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세수가 너무 하기 싫어서 겨울에 찬물을 손가락에 조금 묻히고 세수를 하다가 그만 엄마에게 들켰는데요. “네가 고양이니? 그건 고양이 세수야.” 하면서 놀렸습니다. 그러면서 “아니 세수를 왜 그렇게 어설프게 해?” 하시더라고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모르는 남자아이들이 자꾸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아당기고는 도망 가버렸어요. 뒤쫓아 갔지만 역부족이었죠. 그 일이 반복되니 분노가 치밀어 올라 주저앉아 울어버렸어요. 너무 속상해 집에 가서 이야기하니 맞고 들어온다고 걱정만 하셨어요. 또 소심하고 어설픈 아이로 찍히는 순간이었어요.
하루가 멀다 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혼자 멍 때리고 걷다가 어딘가에 부딪혀서 피멍이 들어 집에 가면 잔소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앞을 똑바로 봐야지. 왜 그렇게 어설프니?” 다치고 올 때마다 무한 반복이었어요.
어른이 되고 나서 여전히 나는 ‘어설픈 나’로 머물러 있었어요. 발버둥을 쳐도 늘 내가 원하는 것에 훨씬 못 미쳤어요. 명문대에 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전문대였고, 돈을 많이 벌고 싶었지만 현실은 이제 막 첫 월급 80만 원(2001년도 기준)을 받은 경리 아가씨였어요.
어설픈 나로 규정짓는 세상이 싫었고, 제 자신을 그리 취급하는 저도 싫었어요. 알면서도 나를 바꾼다는 것은 제 인생에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게으른 내가 싫었고, 제자리인 내가 싫었어요. 그래서 하나씩 수정해나갔어요. 경찰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결혼에 도전하고, 육아에 도전했고, 제자리인 내 모습을 바꾸기 위해 계속 도전했어요.
그 안에서 만난 숱한 저의 어설픔을 마주할 때마다 괴로웠어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그 모양일까 하고요. 노력해서 발전한 것도 있고, 제자리걸음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10년 전 만든 시금치 무침이 지금도 똑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돌이켜보니 그들이 생각하는 어설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어설픔 모두 온전한 나였어요. 그 누구도 규정지을 수 없는 그냥 나였어요.
어설픈 그때도 온전한 나였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온전한 나였어요. 그때는 내가 아니었고 지금만 나 인 게 아니듯 그때도 나였고 지금도 나였습니다. 나를 알았기에 변화하고자 노력한 것도 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