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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Jul 18. 2022

어설픈 나도 온전한 나였다

너를 위해 쓴 말, 나를 위해 쏟아낸 말


“넌 왜 그렇게 어설프니?”    


제가 어릴 적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어요.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듣곤 합니다.     

어릴 적엔 세수가 너무 하기 싫어서 겨울에 찬물을 손가락에 조금 묻히고 세수를 하다가 그만 엄마에게 들켰는데요. “네가 고양이니? 그건 고양이 세수야.” 하면서 놀렸습니다. 그러면서 “아니 세수를 왜 그렇게 어설프게 해?” 하시더라고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모르는 남자아이들이 자꾸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아당기고는 도망 가버렸어요. 뒤쫓아 갔지만 역부족이었죠. 그 일이 반복되니 분노가 치밀어 올라 주저앉아 울어버렸어요. 너무 속상해 집에 가서 이야기하니 맞고 들어온다고 걱정만 하셨어요. 또 소심하고 어설픈 아이로 찍히는 순간이었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혼자 멍 때리고 걷다가 어딘가에 부딪혀서 피멍이 들어 집에 가면 잔소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앞을 똑바로 봐야지. 왜 그렇게 어설프니?” 다치고 올 때마다 무한 반복이었어요.    

어른이 되고 나서 여전히 나는 ‘어설픈 나’로 머물러 있었어요. 발버둥을 쳐도 늘 내가 원하는 것에 훨씬 못 미쳤어요. 명문대에 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전문대였고, 돈을 많이 벌고 싶었지만 현실은 이제 막 첫 월급 80만 원(2001년도 기준)을 받은 경리 아가씨였어요.    


어설픈 나로 규정짓는 세상이 싫었고, 제 자신을 그리 취급하는 저도 싫었어요. 알면서도 나를 바꾼다는 것은 제 인생에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게으른 내가 싫었고, 제자리인 내가 싫었어요. 그래서 하나씩 수정해나갔어요. 경찰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결혼에 도전하고, 육아에 도전했고, 제자리인 내 모습을 바꾸기 위해 계속 도전했어요.    


그 안에서 만난 숱한 저의 어설픔을 마주할 때마다 괴로웠어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그 모양일까 하고요. 노력해서 발전한 것도 있고, 제자리걸음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10년 전 만든 시금치 무침이 지금도 똑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돌이켜보니 그들이 생각하는 어설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어설픔 모두 온전한 나였어요. 그 누구도 규정지을 수 없는 그냥 나였어요.    



어설픈 그때도 온전한 나였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온전한 나였어요. 그때는 내가 아니었고 지금만 나 인 게 아니듯 그때도 나였고 지금도 나였습니다. 나를 알았기에 변화하고자 노력한 것도 나였어요.    


‘어설픔’이라고 여겼던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도전하게 하는 멋진 원동력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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