 상상을 해 보면, 마치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작은 초능력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그건 나쁘지 않은 기분을 주었다. 숨을 참는다고 바뀌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테지만 약간의 상상이 나에게 삶이 소설같아지는 기분을 준다면 앞으로 잠시 호흡을 멈출 때마다 나는 저 문장을 떠올리겠지. 생각해 본 적 없던 문장을 보여준 JM에게 감사를 보낸다.




잠깐 정지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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