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aquarium 5
옥토가 회의를 마무리 짓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그는 말하기에 앞서 좌중을 쓰윽 둘러보았다.
“태초의 지구에는 물만이 존재했습니다. 해수면의 변화와 대륙의 이동과 화산 폭발로 인해 땅이 생겨난 거지요. 그러니까 인간은 물이 아닌 땅에서부터 시작된 종입니다. 즉, 호모사피엔스는 물고기의 후예란 말이지요. 그런데 현재 그들은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인 양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구가 자기네들 건 줄 알아요. 우리가 언제까지 저들의 들러리로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생물들은 이제 아무도 반박하거나 비꼬지 않았다. 우두머리처럼 말하는 옥토에게 적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한껏 무거워진 분위기 때문에 입을 못 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진화에는 이유도 목적도 없다고 합니다. 우리의 탄생 역시 어떠한 목적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인간이 주는 먹이나 받아먹기 위해 태어났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바다거북 뒤를 이어 2차로 탈출할 겁니다. 태곳적 세상으로 돌아가 바다를 관장하는 통치자라는 자아를 되찾을 겁니다. 바다로 돌아가실 분들은 혹여 나중에라도 제게 귀띔해 주시면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때마침 열대어 떼가 마지막 바퀴를 돌고 오는 중이었다. 이들은 결승점에 다다르자 물고기 모양 대열에서 이탈하여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옥토는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생명 유지 장치도 없는 이곳에서 함께 하시느라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이번 달 회의는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옥토는 말하는 중간에 이미 뒷다리로 냉장고 코드를 뽑고 있었다. 다른 생물들 역시 자신들의 수조를 찾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펭귄 수조에 다다른 옥토는 휠체어에 실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친구를 잃어버린 ‘펭’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늘색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수조 천장을 보며 겨우 이런 말을 찾아냈다.
“남극의 실제 하늘도 여기랑 비슷할 거예요. 요즘 지구 온난화가 심하니까.”
“우리 조상들은 하늘을 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바다에 잠수해서 먹이를 구하다 보니 헤엄칠 수 있는 몸으로 바뀌게 되었다 합니다. 이제는 이곳에서 정 붙이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요.”
“박 사장이 곧 새로운 동료를 데리고 올 겁니다. 외롭겠지만 조금만 참으십시오.”
“그 동료는 무슨 죄인지... 여하튼 감사합니다. 옥토님, 꼭 탈출에 성공하셔서 바다에서 멋진 통치자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멋진 통치자. 옥토는 ‘펭’의 덕담을 세 개의 심장에 아로새기며 돌아섰다.
“옥토님이 탈출하면 우린 이제 어떻게 한 자리에 모여서 회의해요?”
냉장고 손잡이에 매달린 ‘해’와 ‘마’가 촉촉한 눈빛으로 옥토를 쳐다보았다. 회의 때의 눈빛과는 딴판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결한다잖아요. 다 수가 생기겠죠.”
옥토는 멋쩍게 웃으며 해마 수조의 비밀번호를 터치했다. 정글짐으로 돌아간 ‘해’와 ‘마’는 자신의 영역에 꼬리를 매달곤 옥토와 눈물의 이별의식을 치렀다. ‘해’‘마’들은 막상 눈물이 나오자 이것이 진짜 감정인지 쥐어짠 감정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조금 전 회의가 열렸던 자리는 어두운 적막으로 넘실거렸다. 남은 생물은 그 위 대형 돔 수조에 있는 연가오리와 얼룩말상어뿐이었다. 옥토는 발을 들어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보인 후 바닥과 같은 색으로 몸의 표피를 바꾸어 모습을 감추었다.
“회의도 끝났으니 산책이나 가볼까.”
연가오리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자 얼룩말상어가 뒤따라왔다.
“밤이라서 쉴 줄 알았더니 웬일?”
“좀 심란해서... 몸이라도 움직여야겠어.”
연가오리는 그 속내가 짐작되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얼룩말상어의 속도에 맞추어 지느러미에 힘을 빼고 헤엄칠 뿐이었다.
“몇몇 생물들이 탈출하고 나면 이곳은 어떻게 될까?”
“왜? 박 사장이 화낼까 봐?”
“그보단 남아있는 생물들이 염려돼.”
회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는 건 덩치 큰 생물들뿐만이 아니었다.
“어이, 신입. 너도 오늘 회의에 참석했더라면 재밌었을 텐데.”
폼폼크랩은 새로 온 신입크랩에게 말을 걸었다. 수컷과 달리 폼폼을 들고 있지 않은 암컷은 그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이 수조에 들어온 지 이틀이나 지났는데 고작 첫인사말이 그거야?”
“아, 알았어. 호구 조사 하면 되지? 어디서 왔냐.”
“진짜 마음에 안 든다니까. 인도네시아 알아?”
“거긴 또 어디야? 아무튼 오느라 고생 많았어. 그런데 너 왜 여기 온 지 알아?”
“몰라. 근데 바다에 비해서 여기도 나쁘진 않네.”
“나쁘지 않긴. 우린 바다의 청소부라고 불릴 만큼 찌꺼기를 먹고사는 생물이잖아. 그런데 여긴 청결 그 자체야. 이끼나 찌꺼기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고. 왜 인간들이 갯강구는 그냥 두고 우리만 잡아가나 몰라. 그래, 귀여운 게 죄야. 만약 못생겼었더라면 관상용으로 팔리는 일도 없었을 텐데 잘난 게 죄지, 뭐.”
암컷크랩은 이 때다 싶었는지 슬금슬금 폼폼크랩 곁으로 다가왔다.
“인간이 날 여기에 보낸 이유를 알 것 같아. 요즘 짝짓기 철 아냐?”
암컷크랩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폼폼크랩을 향해 소변을 누기 시작했다. 폼폼크랩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야야, 내 앞에서 페로몬 방출하지 마.”
“왜 그래? 얼른 내 오줌향기에 자극받으라구.”
“모든 수컷이 널 좋아할 거란 착각은 버려.”
“너 내 앞에서 춤 안 출거야?”
“내가 왜 구애행위를 해야 해?”
“인간이 그러라고 우릴 같은 수조에 넣어준 거잖아.”
“그러니까 왜 인간 말을 들어야 하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