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눈의 낭만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눈을 좋아하세요? 묻는 목소리가 있다면 그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상상했다. 꼭 겨울이 시작될 때쯤, 검정보다는 베이지나 체크무늬 머플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일 것 같지. 나는 거기에 시시콜콜 대답하지 않을 것이고 이야기는 곧 다른 화제로 넘어가겠지만 그 목소리의 여운은 남아 종종 생각날 것이다. 내게 눈을 좋아하냐고 묻던, 하지만 실제로 내가 눈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는 상관이 없는 무상한 목소리.
눈을 싫어한 적은 없다. 수능이 끝난 겨울, 차를 타고 20분이 걸리는 거리를 굳이 폭설과 싸워가며 집까지 걸어왔던 날에도, 언덕 위의 주택에 살던 시절, 눈이 오면 등교할 때마다 연신 엉덩방아를 찧곤 했어도 나는 눈이 오는 걸 좋아했다. 눈에는 어쩐지 항상 처음의 느낌이 있어서 사람을 설레게 만들곤 했으니까. 꼭 첫눈이 아니더라도 그랬다. 모든 눈은 하얗게 내려서 잠깐이나마 순수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눈은 해맑은 것들과 잘 어울리고, 사람에게마저 해맑은 기운을 전달하는 것이겠지.
눈이 펑펑 오는 날 속절없이 신나고야 만 사람들을 보면 참 귀엽다. 갑갑한 사회에서 더러운 사람의 면모를 숱하게 접하며 살다가 그런 모습을 보면 그나마 인간을 조금쯤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나 역시 눈이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기에 더 그렇다. 저번엔 별 생각없이 눈이 보고 싶다고 적었는데 그 다음 날 바로 눈이 왔지 뭐야? 별것 아닌 우연이 어찌나 기분 좋던지, 갓 내린 눈을 밟으며 우체국에 다녀오는 짧은 산책길에서 나는 내내 속으로 이어폰을 따라 노래를 불러댔다.
그 며칠 전 응달에 남아 있던 눈을 모아 만든 자그마한 눈사람이 다 녹아버렸을 때쯤의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눈사람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열 살 즈음,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커다란 눈사람을 만든 적이 있다. 처음엔 분명 혼자였는데 무거워진 눈덩이를 바닥에 놓고 굴리기 시작할 때쯤 아이들이 모여들었던 기억이 난다. 눈덩이는 점차 불어나 양 손에 체중을 실어 밀어야지만 겨우 굴러갈 만큼 크고 무거워졌고, 낑낑대며 다같이 눈사람을 완성시켰을 때엔 지나가던 어른들도 감탄을 보태며 지나가곤 했다.
완성된 눈사람은 내 키보다 작았지만 양팔로 안을 수 없는 눈덩이를 힘껏 굴리며 눈도 뭉치면 무거워진다는 걸 실감했던 순간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기억은 내게 유독 인상깊게 남아 있다. 그건 아직까지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눈사람으로 남아 있거든. 언젠가 그런 눈사람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이번 폭설에는 그럴만한 친구가 곁에 없었다. 다만 어젯밤엔 우리가 함께 맞았던 프라하의 눈 오는 풍경을 친구에게 카톡으로 받았는데, 사진 속 내가 눈보다 하얗게 이빨을 드러낸 채 웃고 있어서 덩달아 웃음이 났다.
어제는 올 겨울의 두 번째 폭설이었다. 나는 창문을 열지도 않고 방 안에서 바깥의 눈을 맞이했다. 나는 아직까지 2020에 머물러 있는 기분인데 왜인지 저 눈을 맞으면 2021이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웃기는 소리다. 2021년은 이미 일주일 째를 맞았고, 시간은 앞으로도 내 기분과 상관 없이 계속 지나갈 텐데 말이다. 평소보다 방바닥이 차갑다는 생각을 한 순간 핫초코가 마시고 싶어졌다. 또 얼마 전에는 삿포로에 눈 구경을 가자던 언니에게 방 안에서 눈을 구경하면서 핫초코를 마시고 싶다고 했더니 낭만이 있단 소리를 들었거든.
낭만, 그거 좋지. 현실적인 고려를 잊게 하는 낭만에 힘입어 나는 언젠가 다시 한 번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고 싶다. 내 허리춤까지는 올라올 커다란 눈사람. 그리고 그런 눈사람을 같이 만들어줄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 눈을 좋아하세요? 하고 묻는, 베이지색이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 눈을 바라보면 순수했던 마음이 돌아오는 기분인 나와 함께, 어설픈 어른인 채로도 순수의 흉내를 함께 내 줄 사람. 따뜻한 방 안에서 커피와 핫초코를 나눠마실 사람. 내가 가진 눈의 낭만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2021.01.08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