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aquarium 4
“자유가 무엇의 줄임말인 줄 아는 생물... 있습니까?”
옥토가 한 마디 내뱉자 술렁이던 생물들이 일동 침묵했다.
“바로, 자기 이유의 줄임말입니다.”
옥토의 자문자답에 다시 장내가 물결쳤다.
“아니,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자유를 택하란 말이에요?”
“미친 소리지. 목숨이 두 개냐구.”
“이번 달 회의는 조졌네, 조졌어.”
그때 바다거북이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모습이 느리긴 했지만 사뭇 진중해 보였다.
“아쿠아리움 생물 여러분, 우리가 언제까지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살아야 합니까? 제 눈에 빨대를 처넣은 인간들이 절 구출한다는 명분하에 이곳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저런 파렴치한 인간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평생 여기서 썩고 싶습니까? 내일 바닷물을 실은 탱크트럭이 온다는 정보를 제가 입수했습니다. 회의실과 제 수조가 가깝기 때문에 몇 번이나 확인한 정보예요. 저와 함께 탈출할 생물 있습니까?”
아무도 선뜻 지느러미나 팔을 드는 이가 없었다.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얼음장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돔 수조에서 회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연가오리와 얼룩말상어 역시 굳어있긴 마찬가지였다. 오직 열대어 떼만이 거대한 물고기 형태를 유지하며 움직일 따름이었다. 세 바퀴 째 돌고 있는 열대어들은 처음에 비해 지쳐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불쑥 침묵을 깨뜨리는 이가 있었으니 시리얼 유리그릇 안의 흰동‘가리’였다.
“당신은 육지에서도 숨을 쉴 수 있으니 탈출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거죠.”
바다거북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저라고 죽을 위기가 없을 것 같아요? 그냥 겁쟁이라서 못 따라가겠다고 이실직고하시죠.”
“뭐? 가뜩이나 어제 성전환해서 예민해 죽겠는데 뭐라고? 등딱지 두꺼우면 단 줄 알어?”
“흥. 그러게 누가 평소에 그렇게 처먹으랬나? 몸무게 순으로 성전환되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닐 텐데.”
“이게 진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더니 딱 그 짝 아냐? 여러분, 지금 저 거북이가 우리를 선동하고 있습니다! 몰아내야 합니다!”
흰동‘가리’는 분노의 무게만큼이나 유리그릇 속의 물이 줄줄 밖으로 흘러내렸다.
“흰동‘가리’말이 옳소. 가렴 당신 혼자 가쇼! 이곳은 유토피아니까.”
“유토피아는 무슨. 디스토피아겠지.”
‘황’개구리 말에 ‘주’개구리가 다시 딴지를 걸었다.
“여기 같은 환상의 나라가 또 있을 것 같아? 때 되면 짝짓기 시켜주니까 울음주머니 부풀릴 필요도 없지, 매 끼니마다 영양 가득한 하수구 파리 나오지. 대체 뭐가 문제야?”
“울음주머니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고. 등에 덮여 있는 보호색도 점점 윤기를 잃어가고 있어. 이러다간 나중엔 형광주황빛이 무채색으로 변할지도 몰라. 이게 다 환장의 나라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걸 모르겠어?”
급기야 생물들은 ‘주’개구리 파와 ‘황’개구리파로 갈려 대립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때 불가사리 위에 있던 폼폼크랩이 집게발을 들어 발언권을 표했다. 소란스럽던 장내에 잠시 고요가 찾아들었다.
“논제에서 벗어난 얘길 순 있는데 한 마디 하자면... 아쿠아리움을 무조건 믿을 수만은 없어요. 천년만년 이곳의 평화가 지속될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요.”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임?”
폼폼크랩을 태우고 있던 불가사리가 밑에서 반격을 날렸다.
“넌 좀 이럴 때 짜져 있으면 안 돼?”
불가사리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폼폼크랩은 바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멀찍이 거리를 두고 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불가사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시금 장내가 어수선해졌다.
이 모든 광경을 대형 돔 수조 안에서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연가오리와 달리 얼룩말상어는 굉장히 복잡한 표정이었다. 어느 극성맞은 인간 다이버에게 포획당한 뒤 연구실 수조에서 홀로 키워졌던- 탈출하고 싶었으나 불가능한 일인지라 그냥 죽어버릴까 했지만 그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그리하여 최후의 발악을 한 결과 홀몸으로 마흔 개가 넘는 알을 낳았던- 시절이 오버랩되었던 것이다.
-채찍 꼬리 도마뱀이라고 알아? 야생에서 잡아와 동물원에서 수컷 없이 사육했는데 결국 너처럼 혼자서 번식을 했어. 이때까지 단성생식을 한 적이 없는 종이었는데 얼마나 고립된 상황에서 힘들었으면... 미안해. 인간이 나빴어.
얼룩말상어는 자신에게 용서를 구했던 최초의 인간을 떠올렸다. 얼룩말상어 먹이 주기 코너가 폐지되고 나서도 자신을 계속해서 들여다본 유일한 아쿠아리스트였다. 연가오리라는 짝을 붙여준 것도 그녀였다. 만약 영인이 이 광경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그러나 얼룩말상어의 상념은 곧 깨졌다. 회의장 한가운데 있던 냉장고의 문이 화악 열렸던 것이다.
영하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던 ‘펭’이 뒤뚱거리면서 나왔다. 그 뒤로 문이 닫힘과 동시에 냉장고 손잡이에 걸려 있던 ‘해’와 ‘마’가 시계추처럼 움직였다. ‘펭’은 뜨끈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기어코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제 친구 ‘귄’이 며칠 전에 죽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정말이지 죽을 줄은... 몰랐어요. ‘귄’은 남극에서 살던 시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어요. 매일이 한파와의 사투였지만 살아있는 삶이었으니까요. 그곳에선 추위를 막기 위해 다 같이 몸을 밀착시켜 하나의 큰 원을 이루며 살았어요. 그러나 이곳에 온 뒤부턴 각자가 외딴섬이 되어 고립을 자처하며 살았어. 저는 ‘귄’이 죽은 이유가 그런 체온 품앗이를 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귄’은 펭귄으로 태어나 펭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해서... 죽은 거예요. 그런데 ‘귄’이 죽자 박 사장이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며 우리에게 쌍욕을 퍼부었어요. 인간들은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펭’은 온몸의 털이 바짝 말라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지만 마지막까지 힘을 짜냈다.
“전 아주 먼 남극이란 곳에서 왔어요. 탈출을 하고 싶지만 지상으로 나가는 순간 질식하여 죽고 말 겁니다. 여객기에서 비행기로, 또 활어차로 옮겨져서 아쿠아리움 수조로 오기까지의 여정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여기 있는 생물들 중 탈출하지 않는다 하여 비겁하다 생각할 필요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전 그저... 탈출을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선택을 존중할 따름이에요. 꼭 성공해서, 죽은 제 친구 ‘귄’의 몫까지 자유로이 살다가길 바라요...”
‘펭’은 냉장고 안으로 들어가기 전 ‘주’ 개구리에게 슬쩍 눈길을 주었다. 잠시 봤을 뿐인데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형형한 주황빛이 도는 개구리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유해물질에 전염될 것 같은데 연해진 거였다니... 언젠가 전기 배선 공사를 하러 왔던 인간들의 의복이 떠올랐다. 그들이 입었던 조끼 색도 그런 불협화음을- 나는 위험하다. 그러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느낌을 풍겼었다. ‘펭’은 인간들이 자연의 색을 차용했음을 깨달았다. 개구리들아. 만약 탈출한다면 꼭 위험천만한 공사현장을 발견하길.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세상에 뛰어들기도 전에 절멸해 버릴지도 몰라. 그러나 ‘펭’은 그런 말을 뱉지 않고서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다.